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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 읽기]쉰 떡을 받아든 농민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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농림축산식품부 장관이 누구인지 물어보면 단박에 답할 수 있는 사람들이 많지 않다. 정부가 바뀔 때마다 장관 후보들이 거명되며 기대와 실망이 교차하지만 몇몇 부처는 누가 되든 큰 관심을 끌지 못한다. 농식품부는 농민과 농업 관계자들은 관심을 두지만, 보통 사람들에게는 ‘농산물값 관리부서’ 정도다. 물가가 오를 때 농산물값을 잡는 역할을 떠맡아왔기 때문이다. 그런데 이번에는 예외였다.

내란에 얽힌 윤석열 정부의 국무위원들이 이재명 정부와 어색한 동거를 하던 중 순차적으로 교체되는 분위기에서 송미령 농식품부 장관이 유임됐다. 그래서 주목도가 떨어지는 농식품부 장관 관련 보도가 농업계 언론 말고도 종합 언론의 1면을 오랜만에 차지했다. 하지만 누군가에겐 파격이자 실용의 인사일지 몰라도 누군가에겐 배신의 인사다. 윤석열을 끌어내리기 위해 엄동설한에 트랙터로 남태령을 넘은 농민들이, 응원봉으로 화답한 시민들이 ‘남태령 넘으니 송미령’이냐는 분노를 토할 수밖에 없는 이유다.

다른 사유도 아니고 내란 사태로 치러진 대선이다. 적극적이든 소극적이든 내란의 밤에 머릿수를 채운 국무위원 중에 송미령 장관이 있었다. 이재명 대통령은 내란 가담 정도가 중하지 않고 통합과 실용, 능력에 기반한 인사라는 사유를 밝혔지만 경범죄도 죄여서 벌금과 벌점을 받는다. 그리고 중한 범죄에 대한 방조죄를 엄히 다스리는 나라다. 하물며 동서고금을 막론하고 도의적 책임이 있다. 높은 봉급과 고급 의전을 받았다는 것은 그만큼 책임의 무게를 지라는 뜻이다. 갑자기 계엄에 동원된 일개 사병도 아닌 그 정부와 행보를 맞춰온 국무위원이며, 내란 현장에 함께 있었다는 이유만으로도 실정법상 죄다.

다 떠나서 이재명 대통령이 눈여겨보았다는 능력과 실용이 어디에 발현됐다는 것인지 도통 모를 일이다. 장관 재직 당시 농업 4법(양곡관리법·농수산물유통법·농어업재해대책법·농어업재해보험법)은 농업을 망치는 ‘농망법’이라며 농민들이 가장 상처받을 말을 부러 찾아냈다. 기실 이 말은 농민들에게 했던 말이라기보다는 자신의 주군이자 고용주였던 윤석열을 향한 충성의 말이었을 터다. 그러다가 하루아침에 농망법을 희망법으로 바꾸겠다는 찬란한 변신 예고가 더 뜨악하다. 그 희망법 운운이 농민들을 향한 것인지 새로운 주군인 이재명 대통령의 귀에 꽂히길 바란 것인지 가혹한 증명의 시간이 기다리고 있다.

작년 3월 기후 상황이 나빠 한창 농산물 수급이 어려울 때 “대파 875원이면 합리적 가격”이라 운운하던 윤석열 옆에서 어정쩡하게 대파를 함께 들고 있던 인사도 송미령 장관이다. 자칭 농업·농촌 전문가이자 수장이라면 온갖 잔기술을 동원해 875원을 가능하게 만든 그날의 ‘트루먼쇼’에서 잘못된 정보는 바로잡아 자신의 주군을 벌거벗은 임금으로 만들지는 말아야 했다. 여기에 농가당 농사지어 얻는 평균 소득은 심정적 최저선인 1000만원 선이 무너져 957만원이고, 농가당 평균 부채는 4501만원으로 역대 최고치다. ‘농망법’을 솔선수범 막았어도 농업은 진즉에 농망 상태였고 이는 송미령 장관 재임 시기의 기록이다. 당연히 장관 하나 잘 뽑는다고 농업의 난맥상이 풀릴 것이라 믿는 순진한 농민은 없다. 여성 장관 비율 맞추고, 현 야당이 여당일 때 세운 장관을 악다구니로 끌어내릴 수는 없을 테니 정치적 부담도 하나는 덜고 갈 수 있는 그런 실용성이라는 것을 농민들도 잘 안다.

내란 가담 정도가 약하다 해서 대통령 유고 시 권한대행 상위 순서인 부총리급 기획재정부나 교육부 장관을 유임시키지는 않는다. 그저 만만한 농업, 늙어가는 농민들의 태생적 취약함 때문이라는 것을 확인받으니 더 서글플 뿐이다. 업종 바꾸고 새 간판 내걸면 개업 떡 한 접시 돌리는 것이 인지상정이건만 농민들이 받아든 개업 떡은 진즉에 쉬어 있었다.


정은정 농촌사회학 연구자

정은정 농촌사회학 연구자

정은정 농촌사회학 연구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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