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진홍 기자] 세계 조선업의 패권 지형이 요동치고 있다. 단순한 기업 간의 수주 경쟁을 넘어 미중 패권 경쟁이라는 거대한 지정학적 단층선 위에서 국가의 명운을 건 '조선 삼국지'가 본격화되고 있기 때문이다.
중국이 국가자본주의의 힘을 총동원한 '공룡 조선사'를 통해 해양 패권 장악을 노골화하자 기술력으로 버텨온 한국은 물론 왕좌의 귀환을 꿈꾸는 일본이 미국과의 기술 및 안보 동맹을 고리로 생존과 반격의 활로를 모색하고 있다. 글로벌 공급망 재편과 맞물려 조선업의 패러다임 자체가 바뀌고 있음을 알리는 거대한 서막이다. 미중 패권전쟁이 동북아 조선 삼국지 시대를 여는 순간이다.
바다로 가는 오성홍기 "단순한 1위가 아니다"
중국이 국가자본주의의 힘을 총동원한 '공룡 조선사'를 통해 해양 패권 장악을 노골화하자 기술력으로 버텨온 한국은 물론 왕좌의 귀환을 꿈꾸는 일본이 미국과의 기술 및 안보 동맹을 고리로 생존과 반격의 활로를 모색하고 있다. 글로벌 공급망 재편과 맞물려 조선업의 패러다임 자체가 바뀌고 있음을 알리는 거대한 서막이다. 미중 패권전쟁이 동북아 조선 삼국지 시대를 여는 순간이다.
중국 북부 톈진에 위치한 CSSC 조선소에서 컨테이너선을 건조하고 있다. 사진=신화연합뉴스 |
바다로 가는 오성홍기 "단순한 1위가 아니다"
세계 최대 규모의 조선사가 중국에서 탄생할 전망이다. 중국 국영 중국선박그룹(CSSC) 산하 핵심 자회사 두 곳의 합병안이 승인되면서, 자산, 매출, 수주량 모든 면에서 세계 1위 조선 상장사의 출현이 가시화됐다.
5일 중국 증권일보 등 현지 매체에 따르면, CSSC의 자회사인 중국선박공업주식유한회사(이하 중국선박)가 중국선박중공주식유한회사(이하 중국중공)를 흡수합병하는 안건이 상하이증권거래소의 심사를 통과했다.
합병은 중국 정부 주도의 조선업 구조조정의 일환이며 중국선박이 신주를 발행해 중국중공의 주식과 교환하는 방식으로 이루어진다. 향후 증권감독관리위원회의 최종 승인 등 남은 절차가 마무리되면 중국 A주 시장 역사상 최대 규모의 흡수합병 사례로 기록될 예정이다.
5일 중국 증권일보 등 현지 매체에 따르면, CSSC의 자회사인 중국선박공업주식유한회사(이하 중국선박)가 중국선박중공주식유한회사(이하 중국중공)를 흡수합병하는 안건이 상하이증권거래소의 심사를 통과했다.
합병은 중국 정부 주도의 조선업 구조조정의 일환이며 중국선박이 신주를 발행해 중국중공의 주식과 교환하는 방식으로 이루어진다. 향후 증권감독관리위원회의 최종 승인 등 남은 절차가 마무리되면 중국 A주 시장 역사상 최대 규모의 흡수합병 사례로 기록될 예정이다.
합병의 주체인 두 회사는 이미 세계 조선 시장에서 막대한 영향력을 행사하고 있다. 군함과 민간 선박 건조 사업을 영위하는 중국선박은 산하에 장난조선 등 4개 조선소를 두고 있으며, 해양 방산 장비에 강점을 가진 중국중공은 다롄조선 등 대형 조선소를 보유하고 있다. 지난해 두 회사의 신규 수주량을 합하면 전 세계 발주량의 약 17%에 달한다. 4일 종가 기준 두 회사의 시가총액을 합산하면 약 48조원을 훌쩍 넘는다.
시장에서는 이를 '붉은 조선 굴기'의 완성으로 이해하고 있다. 두 거대 기업의 합병이 단순히 몸집만 불려 시장 점유율 1위를 공고히 하는 차원을 넘어서기 때문이다. 중국 공산당이 주도하는 '해양 강국' 전략과 '메이드 인 차이나 2025'의 핵심 퍼즐 조각으로, 글로벌 해양 질서의 '규칙 지배자(Rule Maker)'가 되겠다는 야심이 보인다는 분석에 무게가 실린다.
특히 이번 통합의 핵심이 '군민융합(軍民融合)' 고도화에 있다는 점이 눈길을 끈다. 민간 상선과 군함 건조 역량을 한데 묶어 한쪽에서 축적한 기술과 생산 노하우를 다른 쪽에 즉시 이전하는 시스템을 완성했기 때문이다. 예를 들어 초대형 컨테이너선이나 LNG 운반선 건조에 필요한 블록 공법과 용접 기술은 항공모함 건조의 효율성을 높이고, 군함에 요구되는 특수강 기술과 스텔스 설계는 특수목적선 개발에 응용되는 방식이다.
