분단의 장벽 너머에서 일어나는 일들을 반세기 동안 북한을 지켜봐온 주성하 기자의 시선으로 풀어봅니다.
5월 21일 청진조선소에서 5000톤급 구축함이 진수 도중 쓰러지고, 김정은이 격노한 뒤 두 사람의 얼굴이 공식 매체에서 사라졌습니다.
한 명은 김명식 해군사령관이고, 다른 한 명은 홍길호 청진조선소 지배인입니다. 물론 이들 외에도 숙청된 인물들이 훨씬 많겠지만, 외부 세계에서 숙청 사실을 즉각 확인할 수 있는 사람은 두 명 정도입니다. 두 사람은 북한 조선중앙TV에 등장할 정도의 지위에 있어 쉽게 알 수 있었습니다. 홍길호는 6월 14일 방영된 강건호 진수 기념식 영상에서 김정은의 현지시찰에 동행한 과거 사진이 편집됐습니다. 김명식도 마찬가지였습니다.
그런데 김명식의 얼굴은 15일 뒤 부활했습니다. 물론 몸은 어디에 갔는지 알 수 없으나, 화면에선 다시 나타났습니다. 조선중앙TV가 지난달 29일 방영한 기록영화 ‘위민헌신의 여정, 새로운 변혁의 2024년’에 김정은을 따라다니는 김명식의 얼굴이 여러 차례 등장했습니다.
![]() |
2021년 2월 노동당 전원회의 도중 격노한 김정은이 간부들을 향해 삿대질을 하고 있다. 동아일보 DB |
5월 21일 청진조선소에서 5000톤급 구축함이 진수 도중 쓰러지고, 김정은이 격노한 뒤 두 사람의 얼굴이 공식 매체에서 사라졌습니다.
한 명은 김명식 해군사령관이고, 다른 한 명은 홍길호 청진조선소 지배인입니다. 물론 이들 외에도 숙청된 인물들이 훨씬 많겠지만, 외부 세계에서 숙청 사실을 즉각 확인할 수 있는 사람은 두 명 정도입니다. 두 사람은 북한 조선중앙TV에 등장할 정도의 지위에 있어 쉽게 알 수 있었습니다. 홍길호는 6월 14일 방영된 강건호 진수 기념식 영상에서 김정은의 현지시찰에 동행한 과거 사진이 편집됐습니다. 김명식도 마찬가지였습니다.
그런데 김명식의 얼굴은 15일 뒤 부활했습니다. 물론 몸은 어디에 갔는지 알 수 없으나, 화면에선 다시 나타났습니다. 조선중앙TV가 지난달 29일 방영한 기록영화 ‘위민헌신의 여정, 새로운 변혁의 2024년’에 김정은을 따라다니는 김명식의 얼굴이 여러 차례 등장했습니다.
![]() |
김정은의 올해 3월 현지시찰 사진에 있었던 김명식 해군사령관과 홍길호 청진조선소 지배인(빨간 동그라미)은 6월 공개된 기록영화에서 사라졌다. NK뉴스 |
이것이 북한을 연구하는 사람들에겐 또 화젯거리가 됐습니다. 김명식이 기록까지 말살될 정도의 처벌을 받은 줄 알았는데, 그 정도까진 아니었던 것입니다. 그래서 ‘김정은의 격노 누그러졌냐’는 분석의 기사들도 나왔습니다. 죽었는지, 살았는지 모르겠지만, 일단 얼굴이라도 다시 살아난 것만으로도 김정은이 크게 선심을 쓴 것처럼 해석이 되는 것입니다.
21세기를 살아가는 우리에겐 이해가 되지 않는 일입니다. 북한에서 기록이 사라진다는 것은 무슨 의미이고, 기록이 사라지면 북한에서 어떤 일이 벌어질까요. 우리는 특정인의 기록이 사라진 것을 북한이 방영하는 영상을 통해 확인하는 수밖에 없습니다. 하지만 북한 내부에선 주민은 다 알 수밖에 없는 엄청난 북새통이 한바탕 벌어집니다.
● 기록말살형의 역사
기록을 말살하는 ‘형벌’은 21세기에 북한에만 존재합니다. 온 가족을 숙청하는 연좌제와 더불어 지구상에 유물처럼 존재하는 악명 높은 처벌입니다.
기록말살형은 역사가 참 오래된 형벌입니다. 기록말살형을 받은 최초의 기록된 인물은 성경에 나오는 모세라고 합니다. 약 3500년 전 이집트 왕자였던 모세는 종살이하는 이스라엘 백성들을 불쌍히 여겨 그들을 인도해 가나안으로 탈출했습니다. 그러자 모세의 아버지일 것으로 추정되는 파라오가 그의 모든 이름을 삭제하는 형을 내렸다고 합니다. 파라오가 누군지는 의견이 갈리지만, 람세스 3세라는 견해가 우세합니다. 3000년 전 고대 이집트인들은 이름이 없어지면 존재도 사라진다고 믿었다고 합니다.
영화 ‘300’에선 기원전 480년경 스파르타를 침공한 페르시아의 황제 크세르크세스 1세가 이렇게 말하는 장면이 나옵니다.
“네놈들의 희생에는 영광 따위는 없을 것이다. 내가 스파르타를 역사에서 한 치도 남김없이 지워버릴 것이니! 그리스의 모든 문서를 불태워 버리고, 그리스의 모든 역사가의 눈알을 뽑아버리고 입에서 혀를 잘라버릴 것이다. 누구든지, 스파르타나 레오니다스의 이름을 아주 조금이라도 언급하기만 해도 사형으로 다스릴 것이다. 세상은 너희가 존재했다는 것을 전혀 알지 못하게 될 것이다.”
물론 작가가 만든 대사겠지만, 시대를 고려했을 때 충분히 가능성이 있는 이야기입니다. 천 년의 로마제국(기원전 753년~기원후 476년) 시대에도 최고의 형벌은 기록말살형이었다고 합니다. 이 형벌에 처하면 로마인에게는 족보라고 할 수 있는 조각상이 모두 강제 회수돼 파괴됩니다. 공문서나 각종 기록에 남겨진 이름은 지우고, 건물에 새겨진 초상이나 기록은 파괴하거나 긁어내 없애버립니다. 파괴된 조각상이나 비문은 가축이 밟고 다니는 도로에 깔아 모욕당하게 만들고 살던 집도 철거합니다. 사라진 이름을 공개적으로 언급해도 안 됩니다. 그러나 로마에서도 대역죄가 아닌 이상, 가족까지 처벌하는 연좌제는 없었습니다.
우리 역사에서도 비슷한 형벌이 존재합니다. 조선시대에 ‘삭명(削名)’이란 형벌이 있었습니다. 먹으로 이름을 지우는 묵삭(墨削), 북을 치고 성토하면서 유적에서 영구히 이름을 지우는 명고영삭(鳴鼓永削), 누런 종이를 붙여서 영구히 이름을 지우는 부황영삭(付黃永削)의 세 종류가 있었습니다. 그렇다고 사람을 죽이는 것은 아니고, 과거에 응시할 수 없는 등의 불이익을 당하였을 뿐입니다. 그나마 이 형벌은 영조 시대 편찬된 통일 법전인 속대전(1746년)을 통해 금지됐습니다.
점차 사라져가던 기록말살형을 현대 사회에서 부활시킨 이는 공산주의자들이었습니다. 1930년대 소련의 스탈린 치하에서 많은 사람들이 기록말살을 당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