레알 마드리드의 주드 벨링엄이 6일(한국시각) 열린 2025 국제축구연맹(FIFA) 클럽 월드컵 8강전 도르트문트와 경기 도중 물을 마시며 더위를 식히고 있다. 이스트러더퍼드/AFP 연합뉴스 |
“지금은 춥다 춥다 춥다…”
프로축구 K리그 서울 이랜드 김주환(24)은 요즘 이렇게 자주 읊조린다. 낮 최고 37도(7일 기준) ‘찜통더위’에 무슨 소리인가 싶겠지만, 다 이유가 있다. “너무 더워서 경기 전에 이미지 트레이닝을 해요. 춥다고 되뇌면서 마음을 다잡으면 도움이 되어요.”
전·후반 40분씩 그라운드를 뛰어다녀야 하는 축구 선수들에게 폭염은 피할 수 없다면, 감당해내야 하는 일이다.
본격적인 무더위가 시작되면서 스포츠도 어김없이 더위와 전쟁을 시작했다. 선수들은 평소보다 물을 많이 마시는 것은 기본, 염소탕·추어탕 등 보양식과 영양제, 포도당 등을 챙겨 먹으며 더위를 이겨내고 있다. 이미지 트레이닝에 맞서는 이열치열 방법도 등장했다. 성남FC 브라질 출신 외국인 선수 사무엘 안드라데(25)는 “훈련하면서 일부러 더위에 몸을 자주 노출시킨다. 몸이 더위에 익숙해지도록 만든다”고 했다. 포항 스틸러스 신광훈(37)도 “더워도 냉방병 등을 조심하려고 되도록 에어컨을 멀리한다”고 했다.
김천종합운동장/ K리그1/ 김천상무프로축구단 vs 인천유나이티드/ 인천 요니치/ 더위/ 쿨링 브레이크/ 동원샘물/ 세수/ 사진 정재훈 |
축구는 훈련을 오전으로 옮기고, 야구는 더그아웃에 이동식 에어컨을 두는 등 구단들도 선수가 지치지 않도록 신경 쓴다. 하지만 매년 역대급 폭염을 경신하면서 스포츠에서 더위는 ‘견뎌야 하는 것’이 아닌 ‘피해야 하는’ 생존의 문제로 인식이 바뀌고 있다.
관련 규정이 올해 속속 등장했다. 프로축구연맹은 폭염 시 경기를 취소할 수 있는 규정을 새롭게 도입했다. K리그에서 2018년부터 실시한 쿨링 브레이크(수분 흡수를 위해 경기를 잠시 중단하는 시간)에서 한발 더 나아갔다. 국제축구연맹(FIFA)은 기온·습도·복사열 등을 종합한 온열지수(WBGT)가 32도 이상이면 전·후반 1회씩 쿨링 브레이크를 시행하도록 하고 있다. K리그는 횟수와 시간을 규정하지 않았지만 대부분 전·후반 1회씩 실시했는데, 몹시 더운 날에는 역부족이었다. 대한테니스협회도 폭염 속 선수 보호를 위한 ‘경기운영 안전 매뉴얼’을 지난 5일부터 시행하고 온열지수에 따라 경기를 중단하거나 휴식 시간을 갖도록 했다.
지난해 출범 이후 처음으로 더위에 4경기가 취소된 KBO리그는 8일부터 경기 운영 방침을 강화했다. 더블헤더 미편성 기간을 3·7·8월에서 6월까지 확대했고, 일요일 및 공휴일 경기 시작 시각을 7·8월(오후 5시→ 6시)을 넘어 9월1~14일(오후 2시→5시)까지 실시하기로 했다. 현행 4분인 클리닝 타임도 최대 10분까지 연장했다. 한국야구위원회(KBO) 유병석 커뮤니케이션 팀장은 “더위가 갈수록 일찍 시작되고 늦게 끝나면서 폭염 관련 규정도 확대되고 있다”고 했다.
2018년 프로야구 경기 도중 기아 타이거즈 양현종이 더그아웃에 있는 이동식 에어컨 앞에서 다양한 방법으로 바람을 맞으며 더위를 식히는 모습이 화제가 됐다. KBO 유튜브 채널 갈무리 |
길고 뜨거워진 더위는 실제로 선수와 관중을 위협하고 있다. 지난 1일(한국시각) 영국 런던에서 열린 2025 윔블던 테니스대회에서는 무더위에 지친 선수가 기권하고 관중이 탈진하는 일이 발생했다. 폭염 속에서 치러지고 있는 2025 국제축구연맹 클럽 월드컵에서는 선수들이 고통스러운 더위에 감독에게 교체를 요청하는가 하면, 후보 선수들이 전반전을 라커룸에서 시청하는 이례적인 장면도 연출됐다.
지난해 국내 여자 축구에서도 선수들이 탈진 직전까지 가는 일이 있었다고 한다. 한국프로축구선수협회 김훈기 사무총장은 “아마추어 대회는 더 심각하다. 선수들은 대부분 천막 아래에서 쉬고 선풍기 바람에 의지한다. 선수를 얼마나 안전하게 뛰게 할 것인지가 더 중요해진 시대”라고 강조했다. 대한야구소프트볼협회가 지난 8일 80회 청룡기 전국고교야구대회 일부 경기 시간을 오후 3시10분에서 오후 5시로 변경하기로 했지만, 열악한 환경을 변화시킬 구체적인 대안이 필요하다는 목소리는 여전하다.
노바크 조코비치가 지난 2일(한국시각) 윔블던 남자 단식 1라운드가 끝난 뒤 차가운 수건을 머리에 두르며 더위를 식히고 있다. 런던/AP 연합뉴스 |
폭염은 스포츠에서 해묵은 문제였지만, 최근 미국 동부 지역에서 온열 질환으로 수십명이 입원하는 등 이상 기후 증상이 계속되고, 내년 북중미월드컵 등 굵직한 대회를 앞둔 올해 변화를 촉구하는 목소리는 더욱 거세졌다. 폭염으로 인한 경기 취소 요건 완화 등 다양한 의견이 쏟아진다. 국제프로축구선수협회(FIFPRO)는 지난달 성명을 내어 “선수의 건강이 상업성보다 우선되어야 한다”고 강조하면서 “온열지수가 32도를 넘으면 경기를 연기해야 한다. 하프타임 시간을 기존 15분에서 20분으로 늘리고, 쿨링 브레이크 시간을 15분 간격으로 바꿔야 한다”는 구체적인 제안을 내놨다. 영국 포츠머스대 마이크 팁턴 교수는 영국 비비시(BBC)를 통해 “월드컵 결승을 오전 9시에 시작하는 방안도 고려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국내 한 스포츠 관계자는 “관중이 와야 하고, 중계도 해야 해 늦은 밤과 오전 경기는 현실적으로 불가능할 것”이라면서도, “심하게 더운 특정 기간에는 경기를 쉬는 등 스포츠 전체적으로 고민은 필요해 보인다”고 했다.
남자축구 대표팀 이호재가 지난 7일 경기 용인 미르스타디움에서 열린 2025년 동아시아축구연맹(EAFF) E-1 챔피언십 중국과 경기에서 교체 투입을 기다리며 얼굴에 물을 뿌려 더위를 식히고 있다. 연합뉴스 |
남지은 기자 myviollet@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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