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근대 형법에 폭행을 뜻하는 ‘투구(鬪毆)’와 함께 ‘매리(罵詈)’라는 항목이 있다. 행동이 아니라 말로 가하는 폭력을 뜻하는 말인데, 상대의 면전에서 악담을 퍼부어 능욕하는 것을 매(罵), 지저분한 뒷담화로 헐뜯는 것을 리(詈)로 구분하기도 한다. 일방적 매리는 태형 10대, 쌍방의 매리는 각각 태형 10대씩에 처했다. 투구는 누가 정당한지, 누가 먼저 했는지를 따져서 차등 처벌한 데 비해 매리는 시비와 선후에 관계없이 양측에 같은 형량을 부과했다.
말에 실형을 내려온 역사는, 때로 구타보다 욕설을 더 견디기 어려워하는 심리를 반영한다. 개인 간 문제가 아니라 특정 집단에 대한 혐오·차별로 인한 폭언의 경우, 문제는 더 심각하다. 자신의 언행과 아무 상관도 없이 그저 그 집단에 속한다는 이유만으로 받아야 하는 지속적 폭력이기 때문이다. 재특회(在特會)라는 우익 단체가 재일교포들을 상대로 자행한 이른바 ‘헤이트 스피치’, 즉 혐오 발언 시위가 그 사례다. 그로 인한 공포감·불면증을 호소하는 재일교포 3, 4세가 적지 않다.
참으로 부끄러운 일이 이 땅에서도 일어나고 있다. “윤어게인”을 외치는 극우 시위대가 중국인을 폄하하는 비속어를 쓰며 “빨갱이는 대한민국에서 꺼져라”라는 노래를 제창하는 영상이 전파되고 있다. 재특회라는 이름이 재일 조선인의 특권을 용납하지 않겠다는 왜곡된 발상에서 비롯한 것과 마찬가지로, 이들은 재한 중국인들이 대학 입시와 등록금에서 특혜를 누린다는 가짜뉴스를 함께 퍼트리고 있다. 더구나 그들이 대구에서 혐중 시위를 벌인 곳은 중국도 아닌 대만 정부가 운영하는 초등학교 앞이었다.
편견과 호오에서 자유로운 사람은 없다. 그러나 의도적으로 거짓 정보를 내세우며 특정 집단에 대한 언어폭력을 공개적으로 일삼는 행위는 결코 정당화될 수 없다. 일본은 재특회의 망동을 처벌할 수 있는 법적 근거를 2016년 마련했다. 그것만으로 역사에 뿌리내린 모든 문제가 해결될 수는 없겠지만, 그런 법마저 없는 우리보다는 앞서갔다. 표현의 자유를 일부 제한해서라도 폭력적인 혐오와 차별의 말에 법적으로 제동을 걸어야 한다. 그러지 않으면 그 말은 결국 우리를 향하게 될 것이다.
송혁기 고려대 한문학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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