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배령 내려진 북한 IT 노동자/FBI |
2020년 8월 미국 조지아주 애틀랜타에서 스타트업을 운영하던 미국인 마를런 윌리엄스는 메신저 텔레그램에서 ‘펩바 셰르파’라는 인물의 메시지를 받았다. 그는 자신이 소프트웨어 엔지니어라며 일자리를 찾는다고 했다. 윌리엄스는 조금 미심쩍었지만 그가 맡긴 일을 잘해내자 더 많은 업무를 주며 신뢰했다. 셰르파는 자신이 아랍에미리트에서 대학을 나왔고 어머니는 한국인이라고 소개했다. 그런데 셰르파가 최고기술책임자가 돼 윌리엄스 회사의 가상 화폐에 접근할 수 있게 된 2021년 가을부터 돈이 조금씩 사라지기 시작했다. 윌리엄스가 의심하자 셰르파는 약 74만달러(약 10억원) 규모의 가상 화폐를 챙겨 잠적했다.
1일 미국 법무부와 월스트리트저널에 따르면 연방 정부는 이 사건에 북한이 관계돼 있다고 보고 연루된 북한인 네 명에 대해 500만달러의 포상금을 걸고 수배에 나섰다. 법무부에 따르면 수배 대상 북한인은 김관진(27), 강태복(28), 정봉주(28), 장남일(26)이다. 이들은 2021년부터 지난해 10월까지 80여 명의 미국인 신원을 도용해 100개 이상의 미국 기업에 위장 취업했다. 피해 기업 중에는 미 경제 전문지 포천이 매년 발표하는 500대 기업인 ‘포천 500’에 포함된 곳도 있다.
연방 정부는 16주에서 운영된 29곳의 ‘노트북 농장’을 압수 수색해 29개 금융 계좌를 압류하고 21개 웹사이트를 압수하는 등 대대적인 수사를 벌였다. 노트북 농장은 미국 밖에 있는 북한인이 미국에 거주하는 것처럼 가장하기 위해 미국 내에 수십~수백 대의 노트북을 설치해 놓고 원격 접속하는 거점이다. 용의자들은 도용한 신원으로 미국 기업에 원격 취업해 가상 화폐 접근 권한을 얻은 뒤 빼돌리는 수법으로 총 91만5000달러를 챙긴 것으로 조사됐다. 미 법무부는 “다른 기업에 취업했던 북한인들은 민감한 군사 기술과 관련된 정보도 빼돌린 것으로 나타났다”고 했다. 월스트리트저널은 “셰르파 일당이 라오스의 객실 14개짜리 에어비앤비 숙소에서 이 같은 일을 벌였다는 정보가 있다”고 했다.
북한은 해외 사업이 막히자 체제 유지 비용을 충당하기 위해 점차 가상 화폐를 탈취하는 경향을 보이고 있다. 지난해 국가정보원은 북한의 해킹 조직원 수를 8400여 명 수준으로 파악했다고 밝혔다. 2023년 북한의 가상 화폐 탈취 규모는 1조원을 넘어서기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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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뉴욕=윤주헌 특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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