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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혼 후 배아 이식 임신' 이시영이 쏘아 올린 공... '비혼 출산' 논의 불붙나

한국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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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외선 '배아 소유권' 두고 이혼 부부 간 소송도
작년 8월 서울 신생아 20%, 난임 지원으로 출생
'원하는 여성 누구나 보조생식술 받는' 법안 발의
"단편적 논의만... 실제 삶과 제도 간극 커" 지적


배우 이시영. 넷플릭스 제공

배우 이시영. 넷플릭스 제공


“상대방은 동의하지 않았지만, 제가 내린 결정에 대한 무게는 온전히 제가 안고 가려 합니다. 제 손으로 보관 기간이 다 돼 가는 배아를 도저히 폐기할 수 없었습니다.”
배우 이시영

배우 이시영(43)이 지난 8일 전 남편의 동의 없이 냉동 배아로 임신한 사실을 공개하면서 결혼 제도 바깥에서 벌어지는 임신·출산이 다시 한번 도마에 올랐다. 전 배우자 동의 없이 아이를 임신한 점을 두고는 상반된 목소리가 교차한다. “이기적이고 독단적인 결정”이라는 비판이 나오는가 하면, “난자 채취와 시술 과정을 감내한 여성이 배아 이식 결정권을 갖는다”며 응원도 만만치 않다.

대중에게 널리 알려진 사례를 기준으로 하면 이시영은 방송인 허수경(2007년)과 방송인 사유리(2020년)에 이어, 남성 파트너 없이 보조생식술로 임신한 세 번째 ‘자발적 싱글맘’이다. 특히 사유리가 일본 정자은행을 통한 임신 사실을 밝혔을 때 ‘비혼 출산’에 대한 대중적 관심이 크게 높아졌다. 저출생 대책으로 정부의 난임 시술 지원이 확대되는 가운데, 제22대 국회에선 혼인 여부와 관계없이 임신을 원하는 여성에게 보조생식술을 허용하는 법안도 발의됐다. 지금까지 나온 관련 논의들을 정리해 봤다.

배아 소유권 소송, 美선 "양측 이익 고려해야"



난임 부부의 남편으로부터 받은 정자를 시험관에서 과배란을 유도해 채취한 난자와 인공적으로 수정하는 ‘시험관 아기 미세조작술’을 의료진이 시행하고 있다. 제일병원 제공

난임 부부의 남편으로부터 받은 정자를 시험관에서 과배란을 유도해 채취한 난자와 인공적으로 수정하는 ‘시험관 아기 미세조작술’을 의료진이 시행하고 있다. 제일병원 제공


현행 ‘생명윤리 및 안전에 관한 법률’에 따르면 체외수정(IVF) 과정에서 배아를 생성할 때는 부부 양측의 서면 동의가 필수다. 그러나 이미 생성된 냉동 배아를 이식할 때, 남편 동의를 반드시 받아야 한다는 명확한 규정은 없다. 난임병원에서 배아 이식 시 관행적으로 부부 모두의 동의서를 요구하긴 하지만, 이는 내부 지침이나 윤리적 판단에 따른 것이다. 이시영 사례를 둘러싼 논란은 법적 공백 상태에서 비롯됐다고 볼 법하다.

난임병원을 운영하는 조정현 대한산부인과의사회 이사는 10일 한국일보와의 통화에서 “이시영씨 사례는 극히 드물다”며 “보통 보험 시스템에 배우자 이름이 기재돼 있고, 배아를 이식할 때 배우자가 공란으로 뜰 경우 병원에서 (전) 남편 동의를 받아오라고 할 것”이라고 말했다. 그러면서도 “병원 입장에서 환자의 혼인 관계를 자세히 물어보는 건 사생활 침해에 해당할 수 있어 조심스럽다”며 “배아 생성 당시 양측의 동의를 모두 받은 것이 기록으로 남아 있으니, 배아를 잘 보관했다가 시술하는 것까지가 병원의 역할”이라고 덧붙였다.

해외의 경우는 좀 다르다. 미국과 유럽의 경우, 이혼한 커플이 배아를 사용하기 원할 땐 대부분 양측 모두의 동의를 받도록 한다. 의견이 엇갈릴 땐 배아의 소유권을 둘러싼 법적 다툼으로 이어지는 사례도 적지 않다. 미국 콜로라도주(州)의 한 로펌에서 소개한 2018년 판례가 대표적이다. 이혼한 부부가 냉동 보관돼 있던 배아와 관련, 남성은 폐기를 원한 반면 여성은 이에 반대해 소송전을 벌인 경우다.

