컨텐츠로 건너뛰기
뉴스
서울
맑음 / -3.9 °
한겨레 언론사 이미지

훨훨 학처럼 날아가고파…조선 명화 거장들의 속내 보여주는 꽃과 색

한겨레
원문보기
19세기 초 단원 김홍도의 말년 화첩인 ‘산수일품첩’ 가운데 홀로 날아가는 백로를 그린 ‘향사군탄’의 일부분. 노형석 기자

19세기 초 단원 김홍도의 말년 화첩인 ‘산수일품첩’ 가운데 홀로 날아가는 백로를 그린 ‘향사군탄’의 일부분. 노형석 기자


저 멀리 훌훌 날아가고프다.



불세출의 거장 단원 김홍도(1745~?)가 휘휘 그린 새 그림 앞에서 누구나 이렇게 상상하게 된다. 지난해 개관한 대구간송미술관 지하 전시장에서 지금 단원의 자유롭고 활달한 필력을 실감할 수 있다. 40~50대 장년기에 그린, 조선의 농가 논밭 위에서 사뿐히 날아오르는 백로 두마리의 그림이 눈앞에 놓여져 있다. 그 옆에는 60대 넘긴 노년기에 그린, 시냇가 바위 위에서 창공을 향해 고적하게 날개를 휘젓는 백로 그림들이 있다. 두 그림 속 새의 자태는 확연히 달라도, 자유로운 예술혼의 세계로 비상하고 싶다는 작가의 욕구는 각기 다른 감흥으로 뚜렷하게 전해져온다.



대구간송미술관 첫 기획 전시로 지난달 시작한 조선시대 꽃과 새 그림들의 명작 잔치 ‘화조미감’전(8월3일까지) 현장은 치열하면서도 서늘하다. 단원과 겸재 정선, 심사정, 이인상, 강세황, 조속 등 조선시대 명화 거장들의 솔직한 속내를 보여주는 화조화 명작 37건 77점(보물 2건 포함)이 나왔다.



국가보물로 지정된 단원 김홍도의 명작 ‘병진년화첩’ 가운데 논 위에 날아가는 백로를 그린 ‘백로횡답’의 일부분. 노형석 기자

국가보물로 지정된 단원 김홍도의 명작 ‘병진년화첩’ 가운데 논 위에 날아가는 백로를 그린 ‘백로횡답’의 일부분. 노형석 기자


단원의 장년기와 노년기 필치와 심경을 엿보게 하는 두 시기 화조 화첩들을 처음 대비시켜 보여준 것이 가장 강렬하다. 국가보물로 지정된 단원의 명작 ‘병진년화첩’ 가운데 논 위에 날아가는 백로를 그린 ‘백로횡답’은 화가의 의식과 감정을 꽃과 새 같은 동식물의 자태로 표현한 화조화다. 당대 조선 농촌의 전형적인 풍경을 배경으로 하고 있지만, 모든 굴레를 벗어나 자유로운 예술의 세계로 날아가려는 작가의 내밀한 마음을 개성적인 필치로 담아냈다.



19세기 초 단원의 말년 화첩인 ‘산수일품첩’ 가운데 홀로 날아가는 백로를 그린 ‘향사군탄’은 함께 대비하면서 볼 수 있는 흥미로운 작품이다. 장년기 ‘병진년화첩’에서 농촌의 논밭을 구체적인 배경으로 삼아 날아가는 백로를 그렸던 것과 달리, 구체적인 전경을 싹 지워버렸다. 풀숲 시냇가 바위 위의 드넓은 하늘을 가르며 날아가는 새를 간략한 몇개의 선과 획으로 그려내면서 원숙해진 노년기 화력의 경지를 보여준다.



