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린시프트] 배터리(下)
━
드릴 베이비 드릴? 그린에너지가 더 성장…트럼프 패러독스
━
⑤ 트럼프 집권과 그린 산업
트럼프 1기 집권기간 미국 발전용량 증감/그래픽=이지혜 |
'드릴 베이비 드릴' 속에서도 그린 에너지는 앞으로 나아간다. 풍력·태양광 등의 발전단가 하락이 빨라질수록, 이런 추세는 더욱 공고해질 전망이다.
25일 유진투자증권에 따르면 미국에서 트럼프 대통령의 1기 집권 기간 동안 오히려 그린 에너지 사용은 늘었다. 태양광과 풍력의 경우 2017~2020년까지 추세적으로 발전용량 증가폭이 커지는 모습을 보였다. 2020년에는 태양광 14.8GW, 풍력 14.9GW 씩 증가했을 정도다. 같은 기간 화석연료의 발전용량은 마이너스를 기록했다. 트럼프 대통령의 집권 후반기에 감소폭은 더 확대됐다.
전기차 역시 마찬가지다. 트럼프 1기 행정부 시절은 일론 머스크가 이끄는 테슬라가 촉발한 전기차 혁명의 태동기였다. 2017년 10만1000대 수준이었던 테슬라의 전기차 판매량은 2020년 50만대로 5배 가까이 늘었다. 내연기관 자동차를 선호하는 트럼프 대통령의 성향과는 상관없이 전기차, 그리고 거기에 동반되는 배터리의 성장이 본격 시작됐다.
트럼프 행정부가 재출범한 올해 들어 그린 에너지를 둘러싼 상황은 녹록지 않다. 트럼프 대통령은 2기 행정부에서 화석연료 친화적인 자신의 성향을 더욱 강하게 정책에 반영하고 있다. 바이든 정부 시절 만들어졌던 IRA(인플레이션감축법)의 폐지에도 적극 나서며 그린 에너지에 대한 인센티브도 대폭 축소하려 한다. 글로벌 경제를 선도하는 미국의 변화는 곧 기업들의 방향성에 영향을 줄 수밖에 없다.
수년째 지속되고 있는 침체는 기업들의 투자까지 주저하게 만든다. 전기차 캐즘(Chasm, 일시적 수요 둔화)에 직면한 K-배터리가 대표적이다. '노 차이나 존'이 구축된 미국 전기차 시장을 중심으로 성장을 노렸지만 캐즘에 트럼프 정부의 IRA 폐지 악재까지 겹쳤다. LG에너지솔루션·삼성SDI·SK온 등이 설비투자 확대 대신 가동률 제고를 위한 리밸런싱으로 방향을 잡은 이유다.
그럼에도 그린 에너지 산업은 '필연적 미래'로 간주된다. 인프라 확충, 기술의 발전에 따라 그린 에너지가 화석연료보다 경제적으로 더 우위인 상황이 연출되고 있기 때문이다. 트럼프 1기 행정부 시절 그린 에너지 보급이 늘어난 현상 역시 보조금과 관계없이 화석연료 보다 풍력·태양광 발전 단가가 떨어졌기 때문으로 분석된다.
시장 조사 업체 라자드에 따르면 2023년 기준 육상풍력과 태양광 발전의 LCOE(균등화발전단가)는 각각 1MWh(메가와트시) 당 50달러와 60달러로 가스복합발전(76달러), 석탄(117달러) 대비 저렴했다. 전기차 가격 역시 배터리 가격이 갈수록 떨어지며 내연기관 수준에 근접해지고 있는 중이다. 그린 에너지의 단점이었던 간헐성의 경우 가격이 싸진 ESS 배터리 확대를 통해 상쇄할 수 있게 됐다.
한병화 유진투자증권 연구원은 "IRA 보조금을 제외하고도 미국에서 육상풍력과 태양광의 LCOE는 여타 발전원 대비 월등히 낮다"며 "트럼프 대통령의 방해에도 불구하고 전력시장이 재생에너지에 완전히 장악된 상태여서, 중장기적으로는 재생에너지 판도에 변화가 없을 것"이라고 밝혔다.
