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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외화내빈’…국립현대미술관, 관객은 몰리지만 욱여넣은 전시 구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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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5월20일 서울 종로구 국립현대미술관 서울관을 찾은 관람객이 론 뮤익의 작품 ‘침대에서’를 감상하고 있다. 연합뉴스

지난 5월20일 서울 종로구 국립현대미술관 서울관을 찾은 관람객이 론 뮤익의 작품 ‘침대에서’를 감상하고 있다. 연합뉴스


겉으론 호시절이다. 전시 모양새와 때깔이 좋다. 관객들은 아침부터 저녁까지 장사진을 이룬다.



지금 서울 소격동 국립현대미술관 서울관의 모습이다. 지난 4월부터 지하층 5·6전시실에서 열고 있는 오스트레일리아 극사실주의 설치 작가 론 뮤익의 국내 첫 개인전에는 하루 평균 5천명 넘는 관객들이 찾아온다. 이번 주 초 50만명 돌파가 유력해 2013년 개관 이래 최다 관객 기록을 눈앞에 두고있다. 그 덕분에 미술관의 다른 공간에 차린 상설전 ‘한국현대미술 하이라이트’와 기획전 ‘기울인 몸들’ 등에도 사람들이 몰린다.



다른 분관들 전시도 뒤지지 않는다. 덕수궁관 기획전 ‘초현실주의와 한국근대미술’은 국내 초현실주의 미술을 처음 전시 주제로 다뤘고, 과천관의 상설전 ‘한국근현대미술 1·2’도 전례 없는 규모로 풀어낸 소장품 명작전이란 점에서 대중의 관심을 끌고 있다. 미술관 홍보고객과는 거의 매주 관객 숫자와 흥행 성과를 담은 자화자찬 보도자료를 내며 홍보에 열을 올리는 중이다.



그런데 미술계 기획자와 평론가 반응은 딴판이다. 미술관의 기획전 꾸림새를 두고 우려와 질타가 끊이지 않는다. 전시 얼개나 작품 구성 등이 뛰어나고 알차서 관객이 모이는 게 아니라는 진단이다.



국립현대미술관 서울관 상설전 ‘한국현대미술 하이라이트’ 전시 현장. 1층 1전시장의 일부로 한국 실험미술을 소개하는 영역이다. 노형석 기자

국립현대미술관 서울관 상설전 ‘한국현대미술 하이라이트’ 전시 현장. 1층 1전시장의 일부로 한국 실험미술을 소개하는 영역이다. 노형석 기자


서울관의 상설전 ‘한국현대미술 하이라이트’는 좁은 공간에 작품들을 빽빽하게 몰아붙이듯 배치한 점이 거슬린다.



1950년대 말부터 2000년대까지 한국 현대미술사를 수놓은 작가 83명의 작품 80여점을 1층 1전시실과 단차가 큰 지하1층 2전시실에 시선의 여유 공간을 주지 않고 조밀하게 모아놓았다. 김환기의 1970년대 푸른 점화 대작과 최욱경의 색연필 추상화로 시작해 2000년대 송상희의 영상 드로잉으로 맺음되는 이 전시는 50여년의 시간대를 품고 있지만, 구성의 묘미와 해석의 맥락을 제대로 읽을 수 없다.



1950~70년대 추상과 1960~70년대 실험적인 사물 설치 작품, 1970~90년대 형상회화, 1990년대 혼성적 다장르 작품들, 1990~2000년대 한국적 개념 미술과 다큐멘터리 영상 작품 등 6개 영역으로 가지를 치면서 흘러가지만, 지나칠 정도로 밀집한 작품들의 배치 얼개 때문에 시기별 대표작들의 실물들을 점검하듯 확인했다는 정도의 인상으로만 다가오는 한계가 여실하다.



특히 1층 안쪽의 ‘실험미술’과 ‘형상성’ 영역에서 이런 양상은 도드라져 보인다. 실험미술 대가 이강소 작가의 산 닭 퍼포먼스 흔적과 사진 연작, 김구림 작가의 비디오 영상물 ‘24분의 1초’, 환영과 현실의 경계를 은유한 김용익의 천 설치물이 리얼리즘 대가 신학철의 ‘한국현대사’ 연작, 황재형의 탄부의 옷 그림, 오윤의 ‘원귀도’ 등과 엉겨붙듯 배치된 두 영역 전시 공간들은 감상의 맥락에서 최악의 얼개였다.



