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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원 같았던 나흘… 흔들려도 넘어지지 않는 어른의 사랑

조선일보 이태훈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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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디슨 카운티의 다리’ 주역…
韓 뮤지컬 대표 배우 조정은·최재림
세 번째 시즌도 흥행 순항 중인 뮤지컬 ‘매디슨 카운티의 다리’에 처음 주역으로 합류한 우리 뮤지컬 대표 배우 조정은(왼쪽)과 최재림. 호소력 뛰어난 배우 조정은은 ‘눈물의 여왕’급 ‘프란체스카’를, 비범한 역할에서 뛰어났던 최재림은 비움과 절제로 한층 섬세해진 로버트를 보여준다. /쇼노트

세 번째 시즌도 흥행 순항 중인 뮤지컬 ‘매디슨 카운티의 다리’에 처음 주역으로 합류한 우리 뮤지컬 대표 배우 조정은(왼쪽)과 최재림. 호소력 뛰어난 배우 조정은은 ‘눈물의 여왕’급 ‘프란체스카’를, 비범한 역할에서 뛰어났던 최재림은 비움과 절제로 한층 섬세해진 로버트를 보여준다. /쇼노트


서서히 어두워지는 무대 위, 벤치에 앉은 노년의 프란체스카(조정은·차지연)가 고요히 먼 곳을 바라본다. 오직 그녀에게만 들리는 로버트(박은태·최재림)의 노래를 관객은 함께 듣는다. “눈부시게 아름답던 순간들, 빛이 바래진 사진처럼 모두 사라져가고. 남은 건 오직 하나, 그대. 내게 남은 건, 변하지 않는 그대….” 두 사람이 함께한 단 나흘의 시간이 수십 년의 세월을 건너 그녀의 심장을 두드릴 때, 객석은 눈물 바다가 된다.

세 번째 시즌 공연이 진행 중인 뮤지컬 ‘매디슨 카운티의 다리’에 쏟아지는 호평에는 이번에 처음 주연으로 합류한 우리 뮤지컬 대표 배우 조정은과 최재림의 공도 크다. 공연장인 서울 강남구 광림아트센터 BBCH홀 인근에서 최근 두 사람을 만났다.

◇“억지 꾸밈 없이 서로 스며들도록”

미국 아이오와 시골에서 길을 잃은 내셔널 지오그래픽 사진가 로버트가 우연히 프란체스카를 만난다. 평생 세계를 떠돌며 어디서도 정착하는 관계를 맺지 않았던 남자. 프란체스카는 이탈리아의 고향 나폴리를 떠나 낯선 미국 시골에 정착해 살고 있다. 단 나흘간의 운명적 만남이 시작된다.

최재림은 ‘시카고’의 변호사 빌리 플린, ‘오페라의 유령’의 유령처럼 비범한 역할로 익숙한 배우. 평범한 남자 연기가 오히려 도전 아니었을까. 그는 “로버트는 자유롭지만 안정돼 있고 열정적이지만 부드러운, 그냥 완벽한 남자”라며 “사실 연습 초반엔 멋진 남자를 연기하려고 애썼던 것 같다”고 했다. “근데 그게 아니더라고요. 흔들리고 갈등하는 로버트가 되기 위해 억지로 꾸며서 보여주고 싶은 욕심을 계속 덜어냈어요. 농도는 짙어지되 더 섬세하게 서로를 향해 스며들도록.”

‘프란체스카’(조정은·왼쪽)와 ‘로버트’가 두 번째 저녁 식사를 함께 한 뒤 춤추는 장면.

‘프란체스카’(조정은·왼쪽)와 ‘로버트’가 두 번째 저녁 식사를 함께 한 뒤 춤추는 장면.




조정은이 고개를 끄덕였다. 그는 ‘레미제라블’의 ‘팡틴’ 등 정서적 호소력 짙은 역할에 강했던 배우. 이번 작품에선 ‘눈물의 여왕’급이다. “주변에선 저와 역할이 잘 어울린다는데, 스스로는 잘 찾지 못해 버거웠어요. 밤잠도 설쳤고요.” 배우는 불안할수록 더 보여주려 애쓰기 마련. 조정은은 “설명하지 않고 그저 주고받는 감정과 호흡 안에 머물려 애썼다”고 했다. “감정 변화의 순간을 찍어서 보여주려는 의도를 내려놓고 그저 그 순간에 머물려 했어요. 그렇게 서로에게 스며들듯 몰입할 수 있어서 더 자연스럽게 공감해주시는 것 아닐까요.”

