컨텐츠로 건너뛰기
뉴스
서울
맑음 / -3.9 °
조선일보 언론사 이미지

[문태준의 가슴이 따뜻해지는 詩] [79] 가족정원

조선일보 문태준 시인
원문보기
가족정원

일러스트=이철원

일러스트=이철원


맨땅에서 자라는 막내 채송화

작은누나 봉선화는 가슴에 분홍 물을 채우고

큰누나 장미 넝쿨 담장을 넘어간다

이웃사촌 여치가 날아와 놀다 가고

무당거미 집 한 채 은빛 그물 펼쳤다

아버지는 느릅나무 그늘 조용히 누워있고


오늘도 등불 켜 든 해바라기 엄마

이곳저곳 비춰 주네

-조승래(1959-)


----------------

함께 사는 가족은 이 시에서처럼 정원에 비유할 수 있겠다. 정원에는 화초가 자라고, 풀벌레가 가늘게 울고, 시원한 그늘이 내려앉고, 햇살이 들고, 낮밤이 바뀌고 계절이 흐른다. 이 꽃밭은 꽃이 피는 풀과 나무 그 각각이 점점 커지고, 때 맞춰 꽃이 피고 지고, 햇살과 그늘과 빗방울과 눈송이와 바람을 나누고, 서로가 어울리는 곳이다. 시인은 이 시에서 하나하나의 꽃에 가족의 이름을 따로따로 달았다. 작은누나는 분홍빛 첫사랑의 감정에 물들고, 사랑을 찾아가는 큰누나에겐 이미 어떠한 벽도 없다. 정원에는 화초만 있는 것이 아니다. 가까운 이웃은 찌르르찌르르 우는 여치처럼 정원에서 정답게 이야기를 주고받는다. 아버지는 느릅나무 그늘이 되어 정원에 누워있다.

이 시를 읽으면 여름 저녁에 함께 국수를 먹던, 마당의 들마루 공간도 가족에 비유될 수 있겠구나 싶다. 들마루 공간의 위쪽에는 여름밤의 은하가 펼쳐져 별은 들꽃처럼 빛나고, 간간이 불어와 더위를 식혀주는 한 줄기의 바람은 풀벌레 소리도 싣고 올 것이다.


매일 조선일보에 실린 칼럼 5개가 담긴 뉴스레터를 받아보세요. 세상에 대한 통찰을 얻을 수 있습니다.

'5분 칼럼' 구독하기

[문태준 시인]

- Copyrights ⓒ 조선일보 & chosun.com,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 -

info icon이 기사의 카테고리는 언론사의 분류를 따릅니다.

AI 이슈 트렌드

실시간
  1. 1뉴진스 다니엘 퇴출 심경
    뉴진스 다니엘 퇴출 심경
  2. 2염경환 짠한형 비하인드
    염경환 짠한형 비하인드
  3. 3우리은행 신한은행 여자농구
    우리은행 신한은행 여자농구
  4. 4맨유 임시 감독 캐릭
    맨유 임시 감독 캐릭
  5. 5송교창 KCC 소노전
    송교창 KCC 소노전

조선일보 하이라이트

파워링크

광고
링크등록

당신만의 뉴스 Pick

쇼핑 핫아이템

A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