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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성인의 읽는 클래식 듣는 문학] 그리그 ‘서정 소곡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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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성인 음악평론가·풍월당 이사

나성인 음악평론가·풍월당 이사

그리그(사진)의 ‘서정 소곡집’에는 같은 곡조로 된 서로 다른 곡이 실려 있다. 기쁨과 슬픔 사이, 과거와 오늘 사이를 오가는 사람 마음의 미묘한 풍경이 거기 비친다. 오래전에 쓴 글을 다시 읽을 때의 손발이 오그라드는 느낌이랄까. 그때는 너무나 진실했지만 시간이 많이 흐른 지금은 감정과 느낌이 다 달라져 있다. 옛날의 내 모습을 바라보는 지금의 나는 당혹스러움과 반가움, 낯섦과 빛바랜 익숙함을 동시에 느낀다.

그리그는 평생에 걸쳐 ‘서정 소곡집’을 10권이나 발표했다. 1867년, 불과 스물네 살 때 발표한 첫 곡 ‘아리에타’가 그 시작이다. 깨질 듯 여린 애상이 작은 노래 형식에 담겨 있다. 젊은이만이 느낄 수 있는 이름 모를, 막연한, 그러나 마음을 이따금 휘젓는 예민한 멜랑꼴리가 흘러나온다.

하지만 그로부터 서른 해도 넘게 지난 1901년, 쉰여덟의 그리그는 마지막이 될 ‘서정 소곡집’ 10권의 마지막 곡 ‘회상’에서 저 옛날의 ‘아리에타’를 다시 불러온다. 조금은 멋쩍었으리라. 상념에 젖어 있던 그 젊은이의 어깨를 중년이 된 남자가 가볍게 툭툭 도닥여준다. 어딘지 모르게 홀가분한 미소를 지으며, ‘그땐 그랬지, 저렇게 심각할 건 없었는데’라고 말한다. 가벼운 왈츠풍의 움직임은 수십 년 전 자신의 애상을 잔잔한 기쁨으로 바꿔놓는다. 하지만 이 기쁨은 결코 가볍지 않다. 오랜 세월이 품위를 덧입혀 준 달관의 미소, 슬픔까지도 능히 끌어안은 자의 ‘귀에 들리는 미소’다.

그는 왜 ‘서정 소곡집’ 10권, 30여 년이 넘는 세월의 마지막을 ‘자기 인용’으로 마무리한 걸까? 어쩌면 진정한 서정이란 자기 자신을 되돌아보는 일이기 때문이 아닐까? 첫 곡 ‘아리에타’와 마지막 곡 ‘회상’이 서로를 바라본다. 자신의 과거를 진심으로 끌어안을 수 있는 사람은 참으로 복되다. 아무런 가사 없이도 두 곡은 세월을 두고 진정한 시로 거듭난다.

나성인 음악평론가·풍월당 이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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