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간 가치 핵심 예술도 AI에 무너져
'AI에 어떻게 대응하나'는 무의미해
"인간 어떤 존재여야 하나" 물어야
“우린 말이 아니야, 사람이야. 사람은...”
지난달 27일 공개된 넷플릭스 드라마 ‘오징어 게임’ 시즌3의 주인공 성기훈(이정재)은 아기를 살리고 기꺼이 죽음을 택하며 이렇게 읊조린다. 그가 끝맺지 못한 말이 맴돈다. 드라마를 만든 황동혁 감독이 부연했다. 기훈이 삼킨 말은 “어떤 존재여야 하는가”였다고. 2021년 시즌1 공개 이후 미국 에미상 비영어권 드라마 최초 감독상 등 6관왕을 차지하고, 넷플릭스 역대 최고 흥행작으로 K콘텐츠 위상을 드높인 ‘오징어 게임’은 인간 존재의 의미를 되물으며 대장정을 마친다.
인간 존재의 의미는 오랜 시간 예술이 추구해 온 핵심 가치다. 니체와 칸트 등 서양 철학자부터 괴테와 톨스토이, 헤밍웨이 등 대문호에 이르기까지 예술 고전은 인간의 본질을 끈질기게 탐구했다. 지난해 한국인 최초로 노벨문학상을 수상한 작가 한강도 인간을 인간답게 하는 것, 인간성에 천착한 작품들을 발표해왔다. 시대와 국경을 뛰어넘어 인간성을 좇아온 예술은 인공지능(AI)이 감히 침범할 수 없는 인간 최후의 보루였다.
'AI에 어떻게 대응하나'는 무의미해
"인간 어떤 존재여야 하나" 물어야
'오징어 게임' 시즌3의 성기훈(이정재). 넷플릭스 제공 |
“우린 말이 아니야, 사람이야. 사람은...”
지난달 27일 공개된 넷플릭스 드라마 ‘오징어 게임’ 시즌3의 주인공 성기훈(이정재)은 아기를 살리고 기꺼이 죽음을 택하며 이렇게 읊조린다. 그가 끝맺지 못한 말이 맴돈다. 드라마를 만든 황동혁 감독이 부연했다. 기훈이 삼킨 말은 “어떤 존재여야 하는가”였다고. 2021년 시즌1 공개 이후 미국 에미상 비영어권 드라마 최초 감독상 등 6관왕을 차지하고, 넷플릭스 역대 최고 흥행작으로 K콘텐츠 위상을 드높인 ‘오징어 게임’은 인간 존재의 의미를 되물으며 대장정을 마친다.
인간 존재의 의미는 오랜 시간 예술이 추구해 온 핵심 가치다. 니체와 칸트 등 서양 철학자부터 괴테와 톨스토이, 헤밍웨이 등 대문호에 이르기까지 예술 고전은 인간의 본질을 끈질기게 탐구했다. 지난해 한국인 최초로 노벨문학상을 수상한 작가 한강도 인간을 인간답게 하는 것, 인간성에 천착한 작품들을 발표해왔다. 시대와 국경을 뛰어넘어 인간성을 좇아온 예술은 인공지능(AI)이 감히 침범할 수 없는 인간 최후의 보루였다.
예술이 인간 고유의 영역이라는 확신은 헛된 기대였다. AI가 만든 영화는 인간이 만든 영화보다 훨씬 빠르고, 정교하고, 풍성하다. 일본 애니메이션 거장이 수십 년 공들여 구축한 작품 세계를 AI는 수초 만에 재현한다. AI의 연주는 인간보다 정확하고 매끄럽다. AI는 인간을 감동시키는 문장도 쓸 줄 안다. 세상은 변했다. AI 예술이 AI 없는 예술보다 더 익숙하다. 기술만의 문제도 아니다. 이제 인간은 AI에게 예술의 핵심 가치, 인간성을 바란다. AI는 인격을 부여받았다. AI와의 연애는 갈등 없이 달콤하고, 로봇의 손길은 의심 없이 따뜻하다. 인간은 AI에 길들여졌다.
AI가 인간의 통제를 벗어나 인간을 위협할 수 있다는 우려는 진즉 제기됐다. 인류는 ‘나날이 발전하는 AI에 어떻게 대응할 것인가’를 두고 고민해왔다. 하지만 이 고민은 더 이상 유효하지 않다. 인간 고유의 창작물에 대한 저작권을 강화하고, AI 기술 적용을 분야별로 제한시키고, AI와의 대화나 소통을 엄격하게 금지한다고 해서 AI에 길들여진 인간성을 회복할 수 있을까. 어렵다고 본다.
AI 시대일수록 인간 본연의 가치를 찾아야 한다. 근원적인 질문으로 돌아가 보자. ‘인간을 인간답게 하는 것은 무엇인가’, ‘사람은 어떤 존재여야 하는가’, ‘사람은 무엇으로 사는가’ 등이다. 올해 공연계 아카데미상인 토니상 6관왕을 달성한 한국 창작 뮤지컬 ‘어쩌면 해피엔딩’에서 답을 찾을 수도 있겠다. 21세기 후반 서울을 배경으로 쓸모를 다하고 버려진 로봇들의 사랑 이야기를 담은 이 작품은 아이러니하게 인간의 사랑을 역설한다.
희로애락을 공유하는 두 로봇은 마지막을 앞두고 둘의 기억을 삭제한다. 감정을 지운 두 로봇은 서로를 알지 못하던 이전으로 돌아가고 다시 처음부터 만나게 된다. AI와 인간의 가장 큰 차이는 감정이다. 뮤지컬은 로봇에 감정을 입히는 설정으로 인간 고유의 감정을 부각한다. 매일 아침 다정하게 말을 거는 AI를 사랑하는 건 인간이다. AI는 인간을 사랑하지 않는다. 인간의 사랑을 흉내낼 뿐이다. 그러니 복기하자. 우린 로봇이 아니다. 사람이다. 사람은...
강지원 문화부장 stylo@hankookilbo.com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