1심과 항소심은 전 남편의 배아 소유권을 인정했다. 그러나 콜로라도주 대법원 판단은 달랐다. 대법원은 우선 냉동 배아를 ‘특별한 성격의 부부 공동 재산’으로 간주했다. 따라서 배아 처분에 관한 부부의 명시적 합의나 계약이 있는지 확인하고, 합의가 없다면 법원이 △배아 보존을 원하는 당사자의 사용 목적과 IVF 시도 이유 △배아 이식이 출산으로 이어질 경우 유전적 부모가 되는 것을 피하려는 사람이 겪게 될 어려움 등 ‘양측의 이익을 균형 있게 고려’해야 한다고 판시했다. 이러한 기준에 따라 해당 사례에선 대법원이 사건을 1심으로 돌려보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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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출산 대책’으로 난임시술 지원하는 한국



한 연구원이 영하 196도의 액체질소 탱크 속에 성인 남성으로부터 채취한 정자를 넣고 있다. 냉동보관에 들어간 정자는 필요한 시점에 해동해 인공수정, 시험관 아기 수술 등 보조생식술 등에 사용할 수 있다. 제일병원 제공

한 연구원이 영하 196도의 액체질소 탱크 속에 성인 남성으로부터 채취한 정자를 넣고 있다. 냉동보관에 들어간 정자는 필요한 시점에 해동해 인공수정, 시험관 아기 수술 등 보조생식술 등에 사용할 수 있다. 제일병원 제공


한국에서 난임 시술은 크게 증가하고 있다. 건강보험심사평가원에 따르면 2022년 국내에서 이뤄진 난임 시술 건수는 20만7건으로, 2019년(14만6,354건)보다 36.7% 증가했다. 난임 시술을 받은 대상자는 7만8,543명이었다. 산술적으로 따지면 한 명당 약 3번의 난임 시술을 받은 셈이다.

난임 시술을 통한 신생아 출생도 늘었다. 지난해 8월 서울의 신생아 3,489명 중 난임 시술 지원으로 태어난 신생아는 704명(20.2%)이었다. 신생아 5명 중 1명 꼴이었다. 작년 1~9월 난임 시술 지원으로 출생한 서울의 신생아 비율도 전체의 15.8%를 차지했다.

대표적인 ‘저출생 대책’으로 꼽히는 난임 시술에 대한 지원은 매년 확대되고 있다. 기존에는 ‘부부당’ 생애 총 25회로 난임 시술 지원이 제한됐는데, 지난해 11월부터는 ‘출산당’ 25회로 사실상 기회를 늘렸다. 첫째 아이 임신 때 난임 시술 25회를 모두 지원받았다 해도, 둘째나 셋째 아이 임신을 시도할 때 각각 25회씩 지원받을 수 있게 된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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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조생식술로 비혼 출산’ 안 돼… 개정 움직임도



방송인 후지타 사유리와 그가 일본 정자은행에서 정자 기증을 받아 낳은 아들 젠. 사유리 사회관계망서비스 캡처

방송인 후지타 사유리와 그가 일본 정자은행에서 정자 기증을 받아 낳은 아들 젠. 사유리 사회관계망서비스 캡처


하지만 비혼 여성은 여전히 한국에서 난임 시술을 받을 수 없다. 대한산부인과 보조생식술 윤리지침에는 ‘(배우자의 정자가 아닌 타인의 정자를 이용한) 비(非)배우자 간 인공수정 시술은 원칙적으로 법률적 혼인 관계에 있는 부부만을 대상으로 시행한다’고 명시돼 있다.

2022년 국가인권위원회가 혼인 관계의 부부만을 대상으로 하는 이 지침을 개정하라고 권고했으나, 산부인과학회는 비혼 여성의 난임 시술은 불가하다는 입장을 고수했다. “제3자의 생식 능력을 이용해 보조생식술로 출산하는 것은 정자 기증자와 출생아의 권리 보호를 포함해 논의해야 하는 중대한 문제로, 사회적 합의와 관련 법률의 개정이 우선돼야 한다”는 이유였다. 학회는 “독신자의 보조생식술을 허용하는 국가들은 동성 커플의 보조생식술도 허용하고 있어, 독신자뿐 아니라 동성 커플의 보조생식술 허용에 대한 사회적 합의도 선행돼야 한다”고도 주장했다.

제21·22대 국회에선 임신을 원하는 여성이라면 혼인 여부와 관계없이 보조생식술 등 출산 지원을 받을 수 있도록 하는 모자보건법 개정안이 발의되기도 했다. ‘임신 희망 여성’에 대한 지원이 이뤄져야 한다는 사회적 목소리가 커진 데다, 출생률이 높은 선진국에선 ‘비혼 출생률’도 상당하다는 점 등을 고려한 것이다. 하지만 2023년 5월 장혜영 당시 정의당 의원이 발의한 ‘비혼출산지원법’은 상임위원회에 계류만 돼 있다가 21대 국회 임기 종료와 함께 자동 폐기됐다. 지난해 10월 더불어민주당·진보당·조국혁신당 등 야당 3곳이 공동 발의한 ‘독립출산지원법’은 현재 상임위에 계류돼 있다.


