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5년 9월 3일 중국 베이징 톈안먼에서 열린 전승절 기념행사에 참석한 박근혜 당시 대통령(오른쪽 셋째)이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과 함께 망루에 서서 열병식을 관람하고 있다. 매경DB |
중국이 오는 9월 베이징에서 열리는 전승절 제80주년 기념행사에 이재명 대통령의 참석 의사를 타진하면서 이재명 정부의 실용외교가 첫 시험대에 올랐다. 1945년 중·일 전쟁 승리를 기념하는 전승절 행사 참석은 한미동맹과 한·미·일 협력이라는 이재명 정부 외교정책의 근간을 흔드는 외교적 제스처가 될 수 있어서다. 대통령실이 관련 일정 참석 여부를 두고 검토에 착수한 가운데 이 대통령이 직접 참석하는 대신 중량급 특사를 파견할 가능성에 무게가 실린다.
대통령실은 2일 "이 대통령의 전승절 80주년 기념식 참석 여부를 놓고 한중 간 소통 중"이라며 "다만 외교 채널에서 이뤄지는 구체적 내용을 알리기에는 어려움이 있다"고 밝혔다. 이어 "한중 양국은 아시아태평양경제협력체(APEC)를 매개로 양국 관계를 발전시켜 나가자는 공감대를 토대로 긴밀하게 소통하고 있다"고 덧붙였다.
앞서 류진쑹 중국 외교부 아주국장은 지난 1일 한국을 찾아 강영신 외교부 동북·중앙아시아국장과 만나 이 대통령의 전승절 행사 참석 가능성을 타진한 것으로 알려졌다.
전승절의 공식 명칭은 '항일전쟁 및 세계 반파시스트전쟁(제2차 세계대전) 승리 대회'다. 중국은 일본이 항복문서에 서명한 1945년 9월 2일 다음 날인 9월 3일을 매년 전승절로 기념해 왔는데, 올해 80주년을 맞아 세계 각국 정상들을 초대해 성대하게 행사를 치를 계획이다.
중국은 올해 행사를 앞두고 사회주의권 국가들은 물론이고 서방 자유진영 국가 정상들에게도 참석 의사를 타진하는 것으로 알려졌다. 일본 교도통신은 중국이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을 초청할 방침이라고 보도하기도 했다. 이제까지 전승절 행사에 미국 대통령이 참석한 적은 없다.
하지만 중국의 초청 대상국이 대부분 비(非)서방 진영에 속한 국가들이라 트럼프 대통령을 포함해 서방 국가들이 이번 초청에 응하긴 쉽지 않다. 실제 2015년 70주년 전승절 행사에 정상이 참석한 국가는 한국을 제외하고 모두 중국 우방국이었다.
대통령실이 일단 참석 여부와 관련해 검토 중이라고 밝혔지만, 내부적으로는 참석하기 쉽지 않다는 기류가 강한 것으로 알려졌다. 앞서 서방 지도자들이 보이콧한 전승절 70주년 열병식에 자유진영 정상 중 유일하게 박근혜 전 대통령이 참석했다가 엄청난 대가를 치렀던 기억이 선명한 탓이다. 당시 박 전 대통령은 톈안먼 성루에 올라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 오른편에 앉아 열병식을 지켜봤다. 외교당국 고위 관계자는 "당시 박 전 대통령의 전승절 참석은 미국을 크게 자극했다"며 "한국이 중국과 밀착하는 움직임에 놀란 버락 오바마 행정부가 사드(THAAD·고고도미사일방어체계) 배치를 밀어붙였다"고 말했다.
국내 사드 배치는 역으로 중국을 자극해 한국에 대한 경제 보복으로 이어졌다. 시 주석을 비롯한 중국 공산당 지도부가 한국이 중국을 배신했다고 인식한 탓이다.
주재우 경희대 교수는 "이 대통령이 전승절 열병식에 참석할 이유가 없다"며 "중국의 이번 조치는 중국 편에 서라는 일종의 길들이기이자 한·미·일 협력을 이간질하려는 시도로 봐도 무방하다"고 평가했다. 전직 고위 외교 당국자는 "트럼프 대통령의 (중국에 대한) 성향이나 방침을 고려했을 때 (이 대통령의) 전승절 행사 참석 검토는 매우 로 키(low key)로 이뤄져야 할 것 같다"며 "가급적 안 하는 게 좋겠다고 본다"고 말했다.
중화권 언론에서도 이 대통령의 전승절 행사 참석이 쉽지 않을 것이라는 전망이 나왔다. 홍콩 성도일보는 지난 1일 "2015년 전승절 70주년 행사에 정상이 참석한 국가 중 절대다수는 비서방 진영에 속했으며, 유일하게 열병식에 참석한 미국 동맹국(정상)은 한국 대통령 박근혜였다"며 "비록 한국이 대통령을 바꿨고 양국 관계에 약간의 개선이 있지만, 이 대통령이 9월 3일 베이징에 오지는 않을 것"이라고 전망했다.
이재명 정부가 한미동맹과 한·미·일 협력이 정부의 외교·안보 정책 근간임을 수차례 강조해온 만큼 대통령실은 7~8월 트럼프 대통령과의 한미 정상회담 성사에 주력할 것으로 보인다.
이 대통령이 전승절 행사에 참석하지 않으면 오는 9월 중순으로 예정된 유엔총회에서 한중 정상 간 첫 만남이 이뤄질 전망이다.
[오수현 기자 / 김상준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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