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AFP 연합뉴스 |
트럼프 대통령은 취임 직후부터 대부분의 세계 주요국들과 두 트랙의 협상을 벌이고 있다. 하나는 불공정 무역 관행 종식을 통해 무역 적자를 해소하고자 벌이는 관세 협상 트랙이고, 다른 하나는 동맹국들의 방위비 증액을 통해 과도한 대미 안보 의존도를 축소하려는 방위비 협상 트랙이다. 두 트랙은 대상 국가에 따라 우연히 시기적으로 겹치기도 하나, 실제로는 전혀 다른 논리가 적용되는 별개의 협상 트랙이다. 그간 어느 나라도 정치적 흥정으로 이를 적당히 피해 갈 수 없었고, 미국의 최우방 동맹국에도 예외나 특혜는 없었다.
트럼프 대통령이 지난 1월 20일 대통령 취임 당일 캐나다와 멕시코를 향해 관세 폭탄을 날릴 때부터 시작된 이 두 트랙의 협상은 이제 6개월이 다 되어가고 있다. 당시부터 미국 외교가에는 트럼프 대통령의 칼날이 사안의 우선순위에 따라 캐나다와 멕시코에서 출발해 유럽 동맹국들을 거쳐 맨 마지막으로 한국과 일본에 도달하는 시나리오에 따라 움직이고 있다는 관측이 무성했다. 이는 당시 정치적 혼돈을 겪고 있던 한국에는 그나마 숨 쉴 여유를 주는 긍정적 뉴스였다.
그 시나리오 그대로, 미국의 협상 초점은 캐나다와 멕시코에서 시작해 EU와의 관세 협상과 NATO와의 방위비 협상을 거쳐 이제 종착지인 동아시아에 도착했다. 트럼프 대통령은 그 과정에서 이스라엘·이란 전쟁 확산으로 중동에 잠시 발이 묶이기도 했으나, 이스라엘과 손잡고 이란 핵 시설 폭격을 단행해 중동 시아파 벨트를 평정하고 이란 핵 문제 종식의 길을 열었다. 그 직후 승리의 여세를 몰아 NATO 정상회의에서 이란 핵 시설 폭격에 대한 지지를 받아냈고, 그간 요구해 온 GDP 5%의 국방비 지출 합의를 관철하는 등 유럽 동맹국들까지 다 평정했다. EU와의 관세 협상도 막바지 단계에 이르고 있다.
한국이 그간 누려온 유예기간은 소진되었고, 협상의 초점은 이제 한국과 일본으로 넘어왔다. 며칠 전부터 트럼프 대통령과 캐럴라인 레빗 백악관 대변인의 입에서 한국과 일본이 자주 언급되고 있다. 한국이 직면한 관세 협상과 방위비 협상 두 채널 모두 그 협상 환경이 험난해 보인다. 미국과 방위비 협상에서 한국은 중동과 유럽을 평정하고 몇 달 전보다 훨씬 위세가 강해진 패권국 미국을 상대해야 하는 상황이다. 관세 협상 역시 특단의 정책 결단 없이 우리 입맛에 맞는 합의에 성공할 가능성은 매우 낮아 보인다. EU와 일본의 관세 협상이 먼저 타결되면 협상 여건은 더 악화될 것이다.
다른 모든 외교 협상이 그렇듯이 이번 관세 협상과 방위비 협상에서도 간접적 영향을 미칠 수 있는 제3의 요소가 있는데, 이는 미국 정부의 인식에 투영된 한국의 이미지다. 과거 한국이 미국과 어려운 협상을 할 때마다 한국이 미국의 주요 동맹국이라는 점이 큰 방패막이가 되곤 했다. 그러나 이젠 상황이 다르다. 트럼프 대통령은 오래전부터 한국에 대해 ‘자기 이익에만 집착하는 이기적 동맹국’이라는 인식을 품어 온 듯하고, 거기에 한국이 미국의 주적(主敵)인 중국 쪽으로 기울어질 조짐에 대한 의구심까지 더해져 한국에 대한 인식이 최악 수준이다. 이를 불식하는 것이 급선무이나, 그런 움직임은 보이지 않는다.
미·중 패권 경쟁에 올인하면서 상대국의 대중국 정책을 피아 식별의 기준으로 삼는 미국의 시각에서 볼 때, 지금 한국은 신뢰할 수 없는 동맹국이다. 한국은 2023년 한·미·일 정상회담에서 대중국 공동 보조에 합의했으나 행동으로 실천한 건 별로 없고, 3자 안보 협력의 존속 전망도 불투명하다. 동아시아의 집단적 중국 견제 체제인 쿼드, 오커스, 스쿼드(미·일·호주·필리핀), 미·일·호주 삼각 협력 어디에도 한국의 모습은 없다. 남중국해 ‘항행의 자유 작전’에도 미국의 역내 동맹국 중 유독 한국만 불참이다. 게다가 한국 새 정부는 대중국 균형 외교를 거론하고, 미국이 극도로 싫어하는 중국 전승절 행사 참석을 검토 중이라 한다.
미국 대통령의 최우선 과제는 미·중 패권 경쟁에서 최종 승리를 거두는 것이다. 미국이 무리한 관세 협상을 통해 무역 적자를 줄이려는 것도, 방위비 협상을 통해 동맹국의 국방비 증액을 압박하는 것도 모두 패권 경쟁 승리를 위해 절박하게 필요한 경제력을 재건하기 위한 고육지책이다. 그런 의미심장한 협상에 임하는 한국이 친중 이미지를 불식하지 못한다면 성공적 협상을 기대하기 어렵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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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용준 세종연구소 이사장·前 외교부 북핵대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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