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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텍스트힙’ 축제가 끝난 뒤 [슬기로운 기자생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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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18일 서울 강남구 삼성동 코엑스에서 열린 ‘2025 서울국제도서전’에 많은 시민들이 몰려 전시된 도서를 살펴보고 있다. 윤운식 선임기자 yws@hani.co.kr

지난 18일 서울 강남구 삼성동 코엑스에서 열린 ‘2025 서울국제도서전’에 많은 시민들이 몰려 전시된 도서를 살펴보고 있다. 윤운식 선임기자 yws@hani.co.kr




이우연 | 사회정책팀 기자



나도 갔다. 최근 서울 코엑스에서 열린 서울국제도서전 말이다. “도서전에 간다”고 하니 “부럽다”는 말을 여러번 들었다. 입장권이 온라인 예매 단계에서 매진됐기 때문이다. 올해는 안전 문제로 현장 판매가 없었다.



5일간 15만명이 다녀간 도서전 흥행을 두고 언론과 에스엔에스(SNS)에서는 여러 말이 오갔다. 줄어드는 독서인구 통계와의 괴리를 설명하려는 시도였다. “20·30세대 ‘텍스트힙’(책을 읽는 행위는 멋지다는 신조어) 열풍의 연장”, “책은 코어(핵심) 팬층이 두껍기 때문”이라는 분석이 나왔다. “굿즈 때문에 간 것 아니냐”는 반응도 있었지만, 도서전에서 본 이들은 대부분 책을 한 아름 안고 있었다.



책을 사는 것을 넘어 ‘개별화된 체험’을 제공한다는 점이 도서전 현상의 핵심이라 생각한다. 대기 줄이 길었던 ‘오이뮤’ 부스의 키오스크에서는 누군가에게 선물하고 싶은 단어를 입력하면 문장이 적힌 영수증이 인쇄돼 나왔다. 여러 출판사 부스에서는 온라인 설문을 기반으로 ‘책 처방’ ‘나에게 맞는 책 찾기’ 서비스를 제공했다. 일러스트레이터 ‘이다’는 지난달 엑스(X·옛 트위터)에 “케이(K)인(한국인)들은 체험을 좋아한다. 전시, 콘서트, 영화, 북페어 모두 체험이고 초단기 여행과 비슷하다”고 했다. 제품 간 차이가 줄며 소비자들이 차별화된 경험을 사는 행위에 가치를 둔다는 ‘경험 경제’라는 열쇳말도 떠올랐다.



개인적으로는 책을 만든 편집자와 소통했던 순간들이 좋았다. 출판사 ‘마티’ 부스에서 펼친 책 ‘우리가 언제 죽을지, 어떻게 들려줄까’는 특이하게도 문단의 첫 줄을 내어쓰기(나머지 줄보다 왼쪽으로 이동시켜 시작하는 방식) 했고, 모든 문장이 왼끝맞춤으로 배열돼 있었다. 마침 편집자가 바로 앞에 있어서 이유를 물을 수 있었다. 장애를 소재로 한 책이라 저시력자를 위해 단락과 문장 경계를 명확히 하는 편집을 택했다는 답이 돌아왔다. 이처럼 궁금한 걸 편집자와 작가들에게 직접 물을 수 있어 좋았다. 출판인들 역시 눈에 보이지 않던 독자를 만나 반가웠을 것이다.



아쉬움이 없진 않았다. 소규모, 지역 기반 출판사들이 만든 특색 있는 책들을 우연히 만나는 즐거움이 예전보다 줄었다. 이들에게 할당된 공간은 큰 출판사의 것과 비교도 되지 않아 보였다. 젊은 마케터의 부재로 ‘힙한’ 굿즈와 이벤트를 준비하지 못한 몇몇 출판사의 부스는 눈에 띄게 휑해 보였다. 입장권이 온라인 판매로 한정되며, 어린이를 동반한 양육자나 중·노년층을 보기도 어려웠다. 한 어린이 책 출판사 관계자는 에스엔에스에서 “들러리 선 기분”이라고 토로했다. 집에 굿즈가 쌓이는 게 싫은 나는, 계속해 무언가를 쥐여주는 손길을 사양하느라 애를 먹기도 했다.



도서전은 일각의 비판처럼 “동네가 고급 커피숍과 디자인 편집숍으로 채워지는 젠트리피케이션 현상”(조동욱 도마뱀출판사 발행인)의 길을 걷고 있는 걸까. 내년에는 조금 더 많은 출판사가 골고루 만족하고, 다양한 독자가 접근 가능한 도서전이 될 수 있을까. 주식회사로 전환된 도서전의 공공성은 어떻게 지켜야 하는 걸까. 일단 눈앞에 새로 쌓인 열권 넘는 책부터 다 읽어야겠다. 축제 같은 도서전은 끝났지만, 좋은 책은 우리를 계속 기다리고 있으니까.



azar@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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