OS 중심으로 형성된 생태계는 이제 단말기뿐 아니라 액세서리, 클라우드, 결제, 인증까지 아우르며 사용자 경험 전반을 통제한다. 이러한 밀착된 구조는 사용자의 편의를 극대화하는 동시에, 이탈을 어렵게 만드는 락인(Lock-in) 효과를 강화한다.
다만, 기술과 시장이 맞물리는 지점에서, 락인은 더 이상 개인의 선택 문제가 아닌 혁신의 진입을 가로막고, 경쟁을 제한하며, 정책의 우선순위로 부상하고 있다는 지적도 따른다.
디지털산업정책협회(DIPA)는 25일 국회의원회관에서 열린 'AI 시대 중소·벤처·스타트업을 위한 상호 호환성 세미나'에서 이 같은 락인 구조가 단순한 사용자 불편을 넘어, 중소·스타트업 기업의 시장 진입을 가로막는 실질적 장벽으로 작용하고 있다고 지적했다.
DIPA는 “대기업 중심의 폐쇄적 생태계가 강화되면서 소비자는 특정 플랫폼에 종속되고, 중소 사업자는 초기 단계부터 특정 진영을 선택할 수밖에 없는 구조에 놓이게 된다”며 “AI 시대에 걸맞는 상호운용성 확보와 이를 뒷받침할 제도적 대응이 시급하다”고 강조했다.
◆소비자도 이탈 어렵다…락인 강화하는 ‘생태계 UX’
이날 DIPA가 발표한 보고서에 따르면, 한국·일본·인도네시아를 대상으로 한 소비자 조사를 통해 플랫폼 전환에 있어 재정적·비재정적 장벽이 복합적으로 작용하고 있음이 확인됐다. 신규 기기 구입에 따른 초기 부담은 기본이고, 기존 액세서리 호환성 문제와 데이터 전송 불안감은 비재정적 요인 중 가장 큰 전환 저해 요소로 작용한다.
특히 iOS 사용자의 경우, 채팅 기록, 사진, 비밀번호 이전이 어렵다는 인식이 강했고, 폐쇄적 구조에 기반한 보안 이미지가 오히려 브랜드 충성도를 강화하는 방식으로 이어지고 있었다. 생태계의 응집력은 기술적 편의에서 출발하지만, 시장 전체를 단일 플랫폼에 종속시키는 방식으로 설계될 때, 사용자 선택은 제한되고 타사 기기의 진입 가능성은 구조적으로 축소된다.
DIPA는 이날 또 다른 정책 보고서를 통해, 하드웨어 및 소프트웨어의 상호운용성이 디지털 시장 혁신을 견인할 핵심 기반이라고 진단했다. 유럽연합(EU)의 디지털시장법(DMA) 제6조(7)처럼, 관문사업자가 특정 기능에 대해 독점적으로 접근권을 행사하는 구조에서는, 상호운용성 확보 자체가 정책 개입의 정당한 대상이 될 수 있다는 입장이다.
또한, 하드웨어 단위의 API 접근을 포함해, 운영체제와 주변기기 간의 명시적 인터페이스 개방이 전제되지 않으면, 중소기업과 스타트업은 기획단계부터 특정 생태계를 택할 수밖에 없고, 이는 구조적 종속으로 이어진다고 봤다. 시장 주도적 판단을 존중하되, 실질적 시장 실패가 확인될 경우에는 투명성과 비차별성을 기반으로 한 규제 설계가 필요하다는 설명이다.
◆애플 생태계의 ‘선형 통합’, 구글의 절충 전략, 삼성의 혼합형 구조
애플은 이러한 락인 효과를 가장 상징적으로 보여주는 사례다. 아이폰, 애플워치, 에어팟, 아이패드, 맥북 등은 제품별로 다르지만, 사용자 경험 측면에서는 하나의 환경으로 설계돼 있다. 사용자는 여러 기기를 넘나들며 동일한 메시지, 통화, 파일을 공유할 수 있다. 그러나 이 통합 구조는 외부와의 연결을 허용하지 않는다. 애플워치는 안드로이드 스마트폰과 연동되지 않고, 페이스타임, 아이메시지, 에어드롭 등 주요 기능은 생태계 내부 사용자 간에만 작동된다. 기술적으로는 가능하지만, 정책적으로 제한하는 이 구조는 사용자 편의보다는 생태계 봉쇄에 가깝다.
구글은 다른 방식으로 생태계를 구축했다. 안드로이드는 개방형 OS를 기반으로 삼성, 샤오미, 오포 등 수많은 제조사가 참여하고 있으며, 픽셀 시리즈로 하드웨어 참전을 강화하고 있지만, 여전히 다수의 기기와 서비스 간 상호운용성을 유지하고 있다. 그러나 최근 구글 역시 픽셀 생태계를 중심으로 자체 연동 기능을 강화하고 있으며, 타 기기에서 사용할 수 없는 고유 기능을 일부 탑재하면서 점진적인 락인 유도 전략이 감지되고 있다.
삼성은 이들 사이에서 실용적 균형을 추구하는 방식으로 진화해왔다. 갤럭시 생태계는 퀵쉐어, 멀티컨트롤, 이어폰 자동연결 등 고유 기능을 제공하지만, 동시에 윈도우, 크롬북 등과의 연동도 병행하고 있다. 자체 생태계 구축과 동시에, 외부 생태계와의 호환 가능성을 남겨두는 구조다. 삼성 입장에서는 구글과의 협력 없이 독자 OS를 운용하기 어렵고, 동시에 하드웨어 간 차별화 전략을 강화할 필요가 있다는 점에서 이중 구조는 전략적 불가피성이 있다.
◆ 상호운용성은 기술이 아닌 구조의 문제
생태계가 폐쇄되면, 사용자는 단일 기업의 정책 변경에 따라 모든 디바이스 환경을 바꿔야 하고, 기존 투자는 무용지물이 된다. 또 하나의 스마트워치를 사기 위해, 이어폰과 태블릿까지 교체해야 하는 구조는 비용과 시간의 문제를 넘어, 디지털 사용권에 대한 철학적 질문으로까지 확장된다.
상호운용성이 보장된다면, 사용자는 기기 하나만 바꿔도 기존 환경을 유지할 수 있으며, 기업은 기술력만으로 경쟁할 수 있다. 기술의 우열이 아니라, 시스템의 개방성과 선택의 유연성이 디지털 혁신의 진짜 경쟁력이 되는 시대다.
DIPA는 AI 시대의 핵심은 연결과 개방성이라며, 중소·벤처기업이 대기업 생태계에 종속되지 않고 자생력을 가질 수 있도록, 상호운용성을 제도적으로 보장하는 환경이 필요하다고 밝혔다.
소비자 역시 더 이상 단일 브랜드의 충성 고객이기보다는, 기술 수준에 따라 기기를 자유롭게 선택할 수 있는 능동적 사용자로 전환돼야 한다는 주장이다. 상호운용성은 단순히 기기 간 연결 기술이 아니다. 그것은 시장의 다양성과 경쟁을 회복하는 조건이며, 디지털 민주주의를 이루는 구조로서 역할을 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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