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즘처럼 공기가 습하고 뜨거워질 때면 3년 전 여름이 떠오른다.
아버지가 돌아가신 때가 딱 이맘때였다. '곧 임종하실 것 같다'는 말을 듣고 서울에서 부산역까지 헐레벌떡 달려가기를 몇 번 했다. 부산역을 걸어 나올 때 느껴지던 습하고 무더운 공기는 콧속을 지나 머릿속을 습기로 가득 채우는 듯했다.
아버지는 5년간 항암 치료를 받았다. 처음 진단을 받았을 때 여명은 6개월이라 했지만 아버지는 초인적인 힘으로 가족들이 작별 인사할 수 있는 시간을 10배로 늘리셨다. 그가 받은 항암 치료만 223회. 마지막에 아버지를 본 의사는 '항암 치료를 이렇게 오래 받은 사람은 처음 본다'고 말했다.
아버지의 마지막을 더 힘들게 한 것은 '거리'였다. 부산에 살았던 아버지는 항암 치료를 받을 때마다 427㎞ 거리를 왕복했다. KTX로 왕복 5시간이 걸리는 거리를 223번 오갔으니 인생 마지막 장의 1115시간을 거리에서 보낸 셈이다. 그중 몇 번은 직접 운전을 했으니 족히 1500시간은 길 위에서 썼을 것이다.
누군가는 '뭘 그렇게까지 하나. 지방 병원도 훌륭한데'라고 할지 모른다.
하지만 가족의 마지막을 두고 적절히 타협할 수 있는 사람이 몇이나 될까. 의료진조차 '지방에서 쓸 항암제가 2~3개면 서울에서는 5개를 써요'라고 했던 걸로 기억한다.
어쩌면 항암 치료는 '상경'의 비교적 타당한 이유일지 모르겠다. 한국의 지나친 수도권 집중화와 지방 소외는 항암 치료뿐만 아니라 취업, 통학 같은 가장 기본적인 행위까지도 어렵게 만든다.
평창 읍내의 한 시골 초등학교는 정원이 통폐합된 인근 학생들의 통학을 돕기 위해 셔틀버스를 운행하는데, 한 노선에서 처음 버스에 올라탄 학생이 학교에 가기까지 버스에서 보내야 하는 시간은 1시간이 넘는다.
취업은 또 어떤가. 지방에 거주하는 취준생 30%가 '서울에서 일하고 싶다'고 답했다는 한 설문조사 결과는 수도권 집중화의 심각성을 깨닫게 한다.
이런 현상은 더욱 심해질 것이다. 인프라스트럭처, 자본, 사람이 집중되는 것은 이미 그것들이 몰려 있기 때문이다. 그 밖에 있는 사람은 돈보다 소중한 자신의 시간을 팔아 연결되기 위해 노력해야 한다. 인구 감소는 이 같은 현상을 더 가속화할 것이다.
해결책은 불행히도 아무도 갖고 있지 않은 것 같다. 다만 방향성만큼은 집중화를 단편적으로 해결하는 방법보다 지금 사람들이 겪고 있는 고통을 해결하는 쪽으로 모아졌으면 좋겠다.
수도권 사람들이 지방에서 더 많은 시간을 보내고 지방에서 새 생명도 많이 태어나면 좋겠지만, 그보다는 먼저 거주하는 사람들이 겪고 있는 불편함을 해결하는 정책이 많았으면 한다. 좋은 걸 하는 것보다 고통을 제거하는 것이 인생에서도 정책에서도 중요하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오늘도 치료, 취업, 업무, 그 밖의 여러 이유로 서울로 향하고 있을 사람들을 생각한다. 그들에게 우리 아버지의 초인적인 힘이 따르기를.
[강인선 경제부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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