검사 결과를 들으러 온 50대 남자 환자분이 내 옆에 앉자마자 긴장감도 없이 심드렁하게 묻는다. 내 전공은 뼈나 근육에 생긴 암 치료라 재발하는 경우가 심심치 않게 있긴 하지만 이 환자처럼 수개월 간격으로 계속 재발하는 경우는 흔치 않은 일이다. 병이 원래 그렇다는 것을 환자도 잘 알고 있지만, 환자분을 볼 때마다 면목이 없어서 곤혹스럽다.
그는 2년 전쯤 외상에 의한 대퇴골 골절을 진단받고 다른 병원에서 골절 수술을 받은 환자다. 골절 당시 엑스레이는 그저 평범한 상태였고, 수술 후 엑스레이를 보면 아주 잘된 수술이었다. 그런데 수술 후 3개월쯤 엑스레이에선 뼈가 붙는 게 아니라 골절 간극이 멀어지면서 뭔가가 뼈 주위에 생기는 듯한 이상한 모습이 나타나기 시작했다. 알고 보니 단순 골절이 아니라 연골육종이라는 병이 대퇴골에 있었던 것이다. 소위 말하는 병적 골절이라는 것인데, 이는 외상이 동반되긴 했어도 골절의 근본 원인이 뼈에 생긴 암 때문이었을 것이다.
아주 드문 일이긴 하지만 이렇게 암에 의한 골절인지 모르고 치료를 받는 경우가 있는데, 이런 경우 뼈 안에 있던 암조직이 폭발하듯 터져 나와 주변의 근육에 퍼져버린 것이라 나중에 뼈를 전부 제거하는 수술을 해도 근육에 오염된 암조직이 끊임없이 재발하게 된다. 이 환자가 바로 그런 경우다.
근육을 통째로 드러낸 수술도 하고 자잘하게 떼어낸 것만 해도 벌써 다섯 번은 되겠다. 허벅지는 근육을 하도 떼어내서 이미 팔뚝 정도로 가늘어졌고, 걸으면 저린 감이 있다고 하는데, 그래도 지팡이를 짚고 걷는다. 환자는 자기 다리가 뼈만 남았다면서 피식 웃곤 한다. 작년에도 여러 번 수술을 했고, 올해도 2월인가 수술했는데, 수술한 지 2개월 만에 또 작은 혹들이 보인다.
"그러네요, 초음파상으로 작은 것들이 한두 개 보입니다."
"언제 다시 수술할까요?"
"이렇게 작으면 막상 수술실에서 혹을 찾아서 잘 떼기가 쉽지 않으니 다음번 검사 후에 하시죠. 그런데 말입니다. 이렇게 매번 반복되는 재발한 혹을 제거하기보다는 절단하는 게 어떻겠습니까? 반복되다 보면 폐로 전이되고 그때는 생명을 담보하기 어려운데 아직은 폐 전이가 없으니 적극적으로 해보는 게 맞거든요."
그는 나를 보면서 특유의 쓴웃음을 짓는다. 두 번째 수술부터 절단술을 권했으니 새삼스럽지도 않다는 듯 또 그 소리냐고 시큰둥하게 반응한다.
"에이, 절단은 안 하고 그냥 이러다가 이번 생은 끝낼까 합니다."
"아직 젊으신데, 절단하고라도 살아야지요!"
"아닙니다. 교수님, 그냥 그렇게 해주세요. 제게 미안해하지 마시고요. 교수님 잘못도 아니고, 제 운명인 걸 어떻게 합니까. 귀찮고 짜증이 나시겠지만, 그냥 지금처럼 생길 때마다 떼는 것으로 해주세요."
지난달엔 진단과 치료 시기를 놓친 암으로 인해 팔을 절단한 80대 할아버지가 계셨는데, 그분은 오히려 팔을 잘라도 좋으니 제발 살려만 달라고 하셨다. 생명에 대한 기대는 개인마다 차이가 있긴 하다. 내 앞에서야 '그냥 이렇게 치료를 받다 가겠습니다'라고 말하지만, 진료실을 나와 갈 길을 가는 그 여정에서 마음은 어떨까 싶다. 아마도 하늘이 무척 아름답다고 느끼지 않을까. 아주 오래전에 말기 암환자가 내게 한 말이 생각난다. 내년 봄을 볼 수 있을까요? 생명은 누구에게나 소중한 것인데, 힘들더라도 포기는 하지 마세요.
[박종훈 고려대 의과대학 교수·한국병원정책연구원장]
[ⓒ 매일경제 & mk.co.kr, 무단 전재, 재배포 및 AI학습 이용 금지]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