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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시 전체를 예술 난장으로…이제 뮌스터 아닌 교토를 보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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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토 옛 황궁 남쪽 교토신문사 지하층 윤전실 공간에 파격적으로 설치된 프랑스 출신 사진가 제이알의 근작 ‘교토 연대기’의 전시 모습. 윤전실 공간의 한가운데 난간통로를 걸어가면 양쪽에 교토의 남녀노소 시민들을 클로즈업한 사진 조형물이 조명을 받으면서 잇따라 등장하고 각 시민들이 자신의 삶에 대해 털어놓는 육성(나레이션)이 울려온다. 노형석 기자

교토 옛 황궁 남쪽 교토신문사 지하층 윤전실 공간에 파격적으로 설치된 프랑스 출신 사진가 제이알의 근작 ‘교토 연대기’의 전시 모습. 윤전실 공간의 한가운데 난간통로를 걸어가면 양쪽에 교토의 남녀노소 시민들을 클로즈업한 사진 조형물이 조명을 받으면서 잇따라 등장하고 각 시민들이 자신의 삶에 대해 털어놓는 육성(나레이션)이 울려온다. 노형석 기자


천년 도읍지? 이젠 더 이상 과거의 명예에만 머물지 않는다. 일본 고도 교토는 확실히 현대미술의 도시로 진화하는 중이었다.



그 실상을 지난 4월12일 교토 옛 황궁 남쪽 거리에 자리한 교토신문사 지하층 윤전실에서 실감했다. 이 공간에 파격적으로 설치된 프랑스 출신 사진가 제이알의 근작 ‘교토 연대기’ 조형물들이 관객들의 찬탄 속에 명멸하고 있었다. 윤전실 공간의 한가운데 난간 통로를 걸어가니 양쪽에 교토의 남녀노소 시민들을 클로즈업한 사진 조형물이 조명을 받으면서 잇따라 등장하고 시민 각자가 자신의 삶에 대해 털어놓는 육성(내레이션)이 울려왔다. 기름 잉크 냄새를 풍기면서 쉴 새 없이 지면이 찍혀 나왔을 신문사 윤전실이 현대미술의 설치 공간으로 탈바꿈한 것이다. 제이알이 교토신문사 안에 내놓은 회심의 근작들은 2013년 처음 시작된 이래 3~4년 전부터 국내 사진 미술 애호가들에게 봄의 순례 행사로 정착된 국제사진예술제 ‘교토그라피 2025’의 핵심 전시 중 하나로 동시대 교토인들의 생생한 삶을 시청각으로 체험하고 교감하게 하려는 프로젝트였다.



교토 도심 산조거리의 다카세천 옆에 있는 안도 타다오의 명작 건축물 ‘타임즈’의 특설전시장에 영국 사진대가 마틴 파의 작품들이 내걸렸다. 이 사진들의 시선 흐름이 벚꽃잎이 흘러가는 다카세천의 풍경과 자연스럽게 이어진다. 노형석 기자

교토 도심 산조거리의 다카세천 옆에 있는 안도 타다오의 명작 건축물 ‘타임즈’의 특설전시장에 영국 사진대가 마틴 파의 작품들이 내걸렸다. 이 사진들의 시선 흐름이 벚꽃잎이 흘러가는 다카세천의 풍경과 자연스럽게 이어진다. 노형석 기자


일본을 대표하는 역사도시인 간사이 지방의 고도 교토가 요사이 세계 현대 미술계에서 ‘아시아의 뮌스터’로 부각되는 중이다. 최근 도시의 옛 문화유산과 도시가로 등을 현대미술과 결합시킨 독창적인 도시예술 프로젝트를 선보이면서 국제적인 주목을 받고 있기 때문이다. 특히 교토그라피는 백여년 된 근대 살림집과 현지 신문사의 인쇄공간, 안도 타다오가 만든 복합상가건물 등 교토 도심 거리에 산재한 다양한 근현대 공간을 전시장으로 적극 활용하면서 도시 전체가 관객들의 관람 동선이 되는 새로운 전시 포맷을 제시하고 있다. 독일의 북서부 노르트라인베스트팔렌주의 대학도시 뮌스터가 10년마다 선보이는 세계 최고의 조각·공공미술 축제 ‘뮌스터 조각프로젝트’를 따라잡을 기세라는 말들이 나올 정도다.