◇흔들려도 넘어지지 않는 ‘어른의 사랑’

어떤 이야기는 세월이 쌓이며 전혀 다른 의미로 다가온다. ‘매디슨 카운티의 다리’ 역시 그런 작품. 원작 소설에서 프란체스카는 45세, 로버트는 50대 초중반이다. 조정은은 “재연 때 출연 제안을 받았지만, 역할을 감당할 연륜도, 나이를 극복할 연기술도 부족하다고 느껴 사양했다”고 기억했다. “배우로서 경험도, 한 사람으로 살아온 시간도 조금은 더 쌓여 역할을 소화할 준비가 됐을 때 이 작품을 만난 건 큰 행운이에요.”


뮤지컬 '매디슨 카운티의 다리'의 프란체스카 조정은과 로버트 최재림. /쇼노트

뮤지컬 '매디슨 카운티의 다리'의 프란체스카 조정은과 로버트 최재림. /쇼노트




두 사람은 이 작품의 가장 큰 매력을 “이미 멜로디에 감정이 다 담겨 있어서 배우가 억지로 덧붙일 필요가 없을 만큼 정서적으로 풍성한 음악”이라고 입을 모았다. 최재림에겐 겉으론 평온하지만 내면의 폭발적 파동이 담긴 노래 ‘뭐였을까’가 마음에 와 닿는다. 조정은도 “음악이 스스로 연기의 방향을 제시해주는 느낌”이라며 벤치에 홀로 앉은 노년의 프란체스카에게 로버트의 노래 ‘내게 남은 건 그대’가 들려오는 순간을 가장 특별하게 꼽았다. “무대 위에서도 그때만큼은 제가 완전히 그 순간을 누려요. 단순한 노래가 아니라 평생을 담아온 그리움, 내면의 모든 것이 담긴 고백처럼 마음 깊숙이 울려요.”

세월이 흘러 덧난 상처에 박인 굳은살처럼, 마음속 단단하게 굳어 있던 어느 한구석을 허물어내는 듯한 공감력이 엄청난 뮤지컬. 카메라 장노출로 찍은 하늘처럼 별들이 회전하는 무대 뒤 배경은 짧지만 영원과 같았던 두 사람의 시간을 표현하듯 황홀하다.

조정은은 “연습 때 녹음해 놓고 들을 만큼 김태형 연출가의 말이 큰 도움이 됐다”고도 했다. “한번은 연출님이 ‘널 알기 전과 후, 우주가 둘로 쪼개지는 것 같은 단 한 번의 순간’을 얘기하셨어요. 그걸 정말 온몸으로 느껴보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그 간절함이 제 안에 계속 남아 무대에서도 드러나는 것 같아요.”


이 뮤지컬은 젊은 시절 사랑처럼 델 듯 뜨겁지 않아도, 흔들리지만 끝내 넘어지지는 않는, 한 인간으로서 약속과 책임을 회피하지 않는 어른의 사랑에 관한 이야기이기도 하다.

“속 깊은 남편과 아내도 있고, 우연한 운명적 인연이 있는가 하면, 티격태격 서로를 잘 아는 커플도 있어요. 보통 사람들이 사랑하고 결혼하고 가족을 이뤄 살아가는 다양한 모습이 들어 있는 거죠.” 최재림은 “누구나 자신만의 선택의 기로에 서 본 경험이 있다. 그래서 그 순간들을 떠올리며 더 공감하게 되는 것 같다”고도 했다.

공연은 내달 13일까지, 7만~16만원.


☞매디슨 카운티의 다리

미국 작가 로버트 제임스 윌러(1939~2017)의 1992년작 소설이 원작. 37주간 뉴욕타임스 베스트셀러 1위를 지키며 세계적으로 5000만부, 한국에선 70만부 넘게 팔렸다. 클린트 이스트우드가 감독과 주연을 맡아 메릴 스트리프와 함께 출연한 영화(1995)도 전 세계 1억8200만달러(약 2480억원)의 흥행 성적을 올렸다. 브로드웨이 뮤지컬(2014)은 토니상 음악상과 편곡상을 받았고, 한국에선 2017년과 2018년에 이어 세 번째 시즌이 진행 중이다.

[이태훈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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