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혜란 문화선임기자(칼럼용. 수정금지) |
부산콘서트홀은 비수도권 최초로 파이프오르간을 갖췄다. 지난 22일 조재혁 오르가니스트의 연주 모습. [사진 부산콘서트홀] |
물론 아쉬움도 없지 않았다. 지난 20일 시민 초청으로 열린 개관 공연에선 베토벤의 삼중협주곡과 교향곡 9번 ‘합창’이 연주되는 동안 휴대전화로 촬영하다 제지당한 관객이 있었고, 악장 사이마다 터지는 박수는 연주의 흐름을 다소 방해했다. 하지만 정명훈 지휘자는 이에 개의치 않고 오케스트라를 이끌었고, 커튼콜에 쏟아진 기립박수와 환호는 개관 축제 분위기를 끌어올리기에 충분했다. 이튿날부터는 유료 관객들이 객석을 메우면서 연주에 대한 몰입도 역시 눈에 띄게 높아졌다.
콘서트홀이 들어선 이곳은 과거 미군기지 캠프 하야리아(Camp Hialeah)였다. 그 시절 고향 부산을 등졌던 사람으로서 수십 년 만에 이곳에서 클래식 음악이 울려 퍼지는 풍경은 낯설기도, 반갑기도 했다. 따지고 보면 서양음악이 이 땅에 본격적으로 뿌리내린 것도 불과 100년 남짓이다. 마당놀이 같은 야외 연희에 익숙했던 조선인들이 일제강점기에 본격화한 실내 음악회 문화에 적응하기까진 적지 않은 시간이 필요했다. 피아노 한 대만 들여놓아도 신식 가정이 될 것 같은 환상이 ‘경성 시대’에 드리웠다고 신간 『음악적 경성』(조윤영 지음)은 썼다. ‘선진 문명’에 대한 열망·동경·집념·허세 등이 어우러져 새로운 문화의 추동력이 됐다. 앞선 이들의 헌신 덕에 오늘날 정명훈·조수미·조성진·임윤찬 등을 누릴 수 있게 된 건 이 시대의 축복이다.
“좋은 음악을 만드는 건 기본이다. 진짜 목표는 부산 시민이 ‘이건 우리의 것’이라고 느끼게 하는 것이다.” 부산에서 만난 밀라노 라 스칼라 극장의 오르톰비나 극장장이 공연장의 미래에 대해 남긴 조언이다. 이탈리아 오페라의 메카인 라 스칼라는 2차 대전 후 폭격으로 폐허가 된 도시에서 학교나 병원보다 먼저 복구된 것으로도 유명하다. “시민들이 공연장을 도시의 상징으로 여겼기 때문에 가능했다”는 게 오르톰비나의 말이다. 그 말처럼 문화시설은 때때로 공동체의 정체성이자 자부심을 대변하기도 한다. 부산콘서트홀이 그 같은 기억의 공간이 되길, 그래서 언젠가 시민들이 “이건 우리의 것”이라고 입 모아 말하는 날이 오길 소망한다.
강혜란 문화선임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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