금융 위기 이후 한국은 우수한 기술력과 숙련 인력, 인프라를 바탕으로 세계 자동차 기업의 주요 전략 거점으로 떠올랐다. 이에 따라 다국적 기업들은 우리 기업과 기술 협력을 추진하고 있다. 이들이 국내에서 지속 가능한 사업을 이어가려면 정부와 사회의 열린 태도와 제도적 유연성이 필요하다.
글로벌 기업의 사업 조정이나 자산 재편을 ‘철수’로 해석하는 시각도 적지 않다. 하지만 이런 변화는 장기 경쟁력 강화를 위한 전략적 판단이다. 일본의 한 전문가는 이를 ‘유목민형 투자’라 표현한 바 있다. 수요지와 생산 기지가 다양화하며 혁신 전략도 변화하고 있기 때문이다. 예컨대 한국3M은 권역별 연구소 통합을 위해 국내 연구 기능을 조정했으나, 이는 연구 역량 집중을 위한 전략적 선택이었다.
국내 완성차 업체들도 생산 환경 악화에 따라 해외 공장의 이전·축소·폐쇄를 단행한 바 있다. 이는 글로벌 산업 변화에 능동적으로 대응하기 위한 재정비 과정이자, 새로운 성장의 출발점이 될 수 있다.
최근 한국GM이 일부 자산 매각을 발표하자 철수 우려가 제기됐지만, 이는 자산 효율화와 비용 구조 개선을 통한 재투자 기반 마련이라는 해석이 가능하다. 게다가 생산과 고용엔 영향이 없다고 밝힌 점도 주목할 필요가 있다.
그럼에도 한국 사회에서 ‘사업 조정’을 부정적으로만 인식하는 현실은 아쉽다. 전략적 변화는 장기적 경제 기여를 위한 기반 정비로 보아야 한다. 글로벌 본사의 관점에서 한국 사업장이 경쟁력을 유지하려면 비용 효율성과 유연한 사업 환경이 필수다. 세계 완성차 기업과 정부가 구조 개편과 고도화를 동시에 추진하는 것도 같은 이유다.
사업 재편은 단기 고통을 수반할 수 있으나, 중장기적으로는 고용과 부가가치 창출을 가능케 한다. 정부가 국제 협력을 강화하는 지금, 글로벌 기업을 향한 배타적 시각보다 협력적 접근이 필요하다. 경영 활동에 대한 부정적 인식은 한국의 외국인 투자 환경을 위축시킬 수 있음을 유념해야 한다.
글로벌 기업의 재투자를 끌어내기 위해선 제도적 지원이 필수다. 첫째, 한미 관세 문제의 조속한 해결. 둘째, 불확실한 외부 환경에 대응할 수 있는 산업 정책. 셋째, 글로벌 기준에 부합하는 인증 제도와 규제 개선. 넷째, 예측 가능한 행정 시스템 구축이다. 이러한 정책 기반이 한국을 글로벌 투자 허브로 도약시키는 핵심 조건이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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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항구 한국자동차연구원 연구자문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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