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트럼프와 약속 못 잡았는데… 정부, 中의 ‘전승절 초청장’ 고민

조선일보 노석조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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美·中 사이서 실용외교 시험대
중국이 이재명 대통령을 오는 9월 3일 베이징에서 열리는 중국의 ‘대일(對日) 전쟁 승리 기념일’(이하 전승절) 80주년 열병식에 초청했다고 대통령실이 2일 밝혔다. 대통령실은 “이 대통령의 전승절 참석 여부와 관련해 중국과 소통 중에 있다”며 “구체적 내용은 밝히기 어렵다”고 했다.

외교부에 따르면 1일 이재명 정부 출범 후 첫 고위급 당국자로 방한한 중국 외교부의 류진쑹(劉勁松) 아주국장도 강영신 외교부 동북아국장에게 초청 의사를 전했다. 러시아·벨라루스 등 사회주의 국가 정상이 주로 참석해 온 전승절에 자유민주 진영의 한국을 초청해 선전 효과를 높이려는 의도로 풀이된다.

정부는 도널드 트럼프 미 대통령과의 첫 정상회담이 성사되기도 전에 전승절을 계기로 한 방중 요청을 받으면서 대응에 고심 중인 것으로 알려졌다. 한·미·일 협력을 유지하며 중·러와의 관계도 개선하겠다는 이 대통령의 ‘실용 외교’는 시험대에 올랐다.

◇트럼프와 약속 못잡았는데… 정부 ‘시진핑의 초청장’ 고민

중국 측은 6월 3일 한국 대선 이전부터 한국 정상의 전승절 참석 필요성을 언급해 온 것으로 알려졌다. 정식 초청 공한 등은 전달하지 않으면서 학술 대회나 대사관 행사·실무협의 등에서도 이 문제를 제기했다. 외교 소식통은 “실용 외교를 표방한 이재명 대통령이 과연 전임 정부와 얼마나 다른 외교를 할지 떠보려는 의도가 있다”고 했다.

그래픽=양인성

그래픽=양인성


이 대통령 취임 7일째인 지난달 10일 이뤄진 이 대통령과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의 첫 통화에서는 시 주석이 직접 전승절 방중을 요청한 것으로 알려졌다. 중국은 미국 측에도 트럼프 미 대통령의 전승절 열병식 참석을 타진했다고 한다. 당초 우리 측은 트럼프 대통령의 열병식 참석 가능성이 희박하고, 미국의 대중 견제 정책 등을 고려하면 이 대통령의 참석도 어렵다고 판단했다.

그러나 1일 한중 외교부 국장급 회의에서 중국 측은 재차 이 문제를 제기했다. 중국은 이번 전승절이 80주년으로 정주년(5·10년 단위로 꺾어지는 해)이고, 시 주석의 3연임 중에 치러지는 만큼 최대한 많은 정상을 초청할 계획인 것으로 알려졌다. 마오닝 중국 외교부 대변인은 2일 ‘이 대통령의 전승절 기념행사 참석 가능 여부를 한국 정부에 문의했느냐’는 질문에 “올해는 중국 인민의 항일전쟁 및 세계 반파시스트 전쟁 승리 80주년으로 성대하게 기념행사를 치를 예정”이라며 “각국과 계속 소통하고 있다”고 했다.


정부는 이 대통령과 도널드 트럼프 미 대통령의 첫 정상회담 일정이 확정되지 않은 상태에서 중국이 전승절 참석을 압박하는 데 부담을 느끼는 것으로 알려졌다. 한미 정부는 당초 이달 말 워싱턴 DC에서 한미 정상회담을 개최하려 했지만, 최근에는 8월 이후로 밀릴 가능성도 있다는 말이 나오고 있다. 트럼프 대통령이 이달 말 스코틀랜드를 방문해 자기 소유 골프 리조트 등을 둘러볼 것이라는 영국 언론 보도도 나왔다.

10월 말~11월 초 경주에서 열릴 아시아태평양경제협력체(APEC) 정상회의도 변수가 되고 있다. 대통령실은 이날 “APEC 정상회의를 매개로 양국 관계를 발전시켜 나가자는 공감”을 토대로 중국과 소통 중이라고 했다. 앞서 우리 측은 10월 말~11월 초 경주에서 열리는 APEC 정상회의에 시진핑 중국 주석을 초청했다. APEC은 미국·일본·호주·중국·러시아 등 역내 주요 국가 정상이 모두 참석하는 회의로, 시 주석의 참석 가능성도 “매우 높다”고 소식통은 전했다. 만약 시 주석이 방한하면 박근혜 정부 시절인 2014년 이후 첫 한국 방문이다.

국가 정상의 상대국 방문은 번갈아 하는 것이 외교 관례다. 그런데 시 주석은 2014년 방한 이후 한국에 오지 않은 반면, 우리 측은 박근혜 전 대통령(2015년)과 문재인 전 대통령(2017년·2019년)이 연달아 중국을 방문했다. 특히 2015년 중국의 70주년 전승절 행사 당시 서방 지도자들이 보이콧했던 열병식에 박 전 대통령이 자유민주 진영 정상 가운데 유일하게 참석해 국내외적으로 큰 논란이 됐다.


윤석열 정부는 “시 주석이 방한할 차례”라며 방중 초청 수락을 미뤄 한중 정상 상호 방문이 중단됐다. 한국에서 열리는 APEC 정상회의를 계기로 시 주석의 방한을 성사시킬 수 있다는 판단도 있었다. 그러나 이재명 정부로 정권 교체가 이뤄지자, 중국이 APEC보다 두 달 앞선 전승절 행사에 이 대통령을 초청했다. 한미 정상회담 일정이 불투명한 가운데, 중국이 전승절과 APEC을 지렛대 삼아 이 대통령의 선(先)방중을 유도하는 모양새다.

정부 관계자는 “과거 사례와 한중 관계, 한미 관계 등을 종합 검토해 이 대통령의 참석 여부를 결정할 방침”이라고 말했다. 또 다른 관계자는 “시 주석의 APEC 방한은 중국이 APEC 회원국이기 때문에 하는 것”이라면서 “이 대통령의 전승절 참석과는 별개의 사안”이라고 선을 그었다. 그러나 박원곤 이화여대 교수는 “중국의 전승절 초청으로 이재명 정부의 실용 외교가 나토 정상회의에 이어 또다시 시험대에 올랐다”면서 “APEC과 전승절이 별개의 사안이긴 하지만 정부로서는 부담이 될 것”이라고 말했다.

[노석조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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