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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광화문에서/조건희]청소년 자살 위험신호… 심리부검으로 밝혀야

동아일보 조건희 사회부 차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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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건희 사회부 차장

조건희 사회부 차장

그 아이들 36명 중 25명은 성적이 평균 이상이었다. 18명은 학교생활에 만족했다. 16명은 학교 클럽에도 가입한 상태였다. 아이들의 짧은 삶을 들여다본 연구진은 이렇게 적었다. “많은 경우 겉으로는 문제없어 보였다. 그러나 속으로는 큰 고통을 겪고 있었다.”

그 아이들은 자살 청소년이다. 지난해 홍현주 한림대 의대 정신건강의학교실 교수팀은 2015년부터 2021년 사이 스스로 생을 마감한 초중고교생 중 36명을 심리부검 형식으로 조사해 그 결과를 논문으로 발표했다. 심리부검은 유족의 진술과 고인의 기록을 바탕으로 자살 원인을 추정하는 방식이다.

그런데 교육부의 한시적 예산으로 진행한 이 연구는 청소년 사망자를 대상으로 한 국내 처음이자 마지막 심리부검이었다. 보건복지부가 2015년부터 공식적으로 시행하는 심리부검은 만 19세 이상 성인에 한정돼 있기 때문이다.

연구 결과에는 그간 통계로는 드러나지 않았던 청소년 자살의 단면이 담겼다. 숨진 36명 중 29명은 생전 말이나 행동으로 ‘위험 신호’를 보냈다고 한다. 갑자기 말이 줄고 방에 혼자 있는 시간이 길어졌거나, “나 없어졌으면 좋겠어” 같은 말을 농담처럼 내뱉었던 경우다. 지난달 21일 부산 해운대구에서 함께 숨진 채 발견된 여고생 3명도 마찬가지였다. 현장에는 학업 스트레스와 진로 부담을 호소하는 유서가 있었다고 한다.

36명 중 35명이 정신질환으로 진단된 바 있지만 정기적으로 약물 치료를 받은 사례는 단 3명뿐이었다. 이는 정신질환에 대한 낙인을 줄이고 전문가의 도움을 당연히 여길 수 있는 문화가 절실하다는 점을 확인시켜 준다. 2022년 국립정신건강센터 실태조사에 따르면 전체 청소년의 18%가 우울 불안 같은 정신질환을 경험하지만, 정신건강 서비스를 한 번이라도 이용한 비율은 5.6%에 불과하다.

청소년 자살을 성인과 다르게 접근할 필요가 있다는 점도 연구로 확인된다. ‘첫 시도’가 치명적인 결과를 낳는 경우가 많기 때문이다. 성인 자살 사망자의 41.1%는 과거 자살을 시도한 적이 있었지만, 심리부검에 따르면 청소년은 그 비율이 13.9%에 불과했다. ‘응급실 기반 자살 시도자 사후관리’ 같은 기존 자살 예방 정책만으로는 청소년 자살을 막기에 충분하지 않다는 뜻이다.


청소년 자살의 심각성은 몇 가지 수치만 봐도 분명하다. 2023년 한 해 동안 370명의 10대 청소년이 스스로 목숨을 끊었다. 인구 10만 명당 자살 사망률로는 통계 작성(1983년) 이래 가장 높았다. 2011년 이후 10대 사망 원인 부동의 1위가 자살이다.

이재명 대통령이 지난달 5일 취임 첫 국무회의에서 “우리나라 자살률이 왜 이렇게 높은가”라며 관련 대책 마련을 주문했다. 청소년 자살에 대해 실효성 있는 대책을 내놓으려면 원인을 정확히 짚는 게 출발점이 돼야 한다. 그 시작은 심리부검을 정례화하고 확대하는 것이다.

조건희 사회부 차장 becom@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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