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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입 우리말]나는 어떤 ‘꾼’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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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땀 한 땀 정성스레 전통 공예품을 만드는 사람, 새로운 기술을 탐구하는 사람, 아름다운 자연을 카메라에 담는 사람. 어쩌면 많은 이들이 장인, 마니아, 전문가, 혹은 덕후를 떠올릴지도 모른다. 부정적 어감 때문인지 ‘꾼’은 쉽게 입에 붙지 않는다.

우리말에서 ‘꾼’은 어떤 일에 능숙하거나 그 일에 종사하는 사람을 가리키는 중립적인 말이다. 낚시꾼, 나무꾼, 농사꾼, 구경꾼처럼 긍정도 부정도 아닌 그저 ‘하는 사람’이라는 뜻을 담고 있다.

시간이 흐르면서 상황이 달라졌다. 도박, 협잡, 사기 등 질이 나쁜 단어들과 자주 만나면서 ‘꾼’에 부정적인 의미가 덧씌워졌다. 이런 어감 변화는 일상에도 영향을 미쳤다. 이제는 어떤 일에 깊이 빠져 있거나 열정적으로 몰두하는 사람을 ‘꾼’보다 덕후, 마니아로 부르는 일이 훨씬 흔하다. 영화꾼이나 사진꾼보다 영화 덕후나 사진 마니아가 더 친숙하게 다가온다.

‘덕후’는 일본어 ‘오타쿠’에서 온 말로 한 분야에 깊이 빠진 사람을 뜻한다. ‘마니아’는 고대 그리스어에서 유래된 영어 단어다. 이들은 어느덧 우리말 속으로 슬며시 스며들었고, 이제는 아예 ‘꾼’의 자리를 꿰차고 들어앉았다.

언어는 시대와 함께 변하고, 새로운 단어가 유입되는 것은 자연스러운 현상이다. 다만 이러한 변화의 이면에는 우리말 고유의 멋과 정서가 점점 희미해지는 아쉬움이 남는다. 언어가 단순한 의사소통 도구를 넘어 그 사회의 역사와 정체성을 담는 중요한 역할을 한다는 점에서 이는 더욱 그렇다. ‘꾼’이 가진 중립적이고 포용적인 의미는 점차 사라지고, 대신 외래어가 그 자리를 차지하고 있다.

‘꾼’이 태생적으로 나쁜 뜻은 아니다. 소리꾼, 솜씨꾼처럼 특정 분야에 대한 깊은 이해와 숙련된 재능을 긍정적으로 표현할 수 있는 말이다. 우리 주변에 자신의 자리에서 빛을 발하는 ‘꾼’들이 많다. 나도 내 분야에서는 인정받는 ‘우리말꾼’이고 싶다. 외래어와 신조어의 홍수 속에서 ‘덕후’나 ‘마니아’가 미처 담지 못하는 ‘꾼’이 지닌 깊은 의미를 새삼 되새겨본다.


김선경 교열부 선임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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