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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험은 겪는 것인가 보는 것인가 [이지은의 신간: 경험의 멸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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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지은 기자]
이 책은 일상 곳곳에서 경험이 사라지고 있는 우리의 현실을 깊이 있게 탐구한다.[사진 | 연합뉴스]

이 책은 일상 곳곳에서 경험이 사라지고 있는 우리의 현실을 깊이 있게 탐구한다.[사진 | 연합뉴스]


사람은 경험을 통해 세상을 접하고 살아가는 방법을 배운다. 몸소 실천하는 과정이 있어야 무언가를 배울 수 있다고 여겨왔다. 그런데 경험의 형태가 변하고 있다. 많은 이들이 랜선 여행으로 간접 경험을 하고, 먹방(먹는 방송)을 통해 대리 만족을 느낀다. 두시간 남짓 영화를 요약본 동영상으로 대체하거나, 핵심만 추려 놓은 글로 한권의 독서를 대신한다.


문서 작성을 인공지능(AI)에 맡기고, 지시어를 입력해 간단히 그림을 그리기도 한다. 대면 소통은 불편한 일이 돼 가고, 지도 앱 도움 없이 길을 찾는 건 생각하기 어렵다. 그 자리를 대체한 것은 AI를 비롯한 디지털 기술이다. 기술로 매개된 경험이 직접 경험보다 더 우선시되고 있다.


이렇게 인간의 직접 경험이 기술을 통한 매개 경험으로 대체되면서 경험은 '겪는' 일보다 '보는' 일로 바뀌고 있다. 힘들게 실천하거나 굳이 사람 간의 상호작용을 고민하지 않고도 편리하게 경험할 수 있는 세상이 된 것이다.


크리스틴 로젠의 「경험의 멸종」은 경험이 소멸하는 현상을 탐구하고 그 소멸이 갖는 의미를 철학적으로 분석한다. 저자는 "우리는 더 이상 경험으로부터 현실을 배우지 않는다. 대신 가상의 체험을 통해서 실제 경험을 모방한다"며 인간의 직접 경험들이 사라져가는 지금, 이 흐름을 바꿔야 하는 근거들을 짚어간다.


이 책은 기술로 매개된 경험이 직접 경험을 앞지른 원인을 2가지로 꼽는다. 하나는 '매끄러움'과 '최적화'를 선호하는 기술 사용자들이 많아졌다는 것이다. "실제 경험에는 혼란과 마찰이 있고 계산되지 않으며, 자신의 시도가 실패할 가능성이 존재하지만, 데이터를 통해 최적화된 기술 세계는 다르다. 사용자가 실패할 가능성이 최소화됐다." 기술 사용자들은 이 매끄러운 세계에서 고통과 실패가 삭제된 경험으로 실제 경험을 대체하고 있다고 말한다.



두번째 원인은 기술을 설계한 빅테크 기업들의 이익 추구다. 저자는 우리가 빅테크 기업들이 기술을 발전시키는 목표를 망각하고 있다고 지적한다. "그 목표란 이윤 추구다. 빅테크 기업들은 자신들의 이윤 추구를 위해 기술 사용자들에게 유토피아와 같은 세계를 약속하고, 이로써 현실 경험을 대체해 나간다"고 설명한다.


저자의 설명처럼 매끄럽고 자동화된 매개 경험에 비해 실제 현실은 언제나 실패의 가능성이 존재하는, 혼란스러운 공간이다. 그러나 이 책은 그런 현실을 옹호해야 한다고 강조한다. 그 혼란과 실패가 바로 인간적인 삶의 핵심이기 때문이다.


또한 저자는 지적한다. "책을 읽지 않고 기기에 요약해 달라고 하는 일은 독서의 종말을, 문서 작성을 AI에 맡기는 일은 생각의 종말을, 지시어만을 입력해 그림을 얻는 일은 창작의 종말을 앞당길 수 있다." 우리가 인간의 영역이라 여기던 모든 경험을 기술에 맡긴다면 인간다움도 함께 잃을 수 있다고 경고한다.

일상 곳곳에서 직접 경험이 사라지고 있다. 대면 소통, 손으로 쓰고 그리는 일, 무언가를 기다리는 순간 등이 멸종 위기에 처해 있다. "경험의 멸종 시대를 그대로 받아들이기보다 이에 저항해야 한다. 경험의 멸종은 불가피한 것이 아니다. 그것은 선택이다." 저자는 공동체 회복과 우리의 선택이 무엇보다 필요한 때라며, '인간다운 삶'을 되찾아야 한다고 강조한다.

이지은 더스쿠프 기자

suujuu@thescoop.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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