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 9 재커리 테일러- 1
직업군인 출신 미국 대통령은 많지만, 국회의원이나 각료 등 행정 경험을 거치지 않고 곧장 군복을 벗고 대통령이 된 건 12대 대통령 재커리 테일러(Zachary Taylor, 1784.11.24~ 1850.7.9)가 유일하다. 버지니아주 대농장에서 태어나 켄터키주에서 성장한 그는 1808년 육군 장교로 임관, 1812년 미영 전쟁 중 영국을 편든 원주민 전투에서 큰 공을 세우고 미-멕시코 전쟁(1846~48)에서 결정적인 공을 세운 전쟁 영웅이다. 전임 제임스 포크의 임기(1845~49) 종료를 앞두고 언론은 그의 출마 가능성을 점쳤지만 그는 “그런 생각은 단 한 번도 해본 적 없고, 제정신이라면 아무도 하지 않을 생각일 것”이라고 일축했다. 이름 앞에 별명처럼 붙어 다니던 ‘늙고, 거칠고, 저돌적인(Old Rough and Ready)’이란 수식어처럼, 그는 지능 전술보다는 단순한 정공법에 능했던 고전적인 군인이었다.
하지만 당시 야당 휘그당(공화당 전신)은 기어코 그를 설득해 대통령 후보로 지명했고 그는 이듬해 무난히 대통령이 됐지만, 당 전당대회에서 “당을 위해 내 신념을 굽히는 일은 없을 것”이라고 선언했다. 그의 신념이란 노예제 확대 반대였다.
미-멕시코 전쟁으로 얻은 캘리포니아와 텍사스의 영토상의 지위 문제가 그의 집권기 최대 현안이었다. 정식 주로 편입할지, 준주(territorial status)로 남겨둘지의 문제. 거기에는 당시 남-북부의 주요 갈등요인이던 노예주냐 자유주냐의 문제가 겹쳐 있었다. 자치권을 지닌 정식 주라면 주 헌법을 통해 결정할 문제지만 준주라면 연방 의회에 결정권이 있었고, 그건 장기적 갈등 요인이었다.
군복을 벗고 곧장 대통령 선거에 출마해 당선한 미국 12대 대통령 재커리 테일러. 위키피디아 |
직업군인 출신 미국 대통령은 많지만, 국회의원이나 각료 등 행정 경험을 거치지 않고 곧장 군복을 벗고 대통령이 된 건 12대 대통령 재커리 테일러(Zachary Taylor, 1784.11.24~ 1850.7.9)가 유일하다. 버지니아주 대농장에서 태어나 켄터키주에서 성장한 그는 1808년 육군 장교로 임관, 1812년 미영 전쟁 중 영국을 편든 원주민 전투에서 큰 공을 세우고 미-멕시코 전쟁(1846~48)에서 결정적인 공을 세운 전쟁 영웅이다. 전임 제임스 포크의 임기(1845~49) 종료를 앞두고 언론은 그의 출마 가능성을 점쳤지만 그는 “그런 생각은 단 한 번도 해본 적 없고, 제정신이라면 아무도 하지 않을 생각일 것”이라고 일축했다. 이름 앞에 별명처럼 붙어 다니던 ‘늙고, 거칠고, 저돌적인(Old Rough and Ready)’이란 수식어처럼, 그는 지능 전술보다는 단순한 정공법에 능했던 고전적인 군인이었다.
하지만 당시 야당 휘그당(공화당 전신)은 기어코 그를 설득해 대통령 후보로 지명했고 그는 이듬해 무난히 대통령이 됐지만, 당 전당대회에서 “당을 위해 내 신념을 굽히는 일은 없을 것”이라고 선언했다. 그의 신념이란 노예제 확대 반대였다.
미-멕시코 전쟁으로 얻은 캘리포니아와 텍사스의 영토상의 지위 문제가 그의 집권기 최대 현안이었다. 정식 주로 편입할지, 준주(territorial status)로 남겨둘지의 문제. 거기에는 당시 남-북부의 주요 갈등요인이던 노예주냐 자유주냐의 문제가 겹쳐 있었다. 자치권을 지닌 정식 주라면 주 헌법을 통해 결정할 문제지만 준주라면 연방 의회에 결정권이 있었고, 그건 장기적 갈등 요인이었다.
그는 휘그당이 마련한 이른바 ‘1850년 타협안’- 캘리포니아 주 편입, 나머지 준주 편입- 이, 말 그대로 어정쩡한(정치적) 타협안이란 이유로 반대했다. 그럼으로써 남부 기반 민주당은 물론이고, 여당과도 척을 졌다. 대치가 한창이던 1850년 7월 9일, 그는 원인 불명의 짧은 병증 끝에 재임 14개월 만에 숨졌다(계속).
최윤필 기자 proose@hankookilbo.com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