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몸이 아픈 남자, 마음이 아픈 여자... 그들이 기댈 건 오직 사랑

한국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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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예리 주연 영화 ‘봄밤’ 9일 개봉
막다른 인생 두 남녀의 사랑 이야기
바라는 것 없는 사랑의 원형질 그려


영화 ‘봄밤’은 희망 없이 살아가는 두 남녀의 사랑을 시와 같은 영상미로 그려낸다. 시네마 달 제공

영화 ‘봄밤’은 희망 없이 살아가는 두 남녀의 사랑을 시와 같은 영상미로 그려낸다. 시네마 달 제공


남자 수환(김설진)은 몸이 아프다. 중증 류머티스 관절염을 앓는다. 친구와 함께 일군 철공소가 망했다. 이혼이 이어졌고 노숙을 해야 할 정도로 생활고에 시달린다. 여자 영경(한예리)은 마음이 아프다. 이혼한 남편이 아이를 납치하듯 데려간 후 술독에 빠졌다. 소주 몇 병을 몸속에 부어야 마음이 진정될 정도로 중증 알코올중독증이다.

수환과 영경은 결혼피로연 자리에서 만난다. 의지할 사람 없는 둘은 금세 가까워진다. 술친구에서 연인이 되고 이내 부부 같은 사이가 된다. 둘은 막다른 골목에 서 있는 인생이다. 둘이 만나 사랑을 한다 해서 새로운 삶을 도모하지는 않는다. 둘은 안다. 자신들의 삶이 더 이상 좋아질 수 없다는 걸. 그러기에 서로에게 더 나아질 것을 바라지도, 강제하지도 않는다. 그저 얼굴을 만지고 안는다. 서로에게 원하는 건 그저 체온뿐이라는 것처럼.

카메라는 67분 동안 두 사람의 사랑을 지켜본다. 수환은 요양원에 입원하고, 영경은 그를 간호한다. 영경은 술을 못 참아 종종 수환 곁을 떠나고, 수환은 하염없이 기다린다. 영경이 언젠가는 돌아오리라는 걸 그는 안다. 사랑은 끊어질 듯 이어진다. 이윽고 예정된 이별이 찾아온다.

영경은 술 때문에 수환 곁을 떠나나 이내 돌아오기를 반복한다. 시네마 달 제공

영경은 술 때문에 수환 곁을 떠나나 이내 돌아오기를 반복한다. 시네마 달 제공


이야기는 단순하나 스크린이 품은 감정은 단순하지 않다. 바깥으로 밀려난 이들의 말과 몸짓은 여러 상념을 만들어낸다. 영화 속에는 마음을 휘젓는 장면들이 여럿 나온다. 술에 취한 영경과 다리가 불편한 수환이 휘청거리다 넘어지고, 또 휘청거리다 넘어지면서 서로에게 향하는 모습은 눈물을 부른다. 만취한 영경이 어느 봄밤에 만개한 목련을 보고 우는 장면 역시 마음을 누른다. 그는 왜 울었을까. 다시 못 올 인생의 봄밤이 서러워서일까. 연인과 봄꽃을 즐기지 못하는 삶이 서글퍼서일까.

‘봄밤’은 궁극적으로 사랑에 대한 영화다. 기댈 곳 없는 두 사람의 사연을 통해 사랑의 원형질을 스크린에 새긴다. ‘사랑은 오래 참고 온유하다’는 말은 두 사람의 사랑 앞에선 그저 관념적 수사에 불과해 보인다. 수환과 영경에게 사랑은 곁에 있는 누군가이며 체온이다.

영경(왼쪽)과 수환은 서로에게 바라는 게 딱히 없다. 그저 손을 잡고 포옹하는 걸 바랄 뿐이다. 시네마 달 제공

영경(왼쪽)과 수환은 서로에게 바라는 게 딱히 없다. 그저 손을 잡고 포옹하는 걸 바랄 뿐이다. 시네마 달 제공


영경과 수환의 대사는 문어체다. 영경은 술에 취하면 싯구를 외친다. 영화는 문학적이고 때로는 연극을 닮았다. 사회로부터 떨어져나온 두 사람의 소외감을 표현하기 위한 계산된 서술법으로 읽힌다. 영화는 쓸쓸하면서도 따스하고 종종 서글프다. 차가운 소주가 위장을 뜨겁게 할 때처럼 복합적인 느낌이 든다.

권여선 작가의 동명 단편소설을 바탕으로 만들어졌다. 배우들의 연기가 빛난다. 특히 한예리의 말과 동작은 잔상을 오래 남긴다. ‘푸른 강은 흘러라’(2009)로 데뷔한 강미자 감독의 두 번째 장편영화다. 9일 개봉했다. 15세 이상 관람가.

라제기 영화전문기자 wenders@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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