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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사충실' '행동주의' 정석 보여준 태광산업 EB 사태

비즈워치 [비즈니스워치 김보라 기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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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사주 전량 교환사채 발행 추진하다 잠정 중단
2대주주 트러스톤, 2022년부터 행동주의 캠페인
작년 트러스톤 제안 사외이사 2명 이사회 진입
김우진 이사 '기존 주주에 미칠영향 고려해 반대'
개정 상법 '주주에 대한 이사충실의무' 취지 부합
가처분 기각시 EB발행 재시도..이사부터 설득해야



태광산업이 총발행주식수의 24%에 달하는 자기주식(이하 자사주)을 기반으로 교환사채(EB, Exchangeable Bond)를 발행하려다 잠정 중단했다. 태광산업은 2대주주인 트러스톤자산운용(지분율 5.95%)이 교환사채 발행을 저지하기 위해 추진한 가처분 신청에 대한 법원 판단이 나올 때까지 관련 절차를 중단한다고 밝혔다.

자본시장에서 주주가치 제고에 대한 목소리가 어느 때보다 더 높아진 상황에서 태광산업 사례는 상장사가 자신들 입맛대로 자사주를 활용하기 어려워졌다는 점을 보여준다.

아울러 그동안 거수기에 불과하다는 비판을 받아온 상장사 사외이사도 누가 역할을 맡느냐에 따라 적지 않은 영향을 미칠 수 있다는 점을 이번 태광산업 사례가 명확하게 보여주고 있다. 태광산업이 교환사채 관련해 개최한 이사회에서 반대의사를 뚜렷하게 밝힌 김우진 사외이사(서울대 교수)가 대표적이다. 최근 국회를 통과한 상법 개정의 핵심인 '주주에 대한 이사충실의무'의 표본을 김 이사가 선제적으로 보여줬다는 평가다.태광산업에 적극 관여하는 트러스톤

태광산업은 지난 2일 3200억원 규모의 교환사채 발행을 잠정 중단한다고 밝혔다. 앞서 태광산업은 지난달 27일 장 마감 후 자사주 27만1769주(총발행주식의 24.41%)를 기반으로 3200억원 규모의 교환사채 발행을 공시했다. 자사주 전량을 교환사채 발행에 쓰겠다고 밝히면서 논란이 일었다. 발행 대상자도, 발행 목적도 불분명한 '깜깜이 공시' 였다.

이번 교환사채 발행 중단 사태에서 빼놓을 수 없는 것은 바로 이 회사의 2대주주 트러스톤자산운용(이하 트러스톤)이다.

트러스톤은 지난 2020년부터 태광산업에 대한 투자를 시작한 뒤 2021년 6월 처음으로 태광산업 지분 5% 이상을 가지고 있다고 공시했다. 이후 2022년 12월 주식보유 목적을 경영참여로 바꾸면서 본격적인 주주행동주의 캠페인을 시작했다.

트러스톤은 공식서한을 보내며 태광산업에 현금성자산에 대한 활용방안 마련, 주식 유동성 확대, 합리적 주주환원 정책 수립, 정기적인 기업설명(IR) 등을 요구했다.


이 과정에서 트러스톤은 태광산업이 그룹의 비상장 계열사인 흥국생명이 추진하던 4000억원 규모의 유상증자 참여의사를 밝히자, 지분관계가 전혀 없는 비상장사의 유상증자에 참여하는 것은 문제가 있다고 비판했다. 결국 태광산업은 흥국생명 지분 취득을 백지화했다.

뿐만 아니다. 트러스톤은 지난해 3월 정기주총에서 주주제안으로 올린 사외이사 2명과 사내이사 1명을 이사회에 진입시키는데 성공했다. 트러스톤이 추천한 사외이사는 김우진 서울대 교수, 안효성 회계법인 세종 상무이다. 사내이사는 정안식 태광산업 영업본부장이다.

태광산업 vs 트러스톤 주요 일지

태광산업 vs 트러스톤 주요 일지


거수기 역할 아닌 견제 역할한 사외이사

트러스톤의 주주제안으로 태광산업 이사회 진입에 성공한 사외이사들의 역할도 이번 교환사채 발행 중단 사태에서 주목할만 하다. 이들의 사외이사의 반대표가 이슈 확장에 영향을 미쳤기 때문이다.


지난 6월 27일 태광산업이 최초로 올렸던 자사주 처분 및 교환사채 발행 공시를 보면, 같은 날 오전에 열렸던 이사회(참석인원 총 6명)에서 자사주 처분과 이를 기반으로 한 교환사채 발행에 반대표를 던진 사람은 김우진 서울대 교수가 유일했다.