━
삼성, 현대차, SK, LG…기업들이 '그린 밸류체인' 힘주는 이유
━
⑥ 그린 밸류체인에 달린 기업의 미래
국내 주요 기업 '그린 산업' 추진 현황/그래픽=이지혜 |
국내 거의 모든 대기업들이 전기차·배터리를 필두로 한 '그린 밸류체인'에 합류한다. 그린 산업은 대한민국의 미래를 위해 반드시 개척에 성공해야 하는 경제영토가 되고 있다.
25일 재계에 따르면 현대차와 배터리 3사(LG에너지솔루션·삼성SDI·SK온) 외에도 다수의 대기업들이 전기차·배터리 밸류체인에 합류한 상태다. 국내 제1의 화학사 LG화학은 배터리 소재를 3대 신성장 동력 중 하나로 삼았고, 포스코퓨처엠은 양극재·음극재를 모두 생산하는 국내 유일한 기업이 됐다. 롯데케미칼은 분리막·전해액·양극박·음극박 등 핵심 소재를 다룬다. 이밖에도 에코프로(양극재), SKC(동박), HS효성과 코오롱인더스트리(전기차용 타이어코드) 등이 이 밸류체인에 이름을 올렸다.
조선 3사(HD한국조선해양·삼성중공업·한화오션) 역시 마찬가지다. IMO(국제해사기구)의 2050년 탄소중립 목표 설정 이후 '그린'은 필수가 됐다. LNG 이중연료 추진선을 비롯해 메탄올, 암모니아, 수소 등 차세대 연료 기반의 선박을 개발하고 있다. 화석연료를 다뤄온 정유4사(SK이노베이션·GS칼텍스·에쓰오일·HD현대오일뱅크)의 경우 SAF(지속가능항공유) 사업을 힘있게 추진한다. EU가 SAF 2% 사용 의무화에 돌입한 상황 속에서, 기존 사업에 안주한다면 항공유 수출 자체가 어려워질 수 있다.
그린 산업의 미래에 대한 확고한 믿음이 자리잡은 것이다. 최태원 SK그룹 회장이 "탄소중립은 산업을 바꿀 수 있고, 에너지를 무기화할 좋은 기회가 될 것"이라고 했던 것도 같은 맥락이다. 단순 ESG(환경·사회·지배구조) 차원의 문제가 아니다. 배터리 시장만 봐도 캐즘(Chasm, 일시적 수요 둔화) 속에서도 연 15~20% 수준의 성장이 가능할 것으로 관측되고 있다. 시장조사기관 모더인텔리전스에 따르면 글로벌 SAF 시장 규모는 기존 1조원 수준에서 2027년 약 31조6000억원으로 급격히 늘 전망이다.
새로운 그린 산업은 그 자체로 수익성 있는 밸류체인을 형성하기도 한다. 탄소포집의 경우 △이산화탄소를 포집하는 기술 △포집한 이산화탄소를 저장소로 이송하는 기술 △탄소포집을 통한 블루수소 생산 기술까지 모두 각각의 사업이 될 수 있다. 조선 업계에는 탄소 운반을 위한 LCO2(액화이산화탄소 운반선)라는 새로운 개념이 등장해 기업들의 미래 먹거리로 떠올랐다.
'트럼프 포비아'에도 불구하고 그린 산업을 향한 대담한 시도는 전세계적 차원에서 지속되고 있다. 미국 캘리포니아의 수소 프로젝트 아치스(ARCHES)의 안젤리나 갈리테바 CEO는 트럼프 대통령 재집권 이후 그린 산업 '백래시' 가능성을 묻는 질문에 "일자리 성장, 투자, 에너지 안보를 제공하기 위해 수소 경제를 구축하기 위한 우리의 노력은 여전히 강력하다"고 답했다.
이같은 상황을 직접 확인하기 위해 머니투데이는 테마별 글로벌 그린 산업 현장을 차례로 방문할 예정이다. 배터리를 시작으로 △풍력 △플라스틱 재활용 △탄소포집 △태양광 △SMR △SAF △수소 등이 그 대상이다. 이를 바탕으로 그린 밸류체인의 미래 비전을 제시하는 게 궁극적 목표다.
최경민 기자 brown@mt.co.kr 김지현 기자 flow@mt.co.kr
Copyright ⓒ 머니투데이 & mt.co.kr. 무단 전재 및 재배포, AI학습 이용 금지.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