낡은 나무 식기는 고운 사포로 결을 다듬고 생들기름을 바르면, 다시 반짝인다. |
사회생활을 하다 보면 제아무리 무던해 보이려 애써도 ‘유난하다’는 평가를 듣는 지점이 한두 개쯤 생긴다. 나에게도 그런 면이 있다. 금속 그릇에 금속 수저를 쓰는 식당에 가면 싫은 티를 내지 않으려고 최선을 다해 먹는다. 금속끼리 부딪치는 소리를 들을 때마다 양 팔뚝에 소름이 돋고 머리 가죽이 쭈뼛 서지만, 어디까지나 내 사정이다. 그런 연유로, 집에서 식사할 때는 나무 수저를 쓴다. 나머지 밥주걱, 뒤집개, 볶음용 주걱 같은 주방 도구도 대부분 원목 소재다. 스테인리스 소재로 된 것은 국자나 칼, 채칼 정도이다. 스테인리스에 비하면 관리가 귀찮지만 불만은 없다. 금속 맛도, 소리도 없는 편안한 식사에 그저 고마울 뿐이다.
나무 식기는 사용 후 즉시 씻는다. 천연 수세미를 사용하면 나무를 긁지 않고 부드럽게 세척할 수 있다. 소독은 식초 섞은 물에 몇분 담갔다 헹구는 것으로 족하다. 끓인 물을 부어 소독하는 것은 나뭇결이 뒤틀려 수명을 단축할 수 있어 지양한다. 씻은 식기는 바람이 통하는 체망에 펼쳐서 건조한다.
흠집이 많은 나무 식기는 수리해야 한다. 방법은 간단하다. 사포로 갈아 매끈하게 만들고, 생들기름을 발라 코팅해주는 것이다. 처음에는 150방 이하 거친 사포를 손에 맞게 잘라 식기의 흠집이 사라질 때까지 문지른다. 가장자리 부분의 손상이 심하다면 사포를 바닥에 놓고 힘주는 손에 식기를 쥐어 문지르는 편이 수월하다. 작업할 때 사포 뒤에 청테이프를 바르면 종이 사포라도 잘 찢어지지 않고 작업대에서 미끄러지지 않는 장점이 있다. 흠집을 없앴다면 고운 사포를 사용해 일어난 표면을 다듬는다. 2차로 중간 단계의 사포(220방 정도)를 쓴 후, 400방으로 마무리하면 제법 매끈한 표면을 얻을 수 있다. 심하게 상한 경우에는 카빙 나이프나 전동 조각기의 힘을 빌리기도 하지만, 역시 마무리는 사포로 해야 제맛이다.
깨끗한 천 조각에 생들기름을 찍어 나무에 고루 바른다. 플라스틱 성분이 섞인 천은 마찰로 인해 미세플라스틱이 남을 수 있어 면이나 리넨을 사용하는 것이 좋다. 기름을 바를수록 나무의 색은 깊어진다. 아무리 저렴한 식기라도 사포질하고 기름을 먹인 것은 빛이 다르다. 조각 전문가가 직접 깎아 만든 식기처럼 고풍스러운 멋이 깃든다. 흡수되지 않은 기름을 천으로 가볍게 닦아내고 하루 두었다가, 다음날 두 번째로 기름을 먹여 건조하면 수리는 끝이다. 정기적으로 기름을 먹이면 식기의 내구성이 높아진다는데, 나는 부지런하지 못해서 흠집이 눈에 띌 때에야 수리를 한다.
‘그냥 편하게 금속 수저를 쓰지 그래’라고 말하고 싶은 지인들의 속내를 모르는 바 아니지만, 일상에서도 중요한 비중을 차지하는 ‘먹는 일’만큼은 내가 원하는 방식으로 편안히 즐기고 싶다. 수고스럽지만, 이런 수고는 달갑기도 하다. 나를 먹이는 식기를 직접 돌보고 관리하면서 삶에 대한 애정을 되새긴다. 기호와 불편을 감출 필요 없는 집에서의 일상이, 눈치 보는 바깥의 나를 다독인다. 이곳에서는 얼마든지 유난스러워도 괜찮다고.
물건을 쉽게 버리지 못하는 사람. 일상 속 자원순환의 방법을 연구하며, 우산수리팀 ‘호우호우’에서 우산을 고친다. 책 <반려물건> <반려공구>를 썼다.
모호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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