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제강점기 조선에서 선교활동을 했던 안드레아스 에카르트 신부는 한·중·일 세 나라 중에서 조선의 미가 ‘가장 고전적’이라고 극찬했다. 한국의 담양 소쇄원. 연합뉴스 |
▶이코노미 인사이트 구독하기 http://www.economyinsight.co.kr/com/com-spk4.html
약 20년 동안 조선에서 선교활동을 했던 안드레아스 에카르트 신부가 독일에서 1929년 독일어와 영어로 ‘조선미술사’를 출간했다. 이 사실을 아는 사람은 많지 않다. 게다가 에카르트가 이 책에서 중국과 일본, 조선을 비교하며 조선의 미를 세 나라 중 가장 고전적이라고 극찬한 것을 아는 이는 더욱 없다.
“때때로 과장되거나 왜곡된 것이 많은 중국의 예술형식, 감정에 차 있거나 형식이 꽉 짜인 일본의 미술과는 달리, 조선이 동아시아에서 가장 아름다운, 더 적극적으로 말한다면 가장 고전적이라고 할 좋은 작품을 만들어냈다고 단언해도 좋을 것이다.”
한·중·일의 미학
필자도 지인의 소개로 뒤늦게 이 책을 접하고 그의 찬사를 읽으며 얼마나 놀랐는지 모른다. 특히 앞에 소개한 문장이 세 나라의 미의 특징을 정말 정확하게 포착했다고 생각해 계속 기억에 남았다. 그런데 얼마 전 교토에서 일본의 대표적 정원들을 보고 온 뒤 “그래 맞아, 그렇구나” 싶어 무릎을 치며 이 평가를 다시 떠올리게 됐다.
일본의 정원은 왕실과 귀족들이 만든 넓은 공간에 인위적으로 조성한 연못을 중심으로 주변을 거닐며 자연을 완상하도록 설계한 지천회유식(池泉回遊式) 정원과 13~14세기 선종 사찰에서 제한된 공간과 자원으로 대자연을 표현할 방법을 모색한 결과물로 생겨난 고산수(枯山水·가레산스이), 즉 ‘마른 산수 정원’ 또는 ‘물 없는 정원’으로 대별된다. 후자의 정원은 물을 전혀 사용하지 않고 돌·모래·자갈·이끼 등으로 산과 강, 바다 등 자연 풍경을 상징적으로 표현하는 것이 특징이다.
세계문화유산으로 지정된 료안지(龍安寺)의 고산수 정원은 가로 25m, 세로 10m에 불과한 직사각형 정원으로 돌 15개와 흰 모래만으로 구성됐다. 액자에 담긴 그림을 감상하듯이, 관람자는 정원 안으로 들어가지 못하고 구분된 공간에서 감상하며 명상과 관조에 집중한다. 료안지의 정원이 유명하지만 사실 교토의 웬만한 사찰은 이끼 또는 모래를 이용한 작은 고산수 정원들을 관리한다.
교토에는 일본 궁내청에서 관리하는 왕실 정원이 두 곳이나 있다. 이 중 가쓰라리큐(桂離宮)는 17세기에 지어진 뒤 1933년 독일 건축가 브루노 타우트가 유럽에 소개하면서 세계적으로 유명해져 일본에서도 최고의 정원으로 꼽힌다. 대지 2만여 평에 조성된 정원은 바다를 상징하는 연못을 중심으로 길을 따라 걸으면 새로운 풍경을 만나도록 철저하게 계획됐다. 연못이 사라지거나 불쑥 드러나고 높이 올라 내려다보다가 어느새 물가에서 다실을 올려다보는 등 변화무쌍하게 전개된다.
일제강점기 조선에서 선교활동을 했던 안드레아스 에카르트 신부는 한·중·일 세 나라 중에서 조선의 미가 ‘가장 고전적’이라고 극찬했다. 일본 교토의 료안지. 연합뉴스 |
그보다 약 30년 늦게 지어진 슈가쿠인리큐(修學院離宮)는 가쓰라리큐와 함께 에도시대 왕실 정원의 쌍벽을 이룬다. 가쓰라리큐는 자연경관을 정원 안에 함축적으로 꾸민 형식이다. 이와 대조적으로 슈가쿠인리큐는 16만5천 평에 이르는 산기슭의 넓은 공간에 별궁 세 개를 최고 40m의 높낮이 차이를 주고 경사면에 배치했다. 산 정상과 산 아래 교토 시내 등 주변 경관을 빌려 정원의 뷰를 꾸민 형식이다.
