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래전에 시리아 성지순례를 간 적이 있었다. 고대 유적들이 인근의 나라들보다 잘 보존돼 있는 곳도 많았다. 어느 곳을 가도 아시아 사람들을 신기해하며 아이들이 계속 따라다녔다. 시리아에서 만난 어른들이나 아이들은 마치 어릴 적 시골에 가면 만났던 분들처럼 무척 순수하고 따뜻한 느낌이었다. 문득 예전에 만난 시리아 아이들이 떠올라 눈시울이 뜨거워진 적도 있다.
2011년 과격 이슬람 무장 단체인 '이슬람국가(IS)'가 등장하면서 민간인 살해, 유적 파괴, 테러 등 온갖 악행을 저질렀다. 잔혹한 참수 장면이 사회관계망서비스(SNS)에 올라오기도 했다. 어느 날 나는 이들이 팔미라의 유적이 우상숭배 대상이라는 이유로 대포를 쏴 산산조각 내는 장면을 TV에서 본 후 매우 놀랍고 안타까운 마음이 들었다. '사막의 진주'로 불리는 팔미라는 한때 시리아 최대의 관광 명소였다. 몇몇 신전이 파괴된 것을 제외하면 2016년 시리아군이 팔미라를 탈환한 후 상태가 대체로 양호한 것으로 알려져 불행 중 다행이라 생각했다.
'Si vis pacem, para bellum(평화를 원한다면, 전쟁을 준비하라).' 이는 자신을 지키려면 스스로 힘이 있어야 한다는 라틴어 격언이다. 1991년 소련 붕괴 후 우크라이나 국민들은 무기체계를 해체하며 서방 국가로부터 안보를 약속받았다. 그러나 2015년 러시아의 크림반도 점령에 이어 2022년 러시아의 전면 공격까지 힘겨운 전쟁을 치르는 우크라이나는 안보 계약서를 휴지조각처럼 느꼈을 것이다.
세계사는 전쟁사라고 부를 만큼 크고 작은 전쟁이 여전히 진행 중이다. 며칠 전 중동의 한 항공사에서 근무하는 지인이 "밤중에 미사일이 머리 위로 날아가는 것을 보고 공포감에 질려 잠을 못 잤어요. 왜 사람들은 전쟁을 하는 것일까요?"라고 물었다. 너무 당연한 질문인데 깊은 생각에 빠지게 했다.
평화란 그저 사전에만 있는 단어일까? 인간 안에는 폭력적인 본성이 분명하게 있는데 극단적인 분출이 전쟁이라면 전쟁은 인간의 운명인가? 전쟁은 인간의 기본적인 본성과 윤리마저 철저하게 파괴시켜버린다. 인간이 동물과 다름없어진다. 전쟁은 죽이지 않으면 죽게 된다. 가장 높은 폭력 수위인 살인이 정당화되는 장소, 그렇기에 전쟁을 체험한 사람들은 그냥 '지옥'이라고 표현한다. 우리는 정말 전쟁을 하지 않을 수 없나? 전쟁의 참혹함은 그저 먼 곳 남의 나라 이야기인가? 우리나라도 75년 전에 아비규환의 전쟁터였다. 사실 우리는 전쟁을 잠시 쉬고 있는 '휴전' 상태다.
철학자 칸트는 인간이 이성의 능력으로 국제 질서를 잘 조직하면 평화가 가능하다고 했는데 이는 늘 우리가 생각해야 하는 메시지다. 그러나 지금의 국제 정세는 각국의 이익, 정치, 경제, 종교 등 너무나 많은 요소가 복잡하게 얽혀 있어 평화로운 국제 질서의 확립이 몇 나라나 몇 사람으로 이뤄지기 어렵다.
현대의 전쟁은 디지털을 더 많이 이용하고 있다. 그러나 발전하는 디지털 기술은 전쟁을 억지하거나 방지하는 데도 도움이 될 수 있을 것이다. 문제는 사용하는 사람의 철학과 가치다. 그래서 어린 시절부터 인문학, 인류애 그리고 공동선의 교육이 필요하다. 디지털은 세상을 더 가까이 빠르게 연결해 이해와 협조를 도와준다. 디지털은 타인에 대한 공감과 포용을 촉진하고 사람들과의 소통에 촉매제 역할을 한다. SNS는 전쟁의 참혹한 장면을 실시간으로 접할 수 있게 한다. 백문불여일견(百聞不如一見)이다. 전쟁의 비참함과 비인간성을 보면서 자연스레 전쟁에 대한 반감을 갖게 한다. 디지털 문화는 전쟁과 관련해서도 큰 변화를 가져올 것이기에, 제발 평화의 도구로 사용되길 바란다.
[허영엽 신부(서울대교구)]
[ⓒ 매일경제 & mk.co.kr, 무단 전재, 재배포 및 AI학습 이용 금지]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