컨텐츠로 건너뛰기
뉴스
서울
구름많음 / 0.0 °
조선일보 언론사 이미지

불법 이주자 받다 지친 뉴욕 “무료 호텔, 문 닫을게요”

조선일보 뉴욕=윤주헌 특파원
원문보기
‘통제 불능’ 루스벨트 호텔 폐쇄
2년 전 붐비던 호텔 앞, 지금은 전면 통제 - 2023년 9월 미국 뉴욕 맨해튼 중심가에 있는 루스벨트 호텔 입구가 이주자들로 북적이는 모습(왼쪽 사진)과 지난 26일 호텔 문이 굳게 닫히고 펜스가 쳐져 있는 모습(오른쪽 사진). 앞서 뉴욕시는 2023년 5월부터 이 호텔을 이주자들을 위한 임시 숙소로 제공했다. 하지만 감당하기 어려운 수준으로 이주자들이 몰려오면서 시 행정에도 차질을 빚게 되자 폐쇄가 결정됐다. /게티이미지코리아·윤주헌 특파원

2년 전 붐비던 호텔 앞, 지금은 전면 통제 - 2023년 9월 미국 뉴욕 맨해튼 중심가에 있는 루스벨트 호텔 입구가 이주자들로 북적이는 모습(왼쪽 사진)과 지난 26일 호텔 문이 굳게 닫히고 펜스가 쳐져 있는 모습(오른쪽 사진). 앞서 뉴욕시는 2023년 5월부터 이 호텔을 이주자들을 위한 임시 숙소로 제공했다. 하지만 감당하기 어려운 수준으로 이주자들이 몰려오면서 시 행정에도 차질을 빚게 되자 폐쇄가 결정됐다. /게티이미지코리아·윤주헌 특파원


26일 오후 뉴욕 맨해튼 중심가인 그랜드센트럴역 인근 루스벨트 호텔 46번가 출입문은 굳게 닫혀 있었다. 불과 며칠 전까지만 해도 미등록 이주자 아이들이 부모 손을 잡고 임시 거처가 있는 호텔 안으로 들어가던 문이었지만, 이날은 문 앞에 펜스가 둘러쳐져 있어 접근조차 할 수 없었다. 건물 반대편 45번가 쪽 출입문엔 건장한 네 명이 회전문 앞에서 웃으면서 이야기하고 있었다. 뉴욕시 소속이라는 한 남성은 “이제 이곳에 더 이상 난민은 없다”고 했다. 2023년 5월부터 미국으로 넘어온 이주민들에게 시 당국이 무료 숙소를 제공하던 이 호텔은 24일 완전히 폐쇄됐다. 한때 1000여 객실에는 중남미와 중국에서 온 이주자들이 빼곡히 들어차 있었지만, 이제는 단 한 명도 남아 있지 않다. 이들 대부분 등록 서류가 없는 불법 이주민들이었다. 다른 문화에 대한 관용과 다양성을 자랑해온 뉴욕이지만, 감당할 수 없을 정도로 이주자들이 밀려오면서 세금 부담, 도시 슬럼화에 따른 시민들의 불만이 폭발하자 결국 두 손 든 것이다.

뉴욕 맨해튼 루스벨트 호텔 46번가 출입구. 26일 오후 찾은 이 호텔 출입구는 닫혀 있었고, 이곳에 머물던 난민을 더 이상 찾아볼 수 없었다./윤주헌 특파원

뉴욕 맨해튼 루스벨트 호텔 46번가 출입구. 26일 오후 찾은 이 호텔 출입구는 닫혀 있었고, 이곳에 머물던 난민을 더 이상 찾아볼 수 없었다./윤주헌 특파원


맨해튼 출신의 진보주의자 시어도어 루스벨트 전 대통령(1901~1909년 재임)의 이름을 딴 루스벨트 호텔은 1924년 문을 연 이래 좋은 위치와 로비에 달린 화려한 샹들리에로 큰 인기를 얻었다. 역사와 전통을 자랑하던 이 호텔이 ‘미국 이민 정책의 상징’으로 변신한 건 2023년이다. 바이든 정부 시절인 2022년 초부터 남부 국경을 통해 수많은 이주자가 새 터전을 찾겠다며 미국으로 넘어왔고, 이 중 상당수는 뉴욕으로 향했다. 뉴욕시는 1981년 법원 판결에 따라 미국에서 유일하게 이주자들에게 무료 쉼터를 제공하고 있다.

2023년 5월 뉴욕시는 루스벨트 호텔에 ‘이주자 도착 센터’를 설치하고 뉴욕에 들어오는 모든 이주자의 등록 및 신체검사 등을 진행했다. 호텔 로비에는 소파 대신 사무용 책상이 들어섰다. 이주자 버스가 언제 도착할지 몰랐기 때문에 뉴욕시 관계자들은 24시간 센터를 운영했다. 한쪽에서는 건강 상태를 점검하고 백신을 놔주기도 했고, 피부병은 없는지 옷을 벗게 해 확인하기도 했다.

