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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사일언] 詩로 허문 장애의 경계

조선일보 이승하 시인·중앙대 문예창작학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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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기도 용인의 한 장애인 평생교육 시설에 시 창작 특강을 나간 적이 있다. 연령대도 다르고, 몸과 마음 상태도 다 달랐다. 상태가 제각각이라 내 말을 알아듣는지 전혀 짐작이 가지 않았다. 등에서 진땀이 났다. 눈들이 초롱초롱 나를 보고 있으면 말할 기분이 날 텐데 각자 딴 곳을 보고 있는 것 같았다.

내 고백을 먼저 했다. 누이가 20대 중반에 장애인이 되어 마음이 늘 아프지만 면회를 자주 못 가는 나쁜 오빠라고 했더니 시선이 모였다. 운전을 못 배워 여러분을 만나러 대중교통을 네 번이나 바꿔 타고 왔다고 했더니 몇 사람이 킥킥 웃었다. 교통사고로 시각 장애인이 됐지만 특수 컴퓨터로 시를 쓰는 후배, 장애를 딛고 일어서 구상솟대문학상을 탄 분들의 사연을 소개했고 그들의 작품도 소개했다. 한 시간이 금방 갔다.

쉬는 시간에 앞을 못 보는 여성 교장 선생님이 간식을 가져다 주었다. 삶은 고구마였다. “이분들이 농장에서 직접 수확한 겁니다.” 희한하게도 고구마 껍질을 벗기고 같이 먹는 경험이 경계를 없앴다. 다음 수업에선 습작한 작품을 갖고 진행할 수 있었다.

몇 년이 흘렀지만 당시 수강생 중 지금도 메일과 문자를 주고받는 분이 있다. 아기 낳을 때 큰 고생을 해 장애인이 된 분이다. 출산의 기쁨과 장애인이 된 슬픔이 함께한 날이었던 것이다. 이런 말을 했다. “학생들은 공휴일이나 명절을 싫어한다”고. 학교에 가야 사람을 만날 수 있는데 달력에 빨간 표시가 되어 있는 날은 종일 집에 있어 무료하다는 것이었다. 그때 만난 모든 분, 오늘도 씩씩하게 학교에 가고 있을 것이다.

[이승하 시인·중앙대 문예창작학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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