다만 이 법안이 국회 문턱을 넘는다 해도, 실질적인 지원이 가능할지는 미지수다. 조정현 이사는 “보조생식술을 통해 비혼 출산을 하려면 냉동 정자를 자신이 고를 수 있는 시스템이 갖춰져야 하는데, 한국에는 거의 없다”고 지적했다. 법이 제대로 시행될 수 있는 여건이 아직 마련돼 있지 않다는 뜻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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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www.hankookilbo.com/News/Read/A2020111909540002854)

"가족 구성·보조생식술·양육까지 아울러야"



미혼 여성 스타들이 난자 냉동 시술 고백을 어렵지 않게 예능 프로그램에서 밝히는 시대다. 가수 겸 화가인 솔비가 2023년 MBC 예능 프로그램 '라디오스타'에 출연해 난자 냉동 사실을 말하고 있다. 그는 이 영상에서 난자 냉동을 위한 호르몬 주사를 맞는 과정에서 체력이 떨어지고 얼굴이 붓는 등 신체적 변화가 이뤄졌다고도 말했다. MBC 영상 캡처

미혼 여성 스타들이 난자 냉동 시술 고백을 어렵지 않게 예능 프로그램에서 밝히는 시대다. 가수 겸 화가인 솔비가 2023년 MBC 예능 프로그램 '라디오스타'에 출연해 난자 냉동 사실을 말하고 있다. 그는 이 영상에서 난자 냉동을 위한 호르몬 주사를 맞는 과정에서 체력이 떨어지고 얼굴이 붓는 등 신체적 변화가 이뤄졌다고도 말했다. MBC 영상 캡처


‘보조생식술을 통한 비혼 출산’을 ‘여성의 결정권’ 차원에서 지지하는 흐름에 대한 우려도 제기된다. 권김현영 이화여대 한국여성연구원 기획연구위원은 9일 영국 BBC방송 인터뷰에서 “난자 채취와 시험관 시술은 모두 여성의 몸에 상당한 신체적 부담을 주는 과정이며, 기술의 발전이 오히려 여성들에겐 ‘가질 수 있는 최대치를 뽑아내야 한다’는 식의 압력으로 작용하고 있다”고 말했다. 이어 “출산의 선택지가 다양해졌다는 건 맞지만, 동시에 출산하지 않겠다는 선택은 더 어려워진 것”이라고 부연했다.

한국에서 낙태죄 폐지 운동을 주도하는 단체인 ‘셰어’(성적권리와 재생산정의를 위한 센터)의 나영 대표는 논의 프레임 자체를 전환해야 한다고 조언했다. 11일 한국일보와의 통화에서 나영 대표는 이렇게 말했다. “이시영씨 사례는 비혼 출산만의 문제가 아닙니다. 혼인 형태나 가족을 이루는 형태도 다양할 수 있고, 보조생식술이 이를 가능하게 해 주는 측면이 있어요. 삶을 구성하는 방식이 달라지는 겁니다.”

비혼 출산을 허용하는 것만으로는 가족 구성 변화, 보조생식술의 현실을 충분히 반영할 수 없다는 게 나영 대표의 진단이다. 그는 “지금은 개별 사안 중심의 단편적 논의가 반복되고 있어 삶과 제도적 지원의 간극이 크다”며 “지금도 난자 냉동 지원은 하는데 그 이상의 시스템은 없기 때문에, (가족을 이룰) 여건이 안되는 여성들도 ‘일단 난자 냉동을 해 놓고 나중에 어떻게 될지 보자’는 경우가 많다”고 지적했다. 실제로 보조생식술에서 임신 성공률을 높이기 위해 한 번에 여러 배아를 만든 뒤, 사용하지 않거나 등급이 떨어지는 배아를 폐기하는 일도 비일비재한 것으로 알려져 있다.

나영 대표는 “여성의 결정권은 어떤 조건과 환경에서 실질적으로 보장되는지, 양육 책임과 지원체계가 어떻게 마련되는지까지 함께 논의돼야 한다”고 제안했다. 이와 관련, 21대 국회에서 정의당을 중심으로 △비혼출산지원법 △동성 커플 혼인을 인정하는 혼인평등법 △생활동반자 관계를 법적으로 인정하는 생활동반자법 등이 ‘가족구성법 3법’으로 함께 추진됐던 사례는 주목할 만하다. 결국 “가족 구성, 양육 지원, 보조생식술의 적용 범위와 기준, 의료·상담 체계 등 통합적 제도 설계가 필요하다”는 얘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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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냉동 배아도 생명" 판결 파장… 미국 대선 '또 다른 뜨거운 감자' 될라
(www.hankookilbo.com/News/Read/A2024022213580004330)


박소영 기자 sosyoung@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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