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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란-미국·이스라엘의 ‘약속 대련’, 언제까지 계속될까 [뉴스룸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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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28일(현지시각) 이란 수도 테헤란의 엥겔라브(혁명) 광장에서 이스라엘의 공습으로 사망한 이란군 지휘관들과 과학자들의 장례식이 열리고 있다. 테헤란/UPI 연합뉴스

지난 28일(현지시각) 이란 수도 테헤란의 엥겔라브(혁명) 광장에서 이스라엘의 공습으로 사망한 이란군 지휘관들과 과학자들의 장례식이 열리고 있다. 테헤란/UPI 연합뉴스


조기원 | 국제부장



2020년 1월8일 새벽 이라크 내 미군 주둔 기지 아인알아사드와 아르빌에 이란이 쏜 미사일 15발가량이 떨어졌다. 닷새 전 미군 드론(무인기)의 공습으로 이란 이슬람혁명수비대 쿠드스군 사령관 가셈 솔레이마니가 목숨을 잃은 사건에 대한 보복이었다. ‘순교자 솔레이마니’라는 이름이 붙은 이 작전은 이란 최고지도자 아야톨라 알리 하메네이가 최고국가안보위원회를 찾아 “미국에 비례적이고 직접적인 공격으로 보복하라”고 지시한 바로 다음날 이뤄졌다. 그러나 이 공격으로 숨진 미군은 없었다. 공격 1시간 전쯤 이란은 아딜 압둘마흐디 이라크 총리에게 ‘보복 작전이 개시됐고, 표적은 미군이 주둔하는 곳에 한정했다’고 구두 통보했다. 미국은 피해를 줄일 대비책을 마련할 수 있었다. 이란이 공격한 아인알아사드 공군기지와 아르빌이 상대적으로 미군 밀집 지역이 아니었고, 더구나 아르빌에는 미국 영사관이 있지만 영사관 자체를 겨냥하지 않고 가까운 곳에 미사일을 떨어뜨렸다. 이란은 솔레이마니 피살로 격앙된 자국 여론을 달래면서 미군에 실질적 피해는 별로 끼치지 않는 공격 방식을 택해 확전을 피했다는 평가가 많이 나왔다. 이른바 ‘약속 대련’이라는 해석이다.



4년 뒤인 지난해 4월13~14일 이란은 이스라엘 본토에 300여기의 드론과 미사일을 발사했다. 같은 해 4월1일 이스라엘이 시리아 다마스쿠스 이란 영사관을 공습해 이란 혁명수비대 쿠드스군 고위 지휘관 2명을 포함해 7명이 숨지게 한 데 대한 보복이었다. 다만, 이란이 쏜 미사일과 드론은 대부분 격추돼 이스라엘에 큰 피해를 입히지는 못했다. 호세인 아미르압돌라히안 당시 이란 외교장관은 테헤란 주재 각국 대사들에게 “주변국과 미국에 공습 72시간 전 작전을 하겠다고 통보했다”고 말했다. 이스라엘에 사전에 대비할 시간을 줬다는 해석이 당시 나왔다. 이후 같은 해 4월19일 이스라엘은 이란 핵시설이 있는 이스파한주를 공습하면서도 이스파한주 핵시설 자체는 타격하지 않았다.



그리고 올해 6월13일 이스라엘이 이란 핵시설을 폭격하고 이란군 수뇌부와 과학자들을 암살하면서 전쟁이 벌어졌다. 이란도 수백기의 미사일을 이스라엘의 실질적 수도인 텔아비브를 포함한 대도시로 발사하며 교전은 12일간 이어졌다. 이스라엘을 지지하는 미국은 이란 핵시설의 핵심이라고 알려졌던 포르도를 지난 21일 벙커버스터 폭탄으로 폭격했다. 다만 포르도 핵시설이 이 폭격으로 불능화된 것은 아니라는 미국 언론들의 보도가 잇따랐다. 이틀 뒤인 23일 이란이 카타르의 우다이드(우데이드) 미군기지를 미사일로 공격했으나,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은 소셜미디어 트루스소셜에 “사전 통보 덕분에 인명 피해는 전혀 없었고, 아무도 다치지 않았다”고 적었다. 24일 이란과 이스라엘은 휴전했다.



이란과 이스라엘 그리고 미국은 서로 체면을 약간 세워주는 방식으로 분쟁 확대를 피해왔다. ‘약속 대련’을 어느 정도 반복해왔다고 볼 수 있다.



하지만 간과하지 말아야 할 점은 이들이 선을 계속 넘어왔다는 점이다. 2020년 이란의 미군기지 보복 공격은 1979년 이슬람 혁명으로 탄생한 이란 이슬람공화국 정부가 자국 정규군 전력을 활용해 미군을 직접 공격한 첫 사건이었다. 지난해 이란이 이스라엘 본토를 직접 공격한 것도 1979년 이란 이슬람공화국 성립 이후 처음 있는 일이었다. 이란과 이스라엘은 지난해 사건 전까지만 해도 이른바 ‘그림자 전쟁’을 벌여왔다. 이란은 헤즈볼라와 하마스 등 대리 세력을 통해 이스라엘을 공격하고, 이스라엘은 요인 암살과 주요 시설 파괴와 같은 방식으로 이란을 공격하되 서로 드러내놓고 직접 타격하지 않는 것이었다. 그러나 지난해 직접 교전이라는 선을 넘었고, 올해는 12일간의 교전으로 이란에서는 900명 이상, 이스라엘에서는 20명 이상이 숨진 것으로 추정된다. 또다시 약속 대련으로 당장은 긴장이 진정됐어도 사태를 낙관할 수 없는 이유다.



중동의 불길은 한반도를 포함한 세계 다른 나라들에도 남의 일이 아니다. 핵 개발 완료 전에 수도와 주요 핵시설을 타격당한 이란을 보면서 각국이 무슨 생각을 하고 있을지를 곱씹어보면 서늘한 생각이 든다.



garden@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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