전시 기획자 출신인 기혜경 홍익대 교수(미술사학)는 “시기나 주제, 작품 등을 좀 더 함축해 한국 현대미술사를 전체적으로 조망하는 의미와 흐름을 짚어줘야 했다”고 아쉬움을 드러냈다.



론 뮤익 개인전은 프랑스 보석 재벌이 만든 카르티에 재단의 지원 아래 전시 기획도 카르티에 쪽이 주도한 전형적인 블록버스터 전시다. 거대 또는 초미세 스케일의 정밀한 인체 조형상이 인스타그램 등 에스엔에스(SNS) 인증에 맞춤해 20~30대 젊은 관객들 사이에서 열광적인 인기를 얻었지만, 국립미술관 큐레이터들이 고심해서 만든 독창적인 전시 기획 결과물은 아니다.



그런데도 이런 사정은 묻고 자신들이 일궈낸 최고 실적처럼 연일 자화자찬하는 건 국가 미술기관의 정체성·사명감과는 동떨어진 행태라는 비판이 나온다. ‘침대에서’, ‘마스크’ 등 상당수 출품작은 이미 리움 등 국내 다른 미술관에서 수년 전 공개된 선례가 있고, 작가가 현재 세계 미술계에서 주요 트렌드를 이끄는 주역이 아니란 점에서도 그렇다.



국립현대미술관 서울관 정문 현관 앞에 놓인 리처드 도허티의 설치 조형물 ‘농인 공간: 입을 맞추는 의자’(2025). 노형석 기자

국립현대미술관 서울관 정문 현관 앞에 놓인 리처드 도허티의 설치 조형물 ‘농인 공간: 입을 맞추는 의자’(2025). 노형석 기자


지하 3·4전시실의 ‘기울인 몸들’전은 일반 관객 눈높이를 고려한, 세심한 기획틀의 부재가 아쉽다. 최근 국제 전시 트렌드 중 하나인 장애인과 노약자의 몸과 감각적 체험을 화두 삼아 국내외 작가 15팀이 각기 개성적 얼개의 설치, 사진, 영상, 조각 등의 작업들을 내놓으며 소통을 권하지만, 작품들의 구성은 평면적이고 차린 모양새도 난해하다.



전시 공간이 무슨 이야기를 하는지 쉬이 전달되지 않는다. 단적으로 서울관 정문 현관과 계단 사이를 가로막는 구도로 놓인 리처드 도허티의 삼색 설치물 ‘입을 맞추는 의자’는 이 전시의 대표작이지만, 겉모습만으론 실체를 짐작하기 어렵다. 전시 기간 중 이 작품이 정면을 가로막는 탓에 관객은 측면 경사로로 돌아가서 미술관을 드나들게 되는데, 장애인 눈길로 시설을 되돌아보라는 취지라고 미술관 쪽은 설명한다.



하지만 이런 취지는 작품 한쪽에 붙은 작은 설명판에 짧게 서술된 탓에 대다수 관객은 설명판 내용을 지나친 채 의자에 앉아서 휴식을 즐기는 모습이었다.



덕수궁관의 ‘초현실주의와 한국근대미술’전도 20세기 초 유럽에서 발흥한 초현실주의 사조의 범주와 개념에 대해 정교한 사전 연구로 틀거지를 잡아놓지 않은 채 ‘코에 걸면 코걸이’ 식의 아마추어적인 개념 큐레이팅을 했다는 뒷말이 꼬리를 문다.



일본에 귀화한 뒤 자식에게도 한반도 혈통임을 숨기고 철저한 일본 화가로 살며 초현실주의 그림을 그린 자이니치 예술가 마나베 히데오(김종남, 1914~1986)를 한국 근대 화단에서 묻혔던 초현실주의 대가처럼 부각해 소개한 것도 상식적으로 이해하기 어렵다는 반응이 적지 않다. 기획자가 김종남에 이어 김욱규, 김종하, 박광호, 김영환, 신영헌 등 묻혀있던 국내 초현실주의 화풍의 화가들을 발굴해 소개했다는 의미가 적지 않지만, 발굴 작가전이란 형식을 넘어 사조의 개념에 대한 논의가 익지도 않은 상황에서 섣불리 한국 근대미술사에 작가들을 편입시키는 설익은 기획으로 도리어 혼선을 일으킨 측면이 크다.



미술계의 한 소장 평론가는 “서울관의 소장품전이나 덕수궁 기획전의 경우 기획진의 미진한 역량도 문제지만, 이런 기획 틀을 별다른 검토와 협의 없이 받아들인 관장과 학예실 간부들의 태도도 문제”라고 꼬집었다.



노형석 기자 nuge@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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