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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직도 손바닥에 왕(王)자 그린 검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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심우정 검찰총장. 신소영 기자 viator@hani.co.kr

심우정 검찰총장. 신소영 기자 viator@hani.co.kr




박용현 | 논설위원


검찰개혁의 시간이 본격화하자 검찰의 반발이 스멀스멀 고개를 들고 있다. 지난 20일 국정기획위원회가 진행한 업무보고에서 검찰은 이재명 대통령의 핵심 공약인 검찰 수사·기소권 분리와 관련된 보고를 빠뜨렸다. 업무보고는 중단됐다. 권순정 수원고검장은 23일 검찰 내부망에 “수사-기소 분리가 무엇인지 냉철하게 따져보지 않으면 형사사법시스템을 일거에 무너뜨리는 ‘트로이의 목마’를 들이는 일이 벌어질 수 있다”는 글을 올렸다.



하지만 통렬한 반성이 전제되지 않은 검사들의 말에 더 이상 귀 기울일 필요는 없다. 아무리 그럴듯한 레토릭으로 포장했어도 결국 ‘이제까지의 행태를 앞으로도 그대로 하고 싶다’는 말 이상도 이하도 아니기 때문이다. 권 고검장의 말에 대한 대꾸는 촌철살인의 댓글 하나면 족하다. “이미 바이러스에 감염되어서 파일들이 망가질 대로 망가진 컴퓨터에 트로이 목마 심어질까 걱정하는 꼴. 포맷이 답이다.”(이**)



형사사법체계가 망가진 핵심 원인은 ‘기소’가 ‘수사’를 결정하는 본말전도에 있었다. 정상적인 형사사법시스템은 범죄의 증거를 찾는 수사가 이뤄지고 그 결과에 대한 객관적 평가에 따라 기소 여부가 결정되는 과정을 거친다. 수사가 기소를 결정하는 것이다. 그러나 검찰은 거꾸로 했다. 어떤 사건은 애초부터 기소하기로 마음먹고 수사에 나섰다. 먼지털기식, 인간사냥식 수사가 그 귀결이다. 윤석열 검찰총장이 벌인 정치적 수사들이 그랬고, 윤석열 정권 때 야당을 겨냥한 수사가 그랬다.(이후 재판을 통해 월성원전 사건, 김학의 전 법무부 차관 출국금지 사건, 북한 어민 북송 사건 등에서 얼마나 무리한 수사·기소가 이뤄졌는지 드러나고 있다.) 또 어떤 사건은 처음부터 기소하지 않기로 마음먹고 수사에 나섰다. 한없이 무능한 수사가 그 귀결이다. 황제 조사와 무혐의 처분으로 이어진 김건희씨 관련 사건들이 그랬고, 역대급 마약 밀수 커넥션을 덮어버린 인천 세관 마약 사건이 그랬다. 어느 경우든 수사가 아니라 사건 조작에 가깝다. 이제 검찰이 어떤 수사·기소를 하든 신뢰할 사람이 없게 됐다. 형사사법시스템의 비극이다.



이 비정상적 상황을 바로잡으려면 기소가 수사를 지배할 수 있는 구조를 바꿔야 한다. 그 방법은 수사-기소의 분리, 더 정확히 말하면 수사-기소의 조직적 분리밖에 없다. 검찰의 기능과 조직이 공소청과 수사청으로 분리되면, 공소청이 수사청에 특정인에 대한 먼지털기식 수사나 봐주기 수사를 지시할 수 없을 것이고 수사청이 공소청에 무리한 수사 결과를 들이밀며 눈 딱 감고 기소하라고 요구할 수도 없을 것이다. 또한 수사청의 수사가 적법하게 이뤄지는지, 공소청의 기소 판단과 공소 유지가 적절한지 서로 감시할 수 있을 것이다. 이렇게 분리된 수사기관과 기소기관이 상호 협력하되 견제하는 게 문명국가 공통의 형사사법체계다.



사실 검찰이란 제도가 생겨난 것부터가 수사-기소 분리의 결과다. 경찰이 수사·기소를 한손에 쥐고 있다가 1986년 검찰(기소청)을 신설해 수사는 경찰이, 기소는 검찰이 나눠 맡도록 한 영국 사례는 인류의 형사사법체계 진화 과정을 압축적으로 보여준다. 일찍이 프랑스 혁명 시기 근대 형사사법체계를 가다듬은 치죄법전이 만들어질 때도 검찰에 소추와 수사 기능을 모두 부여하는 초안이 제시됐으나, 소추 당사자인 검사에게 수사권까지 부여하는 것은 ‘시민을 위협하는 폭군’을 낳는다는 우려에 따라 ‘소추-수사-재판의 분리’ 원칙이 정립됐다.



그러나 대한민국에서 등장한, 수사·기소권을 한손에 쥔 검찰은 과연 폭군이 됐다. 권한을 위임한 주권자의 눈치도 보지 않고 마구 권한을 휘둘렀다. 비뚤어진 권력 행사에 대해 국민 앞에 아무런 책임도 지지 않으려 했다. 이는 주권자의 영토에서 분리된 성채를 쌓고 소왕국을 참칭한 셈이다. 때로 검찰은 성채를 뛰쳐나와 주권자의 영토를 유린했고, 손바닥에 왕(王)자를 쓰고 나타났던 아무개 검사는 아예 정복자 왕이 되려 했다. 그 검사는 몰락의 길을 걷고 있지만 검찰은 여전히 성채를 지키며 왕 노릇 하겠다는 미망에서 벗어나지 못한 듯하다. 검찰만이 형사사법시스템을 지킬 수 있다며 뻔뻔하게 왕(王)자를 내미는 주술로 여전히 주권자를 속일 수 있다고 여기는 듯하다. 하지만 그 주술은 더 이상 통하지 않는다. 추한 꼴이란 꼴은 스스로 다 보여줌으로써 검찰이 정의롭지도 유능하지도 않다는 사실을 이제 누구나 알게 됐기 때문이다. 그 원인이 과도한 권력 집중에 있다는 사실과 함께.



piao@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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