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3일 서울 종로구 외교부 청사 1층 정부합동민원센터 앞에 국정기획위 국민정책제안 프로젝트 '이재명 대통령에게 바란다' 배너가 설치돼 있다. 연합뉴스 |
최근 국정기획위원회가 몇몇 정부 부서의 업무보고를 반려하고, 국정철학과 공약에 부합하지 않는 계획은 다시 써오라고 지시한 것에 대해 '점령군 같다', '위압적이다'는 비판이 제기되고 있다. 이런 비판은 본질을 호도한 것이다. 국정기획위의 강도 높은 피드백은 권위주의적 반응이 아니라 국민의 준엄한 명령을 이행하려는 민주적 책임 정치의 실천이다.
국정기획위의 활동은 정치적 맥락에서 말하자면 '정부 정렬(government alignment)' 과정이다. 이재명 정부의 국정철학과 정부 각급 조직들의 행동계획을 어우러지게 하는 일이다. 국민이 대통령 선거에서 선택한 것은 이재명이 내건 가치와 비전이다. 그건 이재명 개인의 꿈이 아니라, 그를 통해 이루고자 하는 국민의 꿈이다. 애타는 마음으로 함께 불렀던 '다시 만난 세계'의 꿈이다. 국정기획위는 그곳으로 가는 이정표를 작성하는 임무를 맡고 있다. 국민이 꿈꾸는 세상을 만들기 위해 국정을 설계하고 조율하는 일이다.
정상 대선이라면 선거가 치러진 후 2개월 정도 진행되는 인수위원회를 거쳐 새 정부가 출범한다. 이번 6.3 대선은 대통령 탄핵에 따른 비상 대선이었기에 새 정부 출범과 함께 인수위원회 역할을 담당하는 국정기획위를 2개월 정도 운영하게 된 것이다. 국정기획위 역할은 정부 전체의 방향성을 제시하고 국민에게 약속한 국정과제를 행정의 언어로 구체화하는 것이다. 이 작업이 없으면 국정은 행정의 관성에 따라가기 마련이다.
'정부 정렬' 과정에서 어떤 부서가 국민이 선택한 정책 및 비전을 무시하거나 자기 기관의 이해관계에 얽매이거나 과거 관행에 기대어 안이하게 업무보고를 한다면, 그걸 질책하고 되돌리는 건 국민의 명령에 충실한 행위다. 국정기획위가 이를 묵인한다면 그것이야말로 자신의 책무를 유기했다는 비판을 받을 게 분명하다. 국정기획위의 반려와 재보고 지시는 권위주의가 아니라 국민이 선택한 방향으로 국정을 세우려는 민주적 개입이다. 국민이 선거를 통해 위임한 국정철학을 구현하려는 책임 정치의 일환이다.
국정기획위도 자신의 직분을 진정 무겁게 생각해야 할 것이다. 광장에서 '그토록 아름답고 다정한 저항'을 했던 시민들은 모두 일터와 삶터로 돌아갔는데, 그들은 조마조마한 마음으로 불이 꺼진 광장을 지켜보고 있다. 광장 시민들이 돌아가 직면하고 있는 일상의 현실은 광장 이전과 다를 바 없는 것 같기 때문이다. 광장의 존재를 지우려는 혹은 광장에서 시민들을 지우려는 기득권 세력의 움직임이 만만치 않아 보이기 때문이다.
국정기획위는 "촛불혁명으로 권력은 바꾸었으나 내 삶의 변화는 왜 일어나지 않았는가"라는 질책을 기억해야 한다. 이 대통령이 민주당 대표 시절 국회 탄핵소추 결의를 한 후 광장의 시민 앞에 처음 무대에 올라서 한 연설이다. 국민은 삶이 달라지는 국정을 바란다. 그렇지 않으면 어찌 그것을 '빛의 혁명'이라 할 것인가. 국정기획위는 그와 같은 국민의 간절한 요구에 응답해야 한다.
그러자면 정부 전체가 국민의 명령을 정확히 새기도록 국정기획위가 각고의 노력을 기울여야 할 것이다. 정부의 방향을 일관되게 잡고, 선후·경중·완급을 가려 정책을 실천 가능케 하며, 국정 동력을 확실하게 확보해야 한다. 그리고 세상의 변화를 짐짓 외면하면서 조직 이기주의와 기득권 지키기에 매달리는 정부 부서는 질타해야 한다. 정부 각 부서의 뼈를 깎는 혁신 없이 새로운 국가와 사회로 나아갈 수 없음을 명심해야 한다.
국정의 성패는 초반 설계에 달려 있다. 그러자면 정부 각 부서가 전문성을 발휘하되, 국민이 선택한 변화의 방향과 일치하도록 조정하고 변화해야 한다. 지금 필요한 것은 일부 정부 부서의 기득권을 두둔하는 정치적 계산이 아니라 국민의 명령을 어떻게 현실의 정책으로 풀어낼 것인가에 대한 전략적 집중이다. 국정기획위가 이 정당한 책임을 다하길 나는 소망한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