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껍질이 필요한 이유[내가 만난 명문장/김목인]

동아일보 김목인 싱어송라이터·작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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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껍질이 딱딱한 이유는 단단한 뼈를 가질 수 없었기 때문입니다.”

―류한창 ‘갑각류’ 중


김목인 싱어송라이터·작가

김목인 싱어송라이터·작가

작가가 없는 조용한 전시장에서 이 절묘한 문장을 만났다. 전시 소식은 관람 1시간 전 작가와 문자메시지를 나누다가 슬쩍 알게 됐는데, 쑥스러움이 많은 그는 장소나 제목을 남기지 않았다. 결국 검색을 해서 찾아갔다. 내가 지인의 전시를 꼭 챙기는 의리파처럼 보이겠지만 전혀 아니다. 나는 이런 일이 생기면 갈지 말지를 두고 늘 고민한다. 특히 해당 주간에는 공연 일정이 있었기에 따로 시간을 내느니 듣자마자 가는 쪽을 택했다.

문장 위에는 자기 키만 한 집게발을 쓴 사람이 슬며시 밖을 내다보는 모습의 일러스트가 있었다. 분명 작가의 모습이자 별반 다르지 않은 나의 모습이었다. 껍질의 투명도가 다를 뿐 살짝 숨어 있는 사람들, 늘 자신을 더 드러내 보라는 말을 듣는 사람들.

나는 곧 있을 공연을 생각했다. 사람들은 내 성격에 대해 알고 나면 그런 사람이 어떻게 무대에 서느냐며 신기해했다. 또 무대 위의 내가 전혀 긴장한 것처럼 보이지 않는다고도 했다. 그게 모두 ‘껍질’ 때문이다. 사실 나는 늘 긴장하지만 나름의 껍질을 만들어 두르고 있다. 작은 공연 위주로 활동을 제한한다거나 노래에 싱거운 농담을 섞는 것. 물론 안다. 이 껍질이 식은땀을 흘리거나 기절하는 것은 막아주겠지만, 내면의 더 많은 모습을 드러내는 데는 방해가 될지 모른다는 것을.

그러나 나이가 들며 껍질도 뼈도 없는 연체동물이 돼가는 느낌이다. 오해에 무뎌지고 약점을 들켜도 그러려니 하게 된다. 그런데 그게 나쁘지만은 않다. 예전 같으면 이 문장도 언젠가 써먹을 무기로 잘 적어뒀을 것이다. 그러나 오늘은 비슷한 영혼이 대신 던져준 부드럽고 애교 있는 항변으로 읽었다. ‘너무 뭐라고 좀 하지 마세요. 나름의 뼈가 필요했다고요.’

김목인 싱어송라이터·작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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