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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규나의 소설 같은 세상] [285] 노인을 위한 나라는 있는가

조선일보 김규나 소설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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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0세 사망 법안이 가결되었다. 이에 따라 이 나라 국적을 지닌 사람은 누구나 70세가 되는 생일로부터 30일 이내에 반드시 죽어야 한다. 정부 추산에 따르면, 이 법안이 시행되면 고령화에 부수되는 국가 재정의 파탄이 일시에 해소된다고 한다. 지난 10년간, 이 나라의 저출산과 고령화 현상은 예상을 뛰어넘는 속도로 진행되었다. 그 여파로 연금 제도가 붕괴되었으며 국민 의료보험은 바닥을 드러내기 직전이다. 나아가 장기 요양보험은 인정 조건이 점차 까다로워졌음에도 재원이 충당되지 않고 있다.

- 가키야 미우 ‘70세 사망 법안, 가결’ 중에서

소설 '70세 사망 법안, 가결' 표지.

소설 '70세 사망 법안, 가결' 표지.


2015년에 발표된 소설 ‘70세 사망 법안, 가결’ 속 사회에서는 70세가 되면 누구나 죽어야 한다. 고령화에 따른 국가 재정 파탄을 막기 위한 법이 통과되었기 때문이다. 58세의 무심한 남편은 더 이상 가족 부양에 인생을 낭비하지 않겠다며 조기 퇴직 후 혼자 여행을 떠났다. 13년 전 뇌경색으로 쓰러진 시어머니는 일흔이 넘었지만 법안은 2년 후부터 시행된다. 55세 아내는 남은 인생 15년 중 시어머니 수발로 2년을 더 보내야 한다고 생각하니 억울하다.

2022년 개봉한 영화 ‘플랜 75’의 사회에서는 75세가 되면 누구나 죽음을 선택할 수 있다. 신청자에게는 상담 서비스와 장례 절차, 유품 정리가 포함된 ‘죽음 패키지’가 제공된다. 78세의 주인공은 나이가 많다는 이유로 실직하고 생활이 막막해지자 플랜 75를 신청한다. 언뜻 자유로운 선택 같아도 실은 외통수에 몰린 결정, 사회가 슬며시 떠민 결과였다. 그녀는 정말 죽음을 원하는지, 힘들다는 이유로 삶을 포기해도 되는지 깊이 고민한다.

한국도 초고령 사회에 접어들었다. 통계청에 따르면 2024년 기준 65세 이상 노인이 전체 인구의 20%를 넘었다. 10년 뒤엔 30%, 2050년에는 인구 절반이 노인 세대로 채워질 전망이다. 이에 서울시가 대단지 아파트의 주간 노인 요양 시설 입법화를 추진하고 있다. 하지만 센터 건립을 반대하는 주민들 목소리도 작지 않은 모양이다.

젊음과 늙음은 서로 화해할 수 없는 상극일까. 거부하고 싶지만 누구나 늙고 병든다. ‘나이는 숫자에 불과하다’는 말은 건강할 때만 유효하다. 거동할 수 없어 누군가의 손을 빌려야 할 때가 되면 노인은 사회에서 멀찍이 밀려나기 마련이다. 병들고 외로운 노후를 어떻게 살아야 할까? 지금, 이 순간에도 노인이 되어가고 있는 우리 모두가 함께 해결해야 할 문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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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규나 소설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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