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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징어 게임’의 한계…456억원으로 충분한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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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인의 희생을 연료 삼아 존속되는 가진 자의 세계… 자본주의·민주주의 체제 비판하면서 체제 안에 머물다

인호(이병헌 분)가 기훈 앞에서 가면을 벗고 자신의 정체를 밝히는 장면. 넷플릭스 제공

인호(이병헌 분)가 기훈 앞에서 가면을 벗고 자신의 정체를 밝히는 장면. 넷플릭스 제공


*이 글은 ‘오징어 게임’ 시즌3의 전개 및 주요 장면에 대한 정보를 포함하고 있습니다.





“저랑 게임 한판 하시겠습니까?” 수많은 이를 ‘게임’ 세계로 끌어들였던 ‘오징어 게임’(넷플릭스)이 시즌3을 끝으로 긴 여정을 마무리했다. 게임이라는 형식을 빌려 자본주의와 민주주의를 비판적으로 성찰하며 인간성의 조건을 묻던 이 드라마는 우리에게 무엇을 말하고자 했을까?





경쟁과 연대의 역설

먼저 2024년 말 공개된 시즌2 이야기를 해보자. 시즌2의 핵심은 성기훈(이정재)과 오영일이라는 이름으로 게임에 참여한 프런트맨 황인호(이병헌)의 세계관 대립이다. 456억원의 상금을 받은 기훈은 미국행을 포기하고 2년간 ‘딱지남'을 찾아다닌다. 그리고 다시 게임에 참여할 기회를 얻는다. 기훈의 목적은 게임을 중단시키는 것이며 그러기 위해 “계단 위쪽에서 게임을 조종하는 자들”을 겨냥한다.



기훈은 “아직도 인간을 믿나?”라며 인간 사회를 냉소하는 프런트맨에게 대항해 “우리는 말이 아니야”라는 걸 증명하려 한다. 반면 이전 우승자로서 프런트맨이 된 인호는 인간과 사회를 향한 기대를 거둔 인물이다. 기훈은 참가자들을 설득하며 혁명을 도모하지만, 전략적 통찰 없이 대의만 앞세운다. ‘저 위’를 향한 그의 대의는 ‘아래’의 희생을 정당화한다. 인호는 이런 기훈의 한계를 간파하고 혁명을 제압하며 그의 행위를 “영웅 놀이”라고 조롱한다. 체제를 파괴하려 하면서도 누구보다 게임에 능숙한, 그 세계관에서 벗어나지 못한 모순된 행동을 반복하는 기훈이 여전히 ‘게임 안에 있는 자’임을 간파한 것이다.



‘오징어 게임’ 시즌3은 시즌2에서 프런트맨에 대항해 혁명을 도모하던 성기훈의 혁명이 실패한 이후의 세계를 보여준다. 넷플릭스 제공

‘오징어 게임’ 시즌3은 시즌2에서 프런트맨에 대항해 혁명을 도모하던 성기훈의 혁명이 실패한 이후의 세계를 보여준다. 넷플릭스 제공


시즌3은 혁명이 실패한 이후의 세계를 보여준다. 기훈은 자책감과 무력감에 빠지고, 참가자들은 절망하거나 폭주한다. 이때 숨바꼭질 게임이 시작된다. 도망쳐야 하는 참가자들에게는 ○ △□ 모양 중 하나의 열쇠가, 잡아야 하는 참가자들에게는 칼이 아이템으로 지급된다. 도망치는 참가자들이 안전한 출구로 나아가기 위해서는 ○ △□ 모양의 열쇠가 모두 필요하다. 각자도생해야 하지만, 협력하지 않으면 탈출할 수 없도록 설계됐다. 경쟁과 연대의 역설이 뚜렷하게 드러난 게임인 셈이다.



이 게임에서 중요한 역할을 하는 세 인물은 트랜스젠더 여성 조현주(박성훈), 임산부 김준희(조유리), 노년 여성 장금자(강애심)다. 각각 다른 모양의 열쇠를 가진 세 사람은 협력하게 되고, 함께 도망치던 준희가 출산을 맞는다. 세 개의 열쇠를 다 보관하고 있던 현주는 기적적으로 바깥으로 나가는 문을 열지만 준희와 금자, 아기를 위해 탈출 기회를 포기하고 돌아선다. 그러나 이 선택은 비극으로 이어진다. 준희의 헤어진 연인, 이명기(임시완)의 칼에 현주가 찔리고, 준희를 찌르려는 아들을 막으려던 금자는 자기 손으로 아들을 찌른다. 그리고 금자는 스스로 목숨을 끊는다. 이들의 죽음은 연대 가능성의 죽음이기도 하다.



