애플 비전 프로(Apple Vision Pro)가 하드웨어와 소프트웨어 기술 면에서 인상적인 완성도를 갖췄음에도 불구하고 필자는 지금까지 이 제품이 실패작에 가깝다고 줄곧 지적했다. 애플이 AR(Augmented Reality), 혹은 공간 컴퓨팅(Spatial Computing)이라 부르는 이 기술을 제대로 이해하지 못하고 있기 때문이다.
이 같은 상황은 2024년 2월 비전 프로 출시와 첫 주요 업데이트인 비전OS 2(visionOS 2) 공개 이후 2년 가까이 이어졌다. 하지만 올해 WWDC에서 공개된 비전OS 26(visionOS 26)을 보면, 애플이 비로소 공간 컴퓨팅 경험이란 무엇이어야 하는지에 대한 감을 잡기 시작한 듯하다.
공중에 떠 있는 창은 이제 그만
비전 프로는 오랜 시간 머리에 착용한 채 사용하는 기기다. 사용자는 카메라 패스스루(camera passthrough) 기능을 통해 디스플레이를 ‘통과해’ 실제 세계를 바라보면서, 렌더링된 그래픽이 현실의 사물 위에 자연스럽게 통합된 경험을 하게 된다. 단순히 눈앞에 콘텐츠가 떠 있는 방식, 즉 대부분의 스마트 글래스가 구현하는 전방 시현기(heads-up display) 수준의 기기와는 개념부터 다르다.
애플은 이런 경험을 구현할 기반 기술은 모두 갖췄지만, 완성된 제품은 곳곳에서 자기 발목을 잡는 문제를 드러냈다. 무게가 너무 무거워 오래 착용하기 어렵고, 대부분 앱은 그저 공중에 떠 있는 창 형태로 제공될 뿐이다. 마치 애플이 말하는 공간 컴퓨팅이라는 개념이 집 안을 거대한 아이패드 앱 창으로 가득 채우는 것에 불과한 듯한 인상을 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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혼자 대형 스크린으로 영화를 감상하거나 몇 분짜리 공간 비디오 콘텐츠를 즐기는 경우를 제외하면, 비전 프로의 경험은 철저히 2D에 머물러 있었다. 앱, 가상 맥 디스플레이와 같은 2D 창이 3D 공간에 떠 있는 듯한 형태로 제공되긴 하지만, 이를 현실 세계와 유기적으로 연결하는 능력은 거의 활용되지 못한 채 낭비되고 말았다.
공간 컴퓨팅의 ‘공간’을 되찾다
올가을 출시 예정인 비전OS 26에서는 애플의 누군가가 드디어 ‘AR에서 앱이 어떻게 작동해야 하는가’에 대한 개념을 제대로 파악한 듯한 인상을 준다. 왜 처음부터 이렇게 개발되지 않았는지 의문이 들 정도다.
위젯은 이제 프레임과 깊이를 자유롭게 설정해 상시 배치할 수 있는 3D 오브젝트로 진화했다. 사용자는 사진 위젯을 실제 디지털 액자처럼 보이도록 연출할 수 있다. 이는 공간 사진(spatial photo)으로 이어지는 작은 창 역할을 하게 된다. 또한 달력 위젯을 마치 벽에 걸듯 배치하는 것도 가능하다. 이는 캘린더 앱이 아닌 단순한 달력 위젯이고 외형도 실제 달력처럼 보이지는 않지만, 적어도 공간 컴퓨팅 환경에서 작동하는 경험이라는 점에서 의미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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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계 위젯도 마찬가지다. 새로운 디테일이 더해진 시계 디자인을 벽면에 밀착해 배치할 수 있으며, 외형도 실제 시계와 유사한 느낌을 준다. 날씨 위젯 역시 창문처럼 보이도록 구성돼, 공간 속 오브젝트로 자연스럽게 녹아든다.
필자는 여전히 애플이 다양한 크기와 형태의 시계를 공간에 배치할 수 있는 전용 시계 앱을 제공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대형 괘종시계부터 계란 타이머 같은 소형 시계 같은 것들 말이다. 하지만 이번 변화만으로도 애플이 너무나도 당연한 사실, 즉 공간 앱은 단순한 2D 창이 아니라 환경에 배치하는 ‘오브젝트’여야 한다는 점을 마침내 인식하기 시작했음을 보여준다.
