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테이블코인 법제화가 급물살을 타는 가운데 한국은행이 추진해온 디지털화폐(CBDC) 실험이 잠정 중단됐다. 사진은 빨간색 불이 켜져있는 서울 중구 한국은행 인근 신호등 [헤럴드DB] |
[헤럴드경제=홍태화 기자] 한국은행이 추진해온 중앙은행 디지털화폐(CBDC) 실험이 2차 테스트를 앞두고 사실상 멈춰섰다. 반면 스테이블코인 법제화는 급물살을 타고 있어 한은을 향한 스테이블코인 압박은 커지고 있다. 민간 참여 활성화와 중앙은행 통제를 놓고 이견 또한 더욱 첨예하게 대립될 것으로 전망된다.
30일 금융권에 따르면 한국은행은 최근 CBDC 실거래 1차 테스트(프로젝트 한강)에 참여한 7개 은행에 2차 테스트 논의를 잠정 중단한다고 알렸다. 당초 한은은 1차 테스트를 마무리하고, 개인 간 송금, 결제 가맹점 확대, 인증 방식 간소화 등을 반영한 2차 테스트를 진행할 계획이었다.
한은은 지난해 12월 금융결제국 소속 디지털화폐연구부를 디지털화폐연구실로 확대하는 등 CBDC 사업에 전사적인 공을 들여왔다.
그러나 최근 더불어민주당이 발의한 디지털자산기본법 등으로 스테이블코인 법제화 논의가 본격화되고, 은행권이 ‘CBDC는 상용화 계획 없이 비용 부담만 크다’며 난색을 표하면서 사업에 제동이 걸렸다.
CBDC 1차 테스트에 참여한 7개 은행은 시스템 구축과 마케팅 등에 이미 300억원 안팎을 투입한 것으로 알려졌다.
이에 이창용 한은 총재가 지난달 직접 은행장을 찾아 적극 동참을 독려하고 2차 테스트 비용 절반 이상을 부담하겠다고 했지만, 은행들은 상용화 로드맵이 나와있지 않은 상태에서 추가 실험은 어렵다는 입장을 고수했다. 스테이블코인 논의가 급물살을 타면서 CBDC 사업이 실제로 실현될 수 있느냐는 의구심이 커졌기 때문으로 풀이됐다.
한은의 CBDC 실험이 멈춘 사이, 민간 중심 디지털 통화 추진은 속도를 내고 있다. 주요 시중은행들은 원화 기반 스테이블코인 상표권을 잇따라 출원하고, 블록체인 업체와 컨소시엄을 구성해 사업화 방안을 모색 중이다.
CBDC와 스테이블코인은 모두 가격이 안정적으로 유지되도록 설계됐다는 점에서 유사하지만, 발행 주체가 중앙은행(공공)과 민간(사설)으로 나뉘고, 통화정책 집행이나 글로벌 확장성 등에서 차이가 있다.
한은은 그간 “CBDC가 스테이블코인과 같은 역할을 할 수 있다”고 강조해왔지만, 스테이블코인 법제화 논의가 구체화되면서 정책적 불확실성이 커진 셈이다.
특히 국정기획위원회가 한은에 “스테이블코인에 대해 전향적인 입장을 보여달라”고 주문하는 등 정부 차원의 압박도 거세지고 있다.
사진은 CBDC 관련 이미지 [123RF] |
한은의 고민은 깊어지고 있다. 스테이블코인 활성화가 중앙은행의 통화정책 실효성을 떨어뜨릴 수 있다는 우려 때문이다. 한은은 기준금리 조정 등으로 시중 통화량을 조절하지만, 민간에서 발행하는 원화 스테이블코인이 대규모로 유통될 경우 사실상 ‘사설 화폐’가 시장을 장악해 금리 정책의 효과가 약화될 수 있다.
또 특정 발행사 부도로 대규모 ‘코인런’이 발생한다면 전통 금융시장에 충격을 줄 수 있다는 지적도 나온다. 한은은 과거 은행감독원을 산하에 두고 금융기관에 대한 검사와 감독을 수행했지만, 금융감독원이 신설된 이후에는 사실상 시장을 감독할 권한이 없다.
이에 한은은 스테이블코인 제도 설계 시 중앙은행의 역할과 권한을 명확히 반영하는 방안을 검토하고 있다. 대표적으로 유럽연합(EU)의 ‘미카(MiCA)’처럼 중앙은행이 코인 발행업자의 인가 거부권·취소권 등 주요 권한을 가지는 방안이 거론된다. 스테이블코인 체제를 관리할 수 있는 권한이라도 한은이 가지고 있어야 위험을 그나마 최소화할 수 있다는 논리다.
이런 상황 속 한은은 최근 국정기획위원회에 제출한 업무보고에서 디지털 금융혁신 생태계 구축과 관련한 청사진을 제시했다.
한은은 스테이블코인 등 신기술 기반의 디지털 금융혁신이 글로벌 경쟁에서 뒤처지지 않도록 적극적으로 추진해야 한다는 국정위의 주문에 대해 혁신 생태계 조성과 함께 부작용 최소화를 위한 안전장치 마련의 중요성을 강조했다.
한은은 “스테이블코인 등 디지털 금융혁신이 불가역적 흐름이라면, 혁신과 안정이 조화를 이루는 생태계 조성이 무엇보다 중요하다”며 “시장 활성화와 함께 소비자 보호, 금융안정, 통화주권 수호를 위한 안전장치 마련에 적극 나서겠다”고 밝혔다.
국정위는 “스테이블코인 등 신산업 도입 과정에서 부작용을 최소화할 수 있도록 중앙은행의 역할이 중요하다”며 한은이 혁신 생태계의 안전판 역할을 충실히 수행해줄 것을 당부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