이후 트러스톤이 문제를 지적했고, 이달 2일 다시 열린 이사회에서도 김우진 교수는 반대표를 던졌다. 두 번째 이사회에서는 트러스톤이 주주제안으로 올린 안효성 회계법인 세종 상무도 반대표를 던졌다. 이사회 구성원 6명 중 2명이 반대한 것이다.

김우진 교수는 "교환사채 발행 시 기존 주주에게 미칠 수 있는 영향 등을 종합적으로 고려해 반대했다"고 밝혔다.


지금까지 우리나라 상법에서는 교환사채 발행과 같은 중요 의사결정에 참여하는 이사진이 고려해야 할 충실의무 대상이 '회사' 뿐이었다. 태광산업처럼 유통되지 않는 주식인 자사주를 대거 활용해 교환사채를 발행하면 회사는 현금을 확보하는 동시에 우호지분도 챙길 수 있다. 회사 입장에선 돈과 의결권을 모두 손에 쥐는 손해가지 않는 결정인 셈이다.

반면 자사주가 유통주식으로 돌변하면서 기존 주주들의 가치 희석이 불가피하다. 특히나 태광산업처럼 발행 대상자나 발행 목적 마저 불분명한 상황에서는 언제 어떤식으로 가치 희석이 나타날 지 예측하기도 어렵다.

지난 3일 국회를 통과한 개정 상법은 이사의 충실의무 대상을 '회사 및 주주'로 넓히고, '이사는 직무를 수행함에 있어 총주주의 이익을 보호하고, 전체 주주의 이익을 공평하게 대우해야한다'는 조항을 추가했다. 그동안의 상법이 극히 소극적으로만 인정해온 '주주 보호'를 적극적으로 확장한 것이다.

이번 태광산업 사태에서 사외이사 김우진 교수가 나타낸 입장은 이러한 개정 상법 취지에 부합하는 것이란 평가가 나온다.

태광산업 교환사채 발행 결정은 이사 과반수의 출석과 출석이사의 과반수 동의를 충족한 만큼 자사주 처분과 교환사채 발행은 두 차례의 이사회를 모두 통과했다. 하지만 사외이사 2명이 반대하면서 사실상 태광산업의 자사주 처분과 교환사채 발행은 완벽한 지지를 얻지 못했다. 결과적으로 트러스톤이 주주제안으로 올린 사외이사가 태광산업 이사회 내부에서 제대로 된 견제역할을 한 셈이다.

교환사채 발행 재시도?..이사부터 설득해야

일단 태광산업은 교환사채 발행에서 한 발짝 물러났다. 회사는 "소액주주, 노동조합 등 이해관계자와 긴밀히 소통한 후 향후 의사결정에 반영하겠다"고 밝혔다. 아울러 트러스톤이 지난달 30일 자사주 처분 및 교환사채 발행을 위법행위로 규정하고 법원에 행위 중지를 요청하는 가처분 신청 결과 역시 향후 의사결정에 반영할 것으로 보인다.

법원이 트러스톤의 가처분 신청에 대해 인용을 결정하면 태광산업은 자사주 전량을 기반으로 한 교환사채 발행이 어려워진다. 만약 법원이 기각을 결정하면 태광산업은 다시 교환사채 발행을 시도할 가능성이 있다. 서울중앙지법 제50민사부는 오는 18일 이번 가처분 소송에 대한 심문기일을 열 예정이다.

다만 이때도 이사회 의결 과정에서 사외이사의 반대의견은 계속 이어질 것으로 보인다. 특히 평소 기업의 자사주 보유에 부정적인 입장을 피력해 온 김우진 서울대 교수는 태광산업의 자사주 전량 기반 교환사채 발행에 반대표를 행사할 가능성이 높다.

김우진 교수는 지난 2017년 작성한 '한국 기업의 자사주 처분 및 소각에 관한 실증 연구' 논문을 통해 "재무 이론에서 자사주 취득은 주주환원정책의 일환으로 이해하는 것이 일반적"이라며 "궁극적으로는 자사주 소각을 통해 배당과 유사한 효과를 야기하는 것"이라고 설명했다.

그러면서 "자사주 처분이 실질상 신주 발행과 동일함에도 현행법 상 이를 별도로 취급해 주주평등 원칙을 요구하지 않으면서 기업이 자사주를 다양한 용도로 사용하고자 하는 인센티브를 제공하고 있다"고 꼬집었다.

결국 태광산업이 다시 교환사채 발행을 시도하더라도 주주 및 시장 등 각종 이해관계자를 설득하기에 앞서 이사회 내부에서 완전한 지지를 얻는 작업이 선행되어야할 것으로 보인다. 특히 태광산업이 새로 개최할 이사회는 개정 상법 이사의 주주에 대한 충실의무를 담은 상법 개정안이 통과된 지금, 그 과정을 수행하지 않는다면 태광산업은 다시 시장의 풍파를 겪을 수밖에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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