뉴욕에 도착한 이주자들은 다음 행선지를 정할 때까지 이 호텔 객실에 임시로 머무를 수 있었다. 뉴욕시는 이들을 위해 약 680개 호텔 중 150여 개와 장기 계약을 맺었는데, 루스벨트 호텔은 그중 규모가 가장 크다. 마침 호텔은 2020년 코로나 팬데믹 이후 침체기를 겪으며 잠시 문을 닫은 상태였다. 뉴욕시는 호텔의 공실(空室) 문제와 이주자 숙소 부족 문제를 동시에 해결할 수 있을 것으로 기대했다.

그런데 문제는 너무 많은 이주자가 뉴욕에 몰리면서 발생했다. 플로리다·텍사스 등 불법 이민에 강경한 공화당 소속 주지사가 있는 지역들은 이주자들을 버스에 태워 뉴욕으로 실어 날랐다. 유화적인 이민 정책을 펴 온 민주당 우세 지역이 책임지라는 취지다. 뉴욕시에 따르면 2022년 4월부터 올해 초까지 최소 23만7000명의 이주자·난민이 뉴욕시에 유입됐고, 이 중 17만3000명이 루스벨트 호텔에 있는 센터를 이용했다. 시 정부와 계약을 맺은 호텔이 꽉 차면서 한여름이었던 2023년 8월, 방을 구하지 못한 200여 명의 이주자들이 호텔 밖 길바닥에서 뒤엉켜 자야 했다. 통제 불능 상태가 된 이 모습이 전 세계에 퍼져 나가며 루스벨트 호텔은 미국의 심각한 이주자 문제를 보여주는 상징적인 장소가 됐다.

‘밑 빠진 독에 물 붓기’ 식 지원은 심각한 재정 문제를 초래했다. 시는 이주자들에게 무료 숙소뿐 아니라 무료 급식을 지원했는데, 급식이 입맛에 맞지 않는다는 불평이 나오자 이주자들이 직접 식자재를 살 수 있도록 현금처럼 쓸 수 있는 선불카드까지 줬다. 뉴욕시가 2022~2025년 이주자 지원에 필요하다고 추산한 금액은 약 120억달러(약 16조2500억원). 뉴욕 시민의 세금으로 메워야 한다는 점에서 시민의 반대가 커졌다. 도시 곳곳이 슬럼화하고 이민자 범죄 위험이 증가하자 “뉴욕이 왜 이렇게 됐냐”는 불만도 터져 나왔다.


결국 에릭 애덤스 뉴욕시장은 “이주자 문제가 뉴욕시를 파괴할 것”이라며 비상사태를 선포하고 수용을 줄여나가기로 했다. 민주당을 지지하면서도 이민 문제에 강경해진 뉴욕 시민의 정치 성향 변화를 반영한 것이다. 이 과정에서 시 정부는 “바이든 정부가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아무런 도움을 주지 않는다”고 비판하며 연방 정부와 갈등을 빚기도 했다. 그리고 지난 1월 강력한 이민 통제 정책을 쓰는 도널드 트럼프 정부가 들어서자, 뉴욕시는 바로 다음 달인 지난 2월 “루스벨트 호텔을 비우겠다”고 선언했다.

마지막까지 루스벨트 호텔에 머물던 이주자들은 지난 23일 밤까지 모두 떠났다. 일부는 맨해튼의 다른 호텔로 이동했다고 한다. 이곳이 폐쇄되면서 앞으로 뉴욕에 도착하는 이주자들은 맨해튼, 브롱크스, 브루클린에 흩어진 뉴욕시 사무소를 방문해 안내를 받아야 한다. 지금도 뉴욕에 도착하는 이주자는 있지만, 주 100명 미만으로 많이 감소했다. 루스벨트 호텔은 파키스탄 국제항공이 자회사를 통해 소유하고 있다. 파키스탄 정부는 호텔에 대한 기초 평가를 마치고, 국유 재산의 민영화를 추진할 계획이다.

조선일보 국제부가 픽한 글로벌 이슈!

뉴스레터 구독하기

[뉴욕=윤주헌 특파원]

- Copyrights ⓒ 조선일보 & chosun.com,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 -

info icon이 기사의 카테고리는 언론사의 분류를 따릅니다.

AI 이슈 트렌드

실시간
  1. 1김주하 사기결혼
    김주하 사기결혼
  2. 2심형탁 신인상 수상
    심형탁 신인상 수상
  3. 3김아랑 은퇴
    김아랑 은퇴
  4. 4신민아 김우빈 결혼
    신민아 김우빈 결혼
  5. 5김주하 사기 결혼 전말
    김주하 사기 결혼 전말

조선일보 하이라이트

파워링크

광고
링크등록

당신만의 뉴스 Pick

쇼핑 핫아이템

A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