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스트리아 빈 중앙역 인근의 공공주택 단지 ‘존벤트피어텔 C.01’. 세 곳의 건축사무소가 각각 주거동은 따로 설계하고, 공동 시설은 협업해 디자인했다. 이후 각 동을 노란색 다리로 연결해 하나의 유기적 단지로 완성했다. 장수경 기자 |
“아파트 주민들이 함께 사용하는 공동 부엌은 거의 매일 예약이 다 찰 정도예요.”
지난 1일(현지시각), 오스트리아 빈 중앙역 인근의 공공주택 단지 ‘존벤트피어텔 C.01’에 거주 중인 하태영씨는 단지 내 1층에 위치한 공동 주방에 대해 이렇게 설명했다. 이 주방에서 주민들은 친구를 초대해 함께 음식을 만들고, 실외 벤치에 둘러앉아 식사를 나눈다.
하씨가 10년째 살고 있는 존벤트피어텔은 오스트리아 국영 철도회사(ÖBB)가 제공한 택지 위에 민관 협력 방식으로 조성된, 연면적 30만5천㎡ 규모의 공공주택 단지다. 이곳에는 40㎡부터 100㎡까지 다양한 면적의 주택이 임대와 분양으로 구성돼 있으며, 신혼부부·청년·노인가구 등 다양한 계층이 함께 거주하고 있다.
하나의 필지 안에서 세 곳의 건축사무소가 각각 주거동은 따로 설계하고, 공동 시설은 협업해 디자인했다. 이후 각 동을 노란색 다리로 연결해 하나의 유기적 단지로 완성했다. 덕분에 회색 벌집 형태의 건물과 붉은색 건물이 서로 다른 외관을 가지면서도, 하나의 도시처럼 기능한다. 단지 내에는 유치원, 암벽장, 수영장, 목공실 등 다양한 공동 시설이 자리 잡고 있으며, 이들은 모두 ‘거실’의 개념으로 주민들에게 제공된다. 단순히 저렴한 임대주택이 아니라, 공공이 기획하고 설계한 도시 공동체인 셈이다.
오세훈 서울시장이 1일(현지시각) 존벤트피어텔 공공주택에서 살고 있는 하태영씨와 대화하고 있다. 서울시 제공 |
인구 약 200만 명의 빈은 전 세계에서 공공주택 비율이 가장 높은 도시 중 하나다. 전체 주택(110만 호)의 약 75%가 임대주택이며, 이 가운데 42만 호는 공공이 직접 공급하거나 공공 재정 지원 아래 지어진 집들이다.
공급 방식은 두 가지다. 빈시가 직접 소유하고 운영하는 공공임대 주택이 약 22만호, 시가 건축비의 30%를 장기 저리로 대출하고, 민간 사업자의 수익률을 3% 이내로 제한하는 진흥기금 임대주택이 20만호다. 이러한 구조 덕분에 빈에서는 공공임대주택에 대한 낙인이나 차별이 거의 없다.
빈은 공공주택을 설계할 때부터 사회적 갈등을 줄이기 위해 다양한 계층이 섞여 사는 ‘소셜 믹스’를 핵심 원칙으로 삼고 있다. 이병훈 건축가는 “누가 임차인이고, 어떤 평수에 사는지를 외부에서 구분할 수 없도록 하고 있다”고 설명했다. 빈시는 주택을 안정적으로 공급하기 위해 ‘주택채권’을 발행해 재원을 조달하고, 그 수익을 시민과 공유하는 제도도 운영 중이다.
오세훈 서울시장이 2일(현지 시각) 빈의 노인요양시설인 카리타스 성 막달레나를 방문해 시설을 둘러보고 있다. 서울시 제공 |
공존의 철학은 ‘돌봄의 방식’에서도 분명하게 드러난다. 빈 시내의 노인요양시설 ‘카리타스 성 막달레나’는 혐오시설이 아니라 ‘이웃집’이다.
2023년 문을 연 이곳은 요양, 재활, 호스피스 등 통합서비스를 제공한다. 특히 모든 공간이 1인실로 구성돼, 거주자의 독립성과 존엄을 최대한 보장한다. 단순히 요양 기능에 머무는 폐쇄형 시설이 아니라, 어린이집·의료센터·마트·공원 등과 함께 구성되어 있어 지역 주민들도 일상적으로 드나드는 열린 구조다.
이곳에선 60명의 중증 치매 노인이 생활하지만, 병실 안에는 가족의 쿠션이나 손주의 그림이 걸려 있고, 병원 냄새를 풍길 법한 장비는 최대한 배제되어 있다.
무엇보다 이곳이 특별한 이유는 바로 앞 유치원 아이들이 일주일에 한 번 이곳을 찾아 어르신과 함께 산책하거나 그림을 그리는 등 세대 간 교류 활동을 하기 때문이다. 시설 관계자는 “아이들은 마치 손자·손녀처럼 어르신과 시간을 보내며, 어릴 때부터 ‘함께 사는 것’에 대한 감각을 자연스럽게 배우게 된다”고 말했다. 이 같은 카리타스 운영 시설은 빈에만 8곳이 있다.
현장을 둘러본 오세훈 서울시장은 “1∼2인 가구, 청년·고령층과 신혼부부 등 다양한 계층이 함께 거주하는 공공 임대주택과 고품질 임대주택이 미래 공공주택 공급의 핵심”이라며 “소득 계층별, 연령대별로 잘 어우러져 살 수 있는 혼합형 주택도 계속해 시도할 것”이라고 밝혔다. 서울시는 2022년 고품질 임대주택 공급 방안을 발표한 이후, 임대주택 품질 개선, 소셜 믹스 확대, 노후 임대단지 재정비 등을 추진 중이다.
오 시장은 또 “노인이 가족이나 지역사회와 단절된 채 지내는 게 아니라, 익숙한 생활권 안에서 자연스럽게 돌봄을 받도록 하는 것이 중요하다”며 “서울시가 추진 중인 ‘9988 서울 프로젝트’와도 맞닿아 있다”고 강조했다.
서울시는 지난 5월 ‘9988 서울 프로젝트’를 통해 실버케어센터 85곳 확대, 자치구별 데이케어센터 2곳 설치, 노인 통합 케어 커뮤니티 조성 등을 주요 과제로 제시한 바 있다. 현재 35곳에 불과한 공공 실버케어센터는 2040년까지 85곳으로 늘릴 계획이다.
빈(오스트리아)/장수경 기자 flying710@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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