13회를 맞은 올해 교토그라피는 10개국, 13명의 작가, 14개의 장소에서 메인 전시가 열렸는데, 무로마치 시대의 유명한 선종 사찰인 겐닌지(건인사)의 참선 공간, 도심의 유력 가문 전통 저택, 산조 거리의 20세기 초 근대식 금융건물, 거장 안도 다다오가 설계한 도심의 복합상업건물까지 특설전시장으로 활용하면서 대가들의 작품 관람과 함께 역사문화유산, 인근의 관광지까지 자연스럽게 돌아볼 수 있도록 전시 영역의 범위를 폭넓게 확대한 것이 돋보였다. 특히 산조 거리의 다카세천 옆에 있는 안도 다다오의 명작 건축물 ‘타임스’의 2층 특설전시장에는 영국 사진 대가 마틴 파의 작품들이 내걸렸는데, 이 사진들의 시선 흐름이 벚꽃잎이 흘러가는 다카세천의 풍경과 자연스럽게 이어지는 모습이 색다른 경물처럼 와닿았다. 그 아래에는 동물과 땅의 생태를 다룬 일본 중견 작가의 사진들이 암전된 배경 속에 내걸려 명작 건축물 타임즈는 생태의 심연과 교토의 이면을 찍은 사진의 비경이 되었다.



교토의 대표 문화유산인 니조성에 설치된 독일 출신의 거장 안젤름 키퍼의 날개 모양 조형물. 날개 달고 비상하고 싶지만 하늘의 이상과 땅의 현실 사이에서 팔레트를 부여잡고 고뇌해야하는 예술가의 실존적 상황을 형상화했다. 노형석 기자

교토의 대표 문화유산인 니조성에 설치된 독일 출신의 거장 안젤름 키퍼의 날개 모양 조형물. 날개 달고 비상하고 싶지만 하늘의 이상과 땅의 현실 사이에서 팔레트를 부여잡고 고뇌해야하는 예술가의 실존적 상황을 형상화했다. 노형석 기자


더욱이 4~6월엔 에도시대 도쿠가와 막부가 지은 유네스코 유산 니조성에 세계적인 미술 거장인 안젤름 키퍼가 세계사와 일본의 예술사를 화두로 담아낸 설치작품·회화전을 차려 세계 미술계의 시선도 쏠렸다. 빛과 그늘이 미묘하게 분할된 일본 전통 건축의 구조와 금박을 입힌 장벽화 같은 특유의 장식적 얼개를 교토시의 협조로 충실히 섭렵한 키퍼는 납덩어리, 안료, 오브제 등이 뒤얽힌 특유의 콤바인 회화를 니조성의 어둑어둑한 부엌 공간에서 일말의 자연광과 함께 절묘하게 연출하면서 인간 문명의 야만에 대한 성찰과 구원의 문제를 빛과 그늘이 아롱진 자신의 작품 속에 표출했다. 도심 동쪽의 헤이안 신사 지구 뮤지엄 권역에서는 모네, 쿠사마 야요이 같은 거장들의 국제기획전도 이런 대형 기획에 맞물려 더욱 화제를 모으며 관객을 끌어들이고 있었다.




그동안 도시 전체를 예술의 장으로 만든 선례로 10년마다 설치예술 프로젝트가 열리는 독일 뮌스터를 지목하곤 했는데 이젠 해마다 다른 양상으로 도시를 현대미술 난장으로 꾸리는 교토가 새로운 모델로 등장하고 있다. 뮌스터가 도시 공간을 수놓는 공공 조형물이나 환경 조각, 퍼포먼스 등을 지속적으로 추구해왔다면 교토는 문화유산의 역사와 흔적을 현대 작가들의 상상력과 결부시키는 담대한 구도로 차별성을 도출해냈다. 1000여년 동안 거의 그대로 유지되어온 도시의 역사적 지층이 현대미술과 만나 놀라운 시너지 효과를 내고 있는 교토시와 현지 기획자들의 공간 활용 전략은 숱한 역사적 격변의 흔적을 안고 있는 서울과 경주 같은 국내 역사 도시들에도 짚어볼 거리들을 던지고 있다.



교토/글 ·사진 노형석 기자 nuge@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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