지금까지 언급한 것은 어디까지나 위젯에 국한된 이야기다. 애플은 사진 앱과 사파리를 비롯해 서드파티 앱에서도 활용할 수 있는 ‘공간화(spatialized)’된 사진 생성 도구를 함께 개발하고 있다. 이를 통해 개발자는 자신의 앱 안에 어느 정도 공간화된 콘텐츠를 삽입할 수 있다. 앱 전체가 여전히 2D로 떠 있는 창 형태라고 해도, 경험 일부는 공간적으로 구성할 수 있는 기반이 마련되는 셈이다.
고립된 경험의 확장
비전 프로의 또 다른 큰 문제는 경험이 지나치게 고립돼 있다는 점이다. 자신이 보는 디지털 오브젝트는 당연히 다른 사람이 볼 수 없고, 같은 공간에서 모두가 비전 프로를 착용하고 있다 해도, 공유된 경험을 나누기까지의 과정이 너무 복잡하고 제한적이었다.
비전OS 26에서는 같은 공간에서 같은 시간에 같은 공간 영화(spatial movie)를 함께 감상할 수 있다. 개발자 역시 앱을 ‘공유 영역 기반 경험(shared-area experience)’으로 설계할 수 있다. 이는 원격 사용자와 동일한 가상 체스판을 보는 수준을 넘어, 같은 방에 있는 두 사용자가 동일한 위치와 상태의 가상 체스판을 함께 바라볼 수 있게 된다는 의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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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전 프로 한 대 가격조차 부담스러운 상황에서 두 대, 세 대를 보유하는 가정은 드물 것이다. 하지만 여러 사용자가 동일한 공간에서 같은 디지털 오브젝트를 함께 보고 조작하는 기능은 애초에 탑재돼야 했다.
게임 컨트롤러 지원
애플이 최근에서야 가능성을 인식한 또 다른 영역은 바로 게임 컨트롤러다. 수천 달러짜리 고성능 헤드셋에서 기대하게 되는 ‘진짜 게임’은 손을 허공에 휘젓는 동작만으로는 부족하다. 정밀한 입력을 위한 버튼, 그리고 밀리미터 단위의 빠르고 정확한 움직임과 방향 조작이 필수적이다. 결국 게임에는 컨트롤러가 필요하다.
애플은 자체 컨트롤러를 만들지는 않았다. 대신 소니의 PSVR2 센스(Sense) 컨트롤러를 공식 지원하는 방향을 택했다. 이는 최선의 선택일 수 있지만, 현재 별도로 판매되지 않는 PSVR2 컨트롤러를 소니가 단독 제품으로 판매해야 한다는 전제가 따른다. 해당 컨트롤러의 단품 가격은 아직 공개되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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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침내 올바른 방향으로
비전 프로가 추전 제품이 될 때까지 넘어야 할 산은 많다. 더 가볍고 저렴한 하드웨어가 등장해야 하겠지만, OS와 앱 전반에 걸쳐 더욱 풍부한 개선 역시 필요하다. 지금도 사용자 경험의 상당 부분은 여전히 ‘공중에 떠 있는 아이패드 앱’에 갇혀 있다.
하지만 비전OS 26만큼은 애플이 ‘공간 컴퓨팅’ 또는 ‘혼합현실(mixed reality)’이라 불리는 이 기술이 진정 무엇을 의미하는지 서서히 이해하기 시작했음을 보여주는 신호로 받아들일 수 있다.
비전OS 26에는 사용자 편의성을 높이는 다양한 개선이 포함돼 있지만, 애플이 현재 집중하고 있는 방향은 공간 컴퓨팅을 지속적이고 공유할 수 있는 디지털 오브젝트 중심으로 재정의하는 방향으로 나아가고 있다.
이런 철학의 변화는 애플이 앞으로 1~2년 이내에 어떤 모습으로 진화할지에 대한 기대감을 다시 느끼게 만든다. 새로운 하드웨어와 함께 비전OS 27이나 28이 등장할 시점을 떠올리면 자연스럽게 궁금해진다. 이런 기분을 느낀 건 비전OS가 처음 출시됐을 때 이후 처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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Jason Cross editor@itworld.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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