보기에 따라 한국이 주도해 온 고부가가치 선박 시장의 기술 장벽을 국가적 역량으로 단기간에 무너뜨리겠다는 의도까지 엿보인다. 물론 중국의 해군력은 미국 등에 비해 아직 범접할 수 있는 수준이 아니지만, 민관 합작을 바탕으로 솟구치는 오성홍기의 기세는 그 자체로 매섭다는 평가가 지배적이다.
더욱 위협적인 것은 중국이 조선업을 해상 실크로드, 즉 '일대일로' 전략의 첨병으로 활용한다는 점이다. 자국 해운사가 자국 조선소에 선박을 발주하고 중국계 자본이 항만과 물류를 장악하는 '붉은 해양 생태계'를 구축하는 중이다.
마바리 조선의 사이조 조선소. 사진=이마바리 조선 홈페이지 갈무리 |
'잃어버린 30년' 설욕 나선 '올 재팬'… 美 안보동맹 올라타다
아태 지역 바닷길이 심상치 않다. 이런 가운데 드디어 일본도 움직이고 있다.
현재 1990년대 세계 시장의 40%를 호령했던 일본 조선업의 부활 의지는 처절하다. 최근 1위 이마바리조선과 2위 재팬마린유나이티드(JMU)의 통합을 통해 '잃어버린 30년'의 설욕을 위한 '올 재팬(All Japan)' 전략을 최전선에 내세운 것이 눈길을 끈다. 일본 정부가 '경제 안보'를 명분으로 국립 조선소 설립과 1조 엔 규모의 재정 지원을 약속한 것은 조선업을 더 이상 사양산업이 아닌 국가 생존과 직결된 전략 산업으로 재정의했음을 보여준다.
무모한 재도전은 아니다. 일본의 전략적 승부수는 '미국 카드'의 활용이기 때문이다.
최근 급증하는 중국의 해군력에 맞서 노후화된 함대를 현대화해야 하는 미국은 자국 내 생산 역량 부족이라는 딜레마에 빠져있다. 그리고 일본은 바로 이 지점을 파고들고 있다. 자국이 강점을 가진 군함 건조 및 정비 기술력을 제공해 미국 조선업 재건을 돕는 대가로 안정적이고 수익성 높은 미 해군 MRO(유지·보수·정비) 시장에 진입하려는 것이다.
단순히 일감을 따내는 것을 넘어 미일 안보 동맹을 경제·산업 분야로 확장시켜 중국의 팽창에 공동 대응하는 고도의 지정학적 포석이다. 상선 분야의 강자 이마바리조선과 군함·특수선에 특화된 JMU의 결합은 이러한 전략을 뒷받침하는 최적의 조합이라는 분석이다.
필리 조선소=한화오션 |
韓, '초격차' 너머 '동맹 기반' 신시장 개척으로 정면 돌파
거대한 파도 앞에서 한국 조선업도 전열을 추스히고 있다. 중국의 가격 공세와 일본의 정치·외교적 부활 전략 사이에서 자칫 길을 잃을 수 있다는 우려가 나오기 때문이다.
물론 중국은 고부가가치 선박 우위를 유지하고 있고 일본 조선업은 한국 조선업의 상대가 아니다. 그러나 이대로 사태를 방기하면 훗날 더 거대한 변수에 휘말릴 수 있다는 공포가 지속적으로 커지는 것도 사실이다.
한국은 '초격차 기술력'이라는 기존의 무기를 더욱 날카롭게 벼리는 동시에, 일본과 비슷하게 '한미 동맹'을 기반으로 삼는 새로운 영토를 개척하는 전략으로 정면 돌파에 나설 전망이다.
'초격차'의 개념은 이제 단순한 LNG 운반선 건조 기술을 넘어 탈탄소 시대의 해양 패러다임을 주도하는 방향으로 진화하고 있다. 암모니아·수소 등 차세대 친환경 연료 추진선, 선박용 탄소 포집·저장(CCS) 기술, 인공지능(AI)과 디지털 트윈을 활용한 자율운항 선박 등 미래 기술 표준을 선점하는 것이 핵심이다.
역시 일본처럼 미국 MRO 시장을 미래의 핵심 먹거리로 주목하고 있다. 한화오션의 미국 필라델피아 조선소 인수 추진이 상징적인 사건인 이유다. 엄격한 '존스법(Jones Act)'으로 보호받는 미국 내수 시장에 진입하고, 나아가 미 해군 함정 MRO 사업의 교두보를 확보하려는 전략적 포석이다.
한국의 세계 최고 수준의 건조 효율성과 관리 능력이 미국 안보 수요와 결합될 경우 일본과의 MRO 수주 경쟁에서 우위를 점할 수 있다는 계산도 가능하다. 이는 한미 동맹이 군사·안보를 넘어 첨단 산업과 공급망 분야로까지 심화되는 중요한 전환점이 될 수 있다는 평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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