오징어게임3에서 중요한 역할을 하는 트랜스젠더 여성 조현주(박성훈). 넷플릭스 제공

오징어게임3에서 중요한 역할을 하는 트랜스젠더 여성 조현주(박성훈). 넷플릭스 제공


게임 안에서만 소비되는 ‘죽음’

숨바꼭질이 연대의 불가능성을 의미한다면, 마지막 게임인 공중 오징어 게임은 인간성의 죽음을 의미한다. 이전의 게임들이 유년기의 놀이를 빌렸다면, 이 게임은 ‘안전 제일’이란 표어를 통해 현실감을 극대화한다. ○△□ 모양으로 만들어진 위태로운 구조물 위에 선 참가자들은 공정한 투표를 통해 죽일 사람을 선정한다. 게임 시작 여부도 참가자들이 직접 선택할 수 있다. 참가자들은 토론을 통해 죽일 참가자를 지목한 뒤 그를 ‘도시락’이라고 칭한다. 이 단어는 ‘오징어 게임’의 현실 인식을 압축하는 단어가 아닐까? ‘도시락’이라는 단어가 상징하듯 ‘오징어 게임’에서는 연대와 공생의 가능성도, 민주적인 절차도, 최소한의 도덕도 기대할 수 없다. 오직 살겠다는 본능이 인간성을 압도하는 것이다.



진행요원 강노을(사진·박규영 분)은 박경석(이진욱 분)의 딸을 지키기 위해 탈락자인 경석을 탈출시킨다. 넷플릭스 제공

진행요원 강노을(사진·박규영 분)은 박경석(이진욱 분)의 딸을 지키기 위해 탈락자인 경석을 탈출시킨다. 넷플릭스 제공


연대와 사회가 불가능하고 인간성마저 상실된다면 인간 사회는 어떻게 존속할 수 있을까? 드라마는 희생을 말한다. 시즌3은 결국 자신(과 가족)을 희생해 타인을 살리는 이야기다. 탈락자인 박경석(이진욱)을 탈출시키기 위해 진행요원 강노을(박규영)이 한 위험한 행동은 놀이동산에서 만난 경석의 딸, 나연(박예봄)을 살리기 위함이다. 현주, 금자, 준희 모두 준희가 낳은 아기를 살리기 위해 죽음을 선택한다. “대의를 위해서 작은 희생은 감수”해도 된다고 말하던 기훈 또한 결국 가장 작고 무력한 존재인 아기를 살리기 위해 스스로 탈락자가 된다. 이런 행위는 “아직도 인간을 믿나?”라는 냉소 가득한 질문에 관한 강력한 반론이다. 자본주의적 세계관을 향한 성찰적 저항이기도 하다. 이는 자신을 죽여 인류를 구원하고자 한 종교적 구원 서사와도 닮았다.



그러나 이 죽음은 게임 안에서만 소비될 뿐 게임 세계 바깥, 즉 체제에는 아무런 영향을 미치지 못한다. 기훈의 선택이 노을의 죽음을 막고, 인호의 세계관에 균열을 일으키긴 하지만, 게임 바깥에서는 여전히 새로운 참가자를 모집한다. ‘도시어부'라 조롱받은 해양 수색팀은 게임이 끝난 뒤에야 도착하고, 노을의 탈출 사건은 아무도 모른 채 끝난다. 게임 바깥 세계와 게임 안 세계가 끝내 연결되지 못했다. 참가자들의 숭고한 선택은 인간의 가능성을 보여주는 희망적 메시지처럼 보이지만, 구조를 바꾸기는 불가능하다는 절망의 강력한 증거이기도 하다. 이런 절망감은 제도에 대한 냉소로 드러난다.



시즌1과의 차이 중 가장 눈에 띄는 지점은 투표제도다. 시즌1에서 단 한 번의 투표로 게임 지속 여부를 결정했던 것과 달리 시즌2, 시즌3에서는 게임마다 투표가 진행된다. “여러분들의 자유롭고 민주적인 투표 결과에 따라 내일 다음 게임을 속행하겠습니다.” 진행요원의 이 말이 어떻게 들리는가? 민주주의의 형식을 흉내 내지만, 정작 이 투표가 드러낸 것은 자유롭지도 민주적이지도 않은 제도의 허점이다. 공정과 선택이라는 이름으로 행해지는 폭력, 다수결에 의한 비인간적 선택, 합리적 토론을 가장한 힘의 논리. 현실 세계에서 이런 순간을 얼마나 많이 목격했던가!