18세기 겸재 정선이 그린 화훼영모화첩(8폭) 가운데 ‘추일한묘’의 일부분. 가을날 풀숲의 방아깨비를 내려다보는 고양이를 그렸다. 노형석 기자

18세기 겸재 정선이 그린 화훼영모화첩(8폭) 가운데 ‘추일한묘’의 일부분. 가을날 풀숲의 방아깨비를 내려다보는 고양이를 그렸다. 노형석 기자


다음 주목해볼 것은 기세가 뻗치는 금강산, 한양의 진경산수화로 유명한 18세기 거장 겸재 정선(1676~1759)이 세심한 필치에 섬세하게 색을 베풀어 그린 꽃과 새, 벌레, 쥐, 고양이 그림들이다. 가을날 풀숲의 방아깨비를 한가로이 내려보는 고양이를 그린 ‘추일한묘’와 들쥐 두마리가 밭에서 수박 열매를 몰래 갉아먹고 있는 장면을 담은 ‘서과투서’가 서로 해학적인 대비를 보여주는 모습이 싱그러우면서도 웃음을 머금게 한다. ‘화훼영모화첩’으로 불리는 이 화첩은 오랫동안 벌레가 먹어 곳곳에 구멍이 뚫린 낱장 상태였는데, 미술관 기획진은 뱅크오브아메리카(BoA)의 ‘예술 작품 보존 프로젝트’를 통해 구멍을 메우고 체계적으로 복원하면서 이 그림들이 장닭-암탉, 개구리-두꺼비, 고양이-쥐 등의 대비되는 구도로 구성된 8폭 병풍임을 입증하는 성과를 올렸다. 그 안쪽에 배치된 16세기 여성 화가이자 대학자 율곡 이이의 어머니인 신사임당 전칭작 ‘초충도’ 병풍과 도상이 대단히 비슷해 (16세기) 율곡학파의 일원이었던 겸재가 선대의 그림에서도 큰 영향을 받았다는 것을 알 수 있다.



겸재의 고양이 그림 ‘추일한묘’와 쌍을 이루는 것으로 밝혀진 ‘서과투서’의 일부분. 들쥐들이 수박 열매를 갉아먹는 모습이다. 노형석 기자

겸재의 고양이 그림 ‘추일한묘’와 쌍을 이루는 것으로 밝혀진 ‘서과투서’의 일부분. 들쥐들이 수박 열매를 갉아먹는 모습이다. 노형석 기자


전시장 중간의 단원과 겸재를 중심고리로 삼아 16~17세기의 조속, 조지운, 18세기의 이인상, 심사정, 강세황, 19세기의 남계우, 장승업, 안중식, 조석진의 화조도, 초충도 명작들이 줄줄이 이어진다. 실내 디자이너 양태오의 스튜디오에서 돌과 나무와 한옥 내부 이미지들을 따서 만든 들머리 공간 ‘접화의 방’은 화조화를 그린 선비의 사유 세계를 상징한 또 다른 감상거리다. 계절과 자연의 순환을 상징하는 꽃, 하늘과 땅을 잇는 상서로운 존재로 여겨졌던 새, 지상의 동식물들을 그린 16~19세기 화조화 최고 명작 컬렉션을 집약한 자리다.



대구/글·사진 노형석 기자 nuge@hani.co.kr



▶▶[한겨레 후원하기] 시민과 함께 민주주의를!

▶▶민주주의, 필사적으로 지키는 방법 [책 보러가기]

▶▶한겨레 뉴스레터 모아보기

info icon이 기사의 카테고리는 언론사의 분류를 따릅니다.

AI 이슈 트렌드

실시간
  1. 1여인형 이진우 파면
    여인형 이진우 파면
  2. 2뉴진스 다니엘 계약 해지
    뉴진스 다니엘 계약 해지
  3. 3이시영 캠핑장 민폐 사과
    이시영 캠핑장 민폐 사과
  4. 4대통령 춘추관 방문
    대통령 춘추관 방문
  5. 5김건희 면죄부 검찰 반성
    김건희 면죄부 검찰 반성

한겨레 하이라이트

파워링크

광고
링크등록

당신만의 뉴스 Pick

쇼핑 핫아이템

A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