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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은수의 책과 미래] 아이에게 건넨 사랑의 한마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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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들이 태어났을 때가 생각난다. 흰 천에 싸여, 강낭콩처럼 붉은 얼굴로, 새근새근 숨 쉬는 모습을 보며, 함께 하고픈 일들을 하나씩 꼽았다. 야구장 가서 '치맥' 즐기기, 목욕탕에서 등 밀어주기, 낯선 곳을 여행하며 인생 이야기하기 등. 그간 하나씩 이뤘는데, 둘이 따로 긴 여행은 못 가봤다. 언젠가, 언젠가…… 하다 그냥 시간이 흘렀다.

리처드 포드의 '독립기념일'(문학동네 펴냄)을 읽으면서 더 늦기 전에 같이 여행해야겠다고 생각했다. "어느 날 누군가 내게 사랑한다고 말했다. 그 순간부터 어떤 일도 실제보다 나쁘게 생각되지 않았다." 소설은 아들과 둘이 여행 중인 한 남자의 이야기를 담았다. 프랭크 배스컴은 이혼 후 방황하다 간신히 평온을 찾았다.

그는 현재 자기 삶을 '존재의 시기'로 규정한다. 이는 "인생이 어떻게 흘러가든 별로 신경 쓰지 않는" 자세, "싫어하는 것, 꺼림칙하고 복잡해 보이는 것을 무시하고 흘려보내는" 태도다. 이는 고립적 개인주의의 상징이다. 배스컴은 더는 상처받지 않으려 타인과 깊은 관계를 맺지 않으면서 하루하루를 이어간다. 나로서 살기 위해 누구에게도 정 주지 않는 삶, 마음의 평화를 깨지 않으려 고립을 택한 것이다.

그러나 아들 폴은 부모의 이혼, 형의 죽음에 충격을 받고 정서 불안에 시달린다. 그는 반항심을 못 이기고 슈퍼에서 물건을 훔치다 경비원과 다퉈서 재판을 앞두고 있다. 아들을 데리고 '야구 명예의 전당'을 찾아가면서 배스컴은 그에게 올바른 삶의 길을 알려주고 싶다.

오랜만에 만난 두 사람이 말이 통할까? 당연히 아니다. 폴은 냉소하고 기행을 벌여 배스컴을 궁지로 몬다. 게다가 아들에게 과거에 매이지 말고 꿋꿋이 살라고 말하나, 자신 역시 과거를 끌어안고 새로운 관계를 두려워하지 않는가. 그러나 대화에는 힘이 있다. 아들과 이야기하면서 배스컴은 진짜 자유가 사랑과 연대를 바탕으로 해서만 이룰 수 있음을 깨닫는다. 따로 놀던 미국 각 지역이 연대해 영국을 무찌르고 독립했듯 말이다.

살면서 고통을 피할 수 있는 사람은 없다. 그렇지만 상처를 피한다고, 자기 세계에 갇혀 홀로 평정을 누린다고 좋은 삶이 되진 않는다. 좋은 삶은 "다른 사람이 나를 밀치고 당기고 치고 흔드는 것"을 느끼며 함께 춤추는 법을 배우는 데 달려 있다. 상처 없는 삶보다 상처를 견디면서 기어이 사랑을 이룩하는 삶이 위대하다. 먼 훗날 아이가 세상의 가시에 찔려 힘들어할 때, 당신이 건넨 사랑의 한마디가 그를 구원할 것이다. 그러니 주말엔 각자 아이와 함께 걸으며 삶을 이야기하면 어떨까.

[장은수 편집문화실험실 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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