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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용헌 살롱] [1501] 도사와 주식

조선일보 조용헌 동양학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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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세 가지 이유 때문에 주식을 하지 않았다. 첫째는 쪽박이다. 주식 투자하다가 쫄딱 망한 사람을 여러 명 보았다. 주식 때문에 가정 파탄 나고 이혼하는 경우이다. ‘천하에 빌어먹을 짓이 주식 투자이다’라는 편견을 가지게 되었다. 둘째는 팔자이다. 팔자에 재복이 없는 사람은 주식 해 봐야 헛일이라고 생각하였다. 돈이 없는 팔자인데 갑자기 돈이 들어오면 그것은 분수에 넘치는 사건이다.

분수에 넘치는 돈이 들어오면 반드시 후폭풍이 따른다. 70~80년대 대전의 유명한 도사였던 도계 박재완(1903~1992). 그는 70년대에 대전 둔산 지역의 땅이 개발되어 오르게 되어 있다는 정보를 입수하고도 땅 투자를 하지 않았다. ‘내 팔자에 돈이 들어오면 화근이여!’ 떼돈 앞에서도 멈출 수 있었던 자제력은 팔자에 대한 확신이었다. 세 번째는 긴장이다. 주식 시세가 오르면 흥분해서 아드레날린이 과다 분비되고, 시세가 떨어지면 밥맛 떨어지고 화병 난다.

‘休去歇去(휴거헐거) 鐵樹開花(철수개화).’ ‘쉬고 또 쉬면 쇠로 된 나무에 꽃이 핀다’는 선불교의 화두를 신봉하는 나의 인생 철학과 배치되는 욕망 체계를 주식이라고 규정하였다. 이러한 나의 반주식적(反株式的) 신념 체계를 흔드는 인물과 조우한 적이 있다. 학원 사업을 하다가 돈을 벌어 2선으로 물러나고 주식 투자에 전념하는 60대 후반의 L씨이다. 이 양반은 주식을 해서 쪽박을 차지 않고 오히려 큰돈을 벌었다. 그리고 번 돈을 주변에도 잘 쓴다. 대개 숫자와 장부에 강한 금융권 사람들이 돈을 잘 안 쓰는 반면에 이 양반은 숫자에도 밝지만 ‘식신생재(食神生財)’ 팔자라서 돈을 쓴다. 돈을 잘 쓰고 잘 버는 팔자이다. 그가 20년 전쯤 부산에 가서 어느 도사에게 팔자를 봤더니 ‘팔짱 끼고 돈 버는 팔자’라고 했다는 것이다. 돈을 쓰니까 주변에 사람들이 있다. ‘덕불고 필유린(德不孤 必有隣)’이다. 덕 있는 이는 반드시 이웃이 있다.

70세 다 되는 L씨가 지니는 미덕은 정보와 데이터에 대한 왕성한 호기심과 활력이다. T모 사, N모 사, I모 사, P모 사 등 미국의 첨단 산업 회사 주식을 보유하고 있기 때문에 빅테크들과 AI의 동향에 해박하다. 새벽 4시부터 일어나 종이 신문을 2개 읽고, 유튜브를 10개쯤 본다. 눈이 아파도 일주일에 평균 책 1~2권은 반드시 읽는다. 양자컴퓨터, 휴머노이드 산업에 대한 심도 깊은 지식은 나를 주눅 들게 했다. 주식은 세상의 변화에 대한 관심을 유지하게 만들고, 그 돈 되는 정보 분석이 노인의 인생에 긴장이 아니라 활력을 주고 있었다. ‘휴거헐거’ 그만해야 하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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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용헌 동양학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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