건축가는 십중팔구 남의 집을 설계한다. 건물이 완성된 후 손에 남는 것은 모형이다. 2021년 작고한 이일훈 건축가는 20여년 전 이사하면서 그동안 쌓아둔 건축 모형을 제 손으로 버려야 했다. 그는 모형을 우지끈 밟기 전, 아쉬운 마음에 급하게 사진을 남겼다고 한다. 다행히 사라진 모형들의 사진과 이야기는 저서 <모형 속을 걷다>(2005)로 독자들을 만났다.
<다시, 모형 속을 걷다>는 2005년 저서 속 글에 저자가 그 이후 쓰고 하드디스크에 남긴 글 네 편을 더한 책이다. 사진은 2005년 모형 사진이 아닌, 건축 지도·사진과 이 건축가로부터 다른 이들이 받아 간직해온 프린트물을 모아 실었다.
이 건축가는 생전 집을 나누는 단위인 ‘채’와 ‘나눔’이라는 말을 합친 ‘채나눔’이라는 건축 철학을 말했다. 불편함을 받아들이고(불편하게 살기), 자연을 가까이 접할 수 있는 바깥 공간을 만들고(밖에 살기), 동선을 늘린다(늘려 살기)면 더 풍요롭게 살 수 있다는 제안이다.
고 이일훈 건축가가 컴퓨터 ‘이사만상’ 폴더에 남긴 건축 모형 사진. 바다위의정원 제공 |
인천의 ‘기찻길 옆 공부방’ 등 사회적 프로젝트와 경기 화성의 ‘자비의 침묵 수도원’ 등 종교 건축을 꾸준히 맡았던 그는 사람을 위하는 건축가였다.
이 건축가가 사라진 모형을 애달파했듯, 그의 부재를 그리워하는 이들은 다시 그를 호명한다. 고인과 우정을 나눴던 전진삼 격월간AR 발행인은 추천사에서 “우리 곁을 떠나 모형 속으로 걸어 들어간 형에게서 평생 참건축을 향해 정진했던 수행자의 모습을 발견한다. 세상과 사람과 건축을 믿고 짝사랑한 사람, 건축가 이일훈 형을 기린다”고 했다.
전지현 기자 jhyun@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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