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버려도, 그냥 써도 환경 ‘민폐’…플라스틱 수세미로 만든 비누망, 마음이 무겁다[수리하는 생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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더 이상 쓰지 않는 수세미로 만든 비누망(왼쪽)과 마로 짠 천연 수세미.

더 이상 쓰지 않는 수세미로 만든 비누망(왼쪽)과 마로 짠 천연 수세미.


최근 한 드라마에서 퇴사로 심란해하는 인물에게 주인공이 뜨개질을 추천하는 장면이 있었다. 뜨개질하는 동안에는 아무 생각이 들지 않으니 명상하듯 해보라는 것이었다. 공감하며 보고 있는데, 가방에서 알록달록한 아크릴 실뭉치가 나왔다. 서사나 개연성 측면에서는 이해가 됐지만, 조금 아쉬웠다.

수세미 뜨기는 뜨개질 초보가 거쳐가는 하나의 과정이다. 크기가 작으니 빨리 완성되고, 그 자체로 쓸모가 있다. 수세미 뜨기에 재미를 붙이면 본인은 물론이고 주변 사람들도 수세미 부자가 된다. 하지만 아크릴이나 폴리에스터 실로 짠 수세미는 설거지할 때 미세플라스틱을 다량 배출하고, 식기에도 남는다. 세계자연기금(WWF)의 연구에 따르면 인간은 매주 평균 5g(신용카드 1장 무게)의 미세플라스틱을 섭취하고 있다. 합성수지로 만든 수세미를 사용할 경우 이런 위험은 더 높아질 것이다. 이런 위험으로 최근에는 천연 소재인 삼베(마(麻)) 실로 수세미를 짜거나, ‘진짜 수세미’를 사용하는 사람이 늘고 있다.

수세미는 본래 박과의 한해살이 식물의 이름이다. 플라스틱이 없던 시절, 우리 조상들은 볏짚이나 천연 수세미로 설거지를 했다. 수세미 열매는 오이를 닮아서 수세미오이 또는 수세미외라고도 부르는데, 생장 환경에 따라 30㎝에서 60㎝까지 자란다. 과육과 씨앗을 제거하고 섬유질만 남기면 원기둥 형태의 촘촘한 그물망이 되고, 이것을 설거지에 쓴다. 잘라서 비누 받침으로도 쓰고, 비누를 다 쓰면 그것으로 욕실 청소도 한다. 이토록 쓸모 있는 식물이 잘 자라기까지 하니, 텃밭을 일구는 지인들은 수세미 농사를 빼놓지 않는다.

그런데 나는 수세미와 관련해 풀지 못한 갈등이 있다. 미세플라스틱의 위험성 때문에 천연 수세미와 마로 짠 수세미를 쓰지만, 이전에 사용하던 플라스틱 수세미를 버리지는 못했다. ‘자, 이제부터 환경과 내몸에 해가 되지 않는 물건만 사용하겠어!’라고 결심을 한대도, 멀쩡하게 쓰던 물건을 버리는 것이 너무 아깝게 느껴졌다. 고민 끝에, 기존의 수세미로 비누망을 만들었다. 이 비누망은 5년이 지난 지금도 해진 데 없이 멀쩡하다. 다만 의심은 돌처럼 남아서 마음속을 구른다. 비누망을 쓸 때마다 미세플라스틱이 배출될 터인데, 소각하거나 매립하면서 발생하는 오염이 계속 사용함으로써 발생하는 오염보다 나을까 혹은 더 나쁠까. 고민해도 답은 나오지 않는다. 나는 그저 ‘내가 만든’ ‘아직 멀쩡한’ 비누망을 계속 사용할 뿐이다.

샤워타월도 마찬가지다. 여기저기 보풀이 생긴 샤워타월은 딱 봐도 미세플라스틱의 온상처럼 보인다. 알면서도 버리지 못하고 구멍이 나면 면실로 수선해 사용한다. ‘수질 오염을 걱정하는 나’와 ‘물건을 버리지 못하는 나’가 대결하면 대체로 후자가 이기는 것 같다. 어느 쪽이 더 ‘친환경’인지 정답은 모른다. 좀처럼 낡지 않는 플라스틱 제품들을 보면서 밥 안의 돌을 씹듯이 되새길 뿐이다. ‘내가 샀으니 내가 책임진다. 우리집에서 최대한 버텨보자.’

■모호연

물건을 쉽게 버리지 못하는 사람. 일상 속 자원순환의 방법을 연구하며, 우산수리팀 ‘호우호우’에서 우산을 고친다. 책 <반려물건> <반려공구>를 썼다.


모호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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