자로 잰 듯이 잘 관리된 고산수뿐 아니라 동선에 따라 철저하게 계산된 왕실 정원들을 돌아보고 나니 일본의 미감을 ‘형식이 꽉 짜인’ 것이라고 한 에카르트의 평가에 공감이 갔다. 그리고 그의 평가를 되새겨보기 위해 자연스럽게 예전에 방문한 적이 있는 중국 상하이의 예원(豫園)과 전남 담양의 소쇄원을 떠올렸다.
예원은 상하이 도심에 있는 중국 명·청대의 대표적인 강남(江南)식 전통 정원으로, 1559년 명나라 고위 관료 반윤단이 개인적으로 조성했다. 정원은 40여 개의 정자, 누각, 당(堂), 탑, 각(閣), 회랑 등이 12~14m 높이의 대가산을 비롯해 인위적으로 조성된 자연경관과 어우러져 배치됐다. 취향 차이가 있겠지만 그 정원은 내게 너무 과하다는 인상만이 강하게 남아 있다.
이에 비해 우리나라 ‘선비 정원’의 정수라 할 담양의 소쇄원은 계곡과 언덕 등 원래의 자연 지형을 최대한 보존하며, 그 흐름에 따라 건물을 배치했다. 예를 들어 시냇물을 중심축 삼아 주변의 굴곡진 경사면을 계단식(노단식)으로 처리해 자연스러운 지형미를 살렸다. 제월당이나 광풍각 등의 건물은 계곡 가까이에 세워져 정자에서 흐르는 물과 자연경관을 감상할 수 있게 했고, 연못과 물레방아는 자연의 물길을 따라 설치해 자연과 어우러지도록 했다. 자연의 빼어난 경관을 최대한 이용하려 할 뿐 여기에는 과함도 형식도 없다.
서구에서 ‘고전적이다’, 즉 ‘클래식하다’고 평하는 것은 시간이 지나도 변하지 않는 가치와 매력을 지닌 품격 있는 전범이라는 뜻을 지닌다. 이는 동아시아에서 유행에 휘둘리지 않는 미의 전범을 조선이 제시한다는 의미이다. 에카르트는 주로 건축을 중심으로 이를 설명하는데, 교토에서 일본 최고의 정원들을 보고 나니 그가 건축과 더불어 정원을 본 것이구나 싶었다.
‘일본 관점’ 미술사 벗어나려면
에카르트는 가톨릭 베네딕토 수도회 신부로, 1909년부터 약 20년간 조선에 체류하며 조선의 미술·건축·유물 등을 직접 답사하고 연구했다. 경성제국대학에서 언어와 미술사를 강의하기도 했다. 그는 조선미술의 아름다움에 매료돼, 1928년 독일로 돌아간 뒤 한국 체류 동안의 답사를 통한 실견과 연구를 바탕으로 ‘조선미술사’를 출간했다. 이후 뮌헨대학에서 한국학 교수를 지내며, 제2차 세계대전 이후부터 말년까지 한국학 관련 논문과 서평을 130여 편 발표했다.
식민 시기 정복국 일본의 학자가 우리 고적을 답사하고 연구해 기술한 미술사가 공식적인 미술사가 되는 것은 불가피했다. 한번 쓰인 정사를 바꾸는 일은 쉽지 않아서 에카르트와 같이 그 시절 조선을 객관적으로 바라본 서양인의 관점은 한 세기가 지난 지금도 거의 연구되지 못했다. 그러나 과한 겸양은 식민의 습성이기도 해서 우리의 우수한 점을 설득력 있게 상찬한 글은 더욱 연구해 널리 알릴 필요가 있다.
이승현 미술사학자 shl219@hanmail.net
▶▶[한겨레 후원하기] 시민과 함께 민주주의를!
▶▶민주주의, 필사적으로 지키는 방법 [책 보러가기]
▶▶한겨레 뉴스레터 모아보기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