뿔난 팬들 “FC서울, 레전드를 버렸다” FC서울 서포터스가 29일 서울월드컵경기장에서 FC서울-포항 스틸러스전에 앞서 기성용 이적에 대해 서울 구단과 김기동 감독을 비난하는 다양한 플래카드를 내걸고 있다. 한국프로축구연맹 제공 |
경기 4시간 전 경기장 밖에서는 땡볕 더위에도 팬 160여명이 참석한 장례식 집회가 열렸다. 참가자들은 방어회를 제사상에 올리고 향을 피우는 퍼포먼스로 구단의 레전드 기성용 이적 방침에 불만을 드러냈다. 기성용 이적 논란 무마를 위해 일부 서포터스와 방어회를 먹었다고 소문이 돈 김기동 감독을 조롱하는 의미였다.
수호신은 킥오프 전부터 “김기동 나가”를 외쳤다. “전술 짜랬지 정치하랬나”라는 등 구단과 김 감독을 비난하는 내용이 적힌 다수 플래카드를 들어 올렸다. 관중석은 기성용의 등번호 6번이 새겨진 FC서울 유니폼을 입은 팬들로 가득 찼다. 기성용은 스카이박스에서 경기를 지켜봤다. 아직 포항 선수로 등록되지 않아 출전할 수 없었기 때문이다. 팬들이 부르는 기성용 응원가가 경기장에 울려 퍼질 때마다 시선은 자연스럽게 기성용이 앉아 있는 스카이박스로 향했다.
출전 선수 명단 소개 시간에도 비난은 여전했다. 수호신은 기성용을 영입하기로 한 포항 구단의 선수들이 호명될 때는 박수를 치면서도, 김기동 감독이 소개될 때는 엄청난 야유를 쏟아냈다. 이어 “김기동 나가”라는 외침도 여러 번 들렸다.
그런데 정작 경기가 시작된 뒤 선취골이 터지자 수호신의 태도가 바뀌었다. 전반 15분 제시 린가드의 페널티킥 선제골이 터지는 순간, 응원 보이콧을 선언한 팬들은 반사적으로 주먹을 불끈 쥐었다. 전반 20분 정승원의 골이 오프사이드로 취소됐음에도 골망을 흔든 순간에는 환호성이 터져 나왔다. 서울은 상대 선수 퇴장에 따른 수적 우위 속에 전반에만 3골을 몰아치며 주도권을 잡았다. 후반 29분 포항 이동희가 만회골을 넣었지만, 여름 이적시장에 영입된 클리말라의 쐐기 골까지 더해 서울이 4-1로 대승했다.
김기동 감독이 바라던 경기 결과였지만 6번 유니폼으로 가득 찬 관중석과 스카이박스에서 관전한 기성용의 모습은 FC서울이 처한 미묘한 현실을 상징적으로 보여주었다. 팬들은 응원을 거부하겠다고 선언하면서도 결국 팀을 응원하지 않을 수 없었다. 이날 서울월드컵경기장에는 하루 종일 모순된 상황과 미묘한 감정들이 계속 교차했다.
기성용은 경기가 끝난 후 사복 차림으로 경기장을 돌며 응원 와 준 팬들에게 고개 숙여 인사했다. 수호신은 “서울의 캡틴 기성용”을 외치며 뜨겁게 맞았다. 기성용은 한참을 머뭇거리다 입을 뗐다. 그는 에이징 커브를 언급하면서 “언젠가는 올 이별의 시간이 왔다. FC서울이 나로 인해서 힘들어지지 않았으면 좋겠다”며 응원을 부탁했다. 수호신은 그가 그라운드를 떠날 때까지 응원가를 목놓아 불렀다. 팬들은 경기장을 떠나며 “아쉽다”는 말을 연발했다.
김기동 감독은 경기가 끝난 후 수호신 앞으로 나갔다. 환호는커녕 “김기동 나가”라는 야유만 다시 들어야 했다. 결국 김 감독이 팀 레전드 기성용이 떠난 빈자리를 좋은 경기력으로 계속 채워나가는 것만이 부정적 여론을 되돌릴 수 있는 유일한 길처럼 느껴졌다.
박효재 기자 mann616@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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