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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태평로] 특검 칼날 앞에 선 테오도라

조선일보 최경운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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방미 준비하다가 계엄 선포
스스로 존엄 걷어찬 尹 부부
“모두 우리 곁 떠나” 한탄
자기 연민 아닌 책임감 보여야
최경운 사회부장

최경운 사회부장

작년 12·3 비상계엄 얼마 전, 윤석열 전 대통령은 트럼프 미국 대통령 당선자와의 회담을 추진 중이었다고 한다. 그의 핵심 참모가 전한 이야기다. 실제로 한 철강 업체 CEO는 계엄 선포 며칠 전 용산에서 대통령 보고를 요청받았다고 한다. 주제는 미국이 관심 있는 군함 제작용 철강 생산, 보고 날짜는 12월 4일이었다. 한 대기업 총수는 그로부터 사흘 후인 12월 7일 소집될 대통령 주재 민관 통상 대책 회의 참석을 요청받았다고 한다. 모두 대통령의 12월 중순 방미를 염두에 두고 계획된 일정이었지만 계엄령 선포로 무산됐다.

윤 전 대통령은 최근 법원에서 구속영장 실질심사를 받으면서 “나는 고립무원”이라고 했다. 대미 정상 외교를 준비하던 그가 계엄을 선포해 고립을 자초한 까닭을 그의 참모들은 반년이 지난 지금도 속 시원히 설명하지 못한다. 어떤 참모는 “애국적 결단 성격이 있다”고 했다. 민주당의 입법 폭주와 줄탄핵에 맞선 몸부림이었다는 주장이다. 하지만 윤 전 대통령 부부를 아는 사람들 사이에선 “김건희 여사 보호가 계엄 선포의 중요한 동기였을 것”이란 추측이 적잖다.

대통령실의 한 참모는 필자에게 ‘테오도라’를 아느냐고 물은 적이 있다. 그가 전한 사연은 이렇다. 윤 전 대통령이 ‘황제의 권력 운용을 뒷받침한 로마제국의 황후’를 언급했고, 한 참모가 “테오도라 이야기”라며 호응하면서 화제가 됐다고 한다. 테오도라는 동로마제국 황제 유스티니아누스의 부인이다. 윤 전 대통령이 어떤 맥락에서 테오도라를 떠올렸는지, 이 참모가 구체적으로 설명하지는 않았다. 다만 “대통령이 김 여사에 대해 ‘대선 승리 일등 공신’이라고 말한 적이 있다”고 그는 덧붙였다.

두 부부는 닮은 점이 있다. 유스티니아누스는 테오도라와 결혼하고 나서 황제에 등극했다. 윤 전 대통령도 52세 나이에 김 여사와 결혼하고 대통령이 됐다. 이탈리아 산비탈레 성당 제단 벽면엔 유스티니아누스와 테오도라의 모자이크 초상이 장식돼 있다. 초상 속 테오도라는 황제가 입는다는 자색(紫色) 망토를 걸쳤다. 황제와 동등한 위상을 갖고 권력을 누렸다는 뜻이다. 김 여사도 참모들이 대통령을 ‘V1’으로 부를 때 ‘V0’로 불렸다.

서양사에서 테오도라는 황제와 정권을 공동으로 운영해 성공으로 이끈 황후로 평가받는다. 반면 동로마제국의 역사가 프로코피우스가 쓴 ‘비사(祕史)’에선 탐욕의 화신이자 악인으로 묘사한다. 검사 120명이 동원된 3특검 중 한 명이 “사초(史草)를 쓰는 자세로 수사하겠다”고 했을 때 윤·김 부부의 ‘패밀리 비즈니스’를 파헤치는 비사를 쓰겠다는 말로 들렸다. 김건희 특검팀에선 특검법의 수사 대상 16가지도 모자라 추가 범죄 첩보 수집팀을 운용하고 있다고 한다. 가히 정치 보복이라 할 만하다

윤 전 대통령은 “모두 우리 곁을 떠났다”고 탄식한다. 그의 각료와 군 사령관들은 구속됐거나 특검의 기소장을 기다리고 있다. 누가 누구를 떠났다는 것인가. 테오도라는 반대 세력이 봉기했을 때 도망치려는 황제 앞에서 자색 망토를 쳐들고 “이 옷이 내 수의(壽衣)가 되리라”라고 외치며 맞섰다고 한다. 이들은 결국 권좌를 지켰다. 윤·김 부부는 야당의 특검·탄핵 공세를 방어하는 데 급급했다. 그러다가 시대착오적인 계엄령을 선포해 스스로 존엄을 걷어찼다. 고대 황국과 현대 공화국의 차이를 망각한 결과다.


윤 전 대통령은 구속됐고 김 여사는 자색 망토를 벗은 채 특검의 칼날 앞에 서 있다. 이들에게 지금 필요한 것은 자기 연민이 아니라 책임감이다. 한때 그들을 따르고 지지한 참모와 대중이 지켜보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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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경운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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