비판하는 체제와 닮은 드라마

‘오징어 게임’이 보여준 세계는 ‘자유와 공정’이라는 민주주의의 가면을 쓴 디스토피아와 같다. 인간 사회의 미래를 상징하는 아기를 살리기 위한 참가자들의 숭고한 희생이 허망한 이유가 여기에 있다. 개인의 도덕적 희생은 탐욕적 자본주의와 폭력적 민주주의의 대안이 될 수 있을까? 왜 이 사회는 늘 개인의 희생을 연료 삼아 브이아이피(VIP)들의 세계를 존속시키는가? 드라마는 이런 질문만 남긴 채 끝난다. 그렇기에 마지막 장면에서 인호가 살아남은 아기와 기훈의 딸 가영(조아인)에게 상금을 전달하는 행위는 희망이기보다는 기만에 가깝다.



시즌3 6화 제목은 ‘사람은’이다. 기훈은 “우리는 말이 아니야”라고 한 뒤 “사람은…”이라는 말을 남긴 채 떨어진다. 죽음의 체제에 맞선 희생을 통해 “사람은” 어떠해야 하는지를 보여준 셈이다. 드라마를 본 우리는 현실 세계에서 이 미완성의 문장을 어떻게 완성할 수 있을까? ‘살아남은 아기’의 의미를 생각해본다. 그 아기가 생존하기 위해서는 무엇이, 혹은 어떤 사회가 필요할까? 누군가는 ‘456억원’으로 충분하지 않으냐고 말할지 모른다. 그러나 그것이 전부가 아님을 ‘오징어 게임’은 시즌1부터 내내 보여줬다. 이 질문에 대답하기 위해 나는 ‘오징어 게임’의 한계를 냉정하게 곱씹어볼 필요가 있다고 생각한다.



물론 이 드라마가 불평등한 현실을 전세계에 가시화하고 민주주의 절차에 대한 비판적 성찰을 불러일으킨 의미를 부정할 수는 없다. 그런데도 ‘오징어 게임'에는 근본적인 아이러니가 존재한다. 체제를 비판하는 드라마 자체가 그 체제와 닮아 있다는 것이다. 드라마는 “우리는 말이 아니야”를 역설하면서도 정작 인물들을 기능적으로 소비한다. 현주, 준희, 금자의 죽음은 분명 감동적이지만, 이들은 기훈의 도덕적 성장을 위한 디딤돌 역할에 그친다. 결국 ‘숭고한 희생'이라는 서사를 완성하기 위한 ‘말’로 활용된 것이다. 이런 설정이 인간을 기능적으로 판단하며 도구화하거나 ‘도시락’처럼 여기는 현실 세계와 얼마나 다를까?



여성 인물들의 재현 방식에서도 드라마는 한계를 보인다. 준희와 금자는 주로 모성애를 보여주는 역할에 머물고, 그나마 존재감을 보인 용궁선녀(채국희)는 비이성적인 존재로 소비된다. 이들에게 주체적 선택이나 복합적 동기가 충분히 부여됐다고 보기는 어렵다. 현주는 트랜스젠더 여성이지만, 특전사 출신의 남성성을 활용해 생존한다. 게다가 아기의 미래는 결국 남성인 인호의 동생 황준호(위하준)의 손에 맡겨진다. 반면 기훈과 인호는 복잡한 내적 갈등과 철학적 대립을 통해 훨씬 입체적으로 그려진다. 심지어 ‘100번’ 참가자를 비롯한 빌런들마저 뚜렷한 존재감을 보인다. 신체적 힘이 부족한 참가자는 마지막 단계까지 이르지 못할 구조다. 현실에서와 마찬가지로 ‘오징어 게임’ 세계도 결국 힘을 가진 남성성의 사회인 것이다. 이런 설정은 젠더 불평등을 비판하기보다 오히려 재생산하는 데 가깝다.





공허한 기훈의 마지막 외침

드라마는 자본주의와 민주주의의 체제적 절망을 개인의 숭고한 희생으로 대체했다. 그 죽음은 감동적이지만, 애초에 왜 이 게임이 시작됐는지, 이런 구조에서 도대체 누가 살아남을 수 있을지, 함께 살아남으려면 어떻게 해야 하는지에 관한 정확한 대답은 아니다. “사람은”이라는 기훈의 마지막 외침은 그래서 무기력하다. 우리는 마치 VIP들처럼 그의 희생마저 스펙터클로 소비하고, 다시 각자의 게임으로 돌아갈 뿐이다. 이런 사회에서 그 아기가 살아도 괜찮은 걸까?





오수경 자유기고가·‘드라마의 말들’ 저자





오징어게임3에서 성기훈(이정재) 스틸컷. 넷플릭스 제공

오징어게임3에서 성기훈(이정재) 스틸컷. 넷플릭